5박 6일이면 될 것 같았다. 하노이로 들어가 ‘파이터 백종원 선생’의 길을 따라 쌀국수와 닭고기와 기타 등등을 호로록호로록 해치우자. 1일 5식을 기본으로 하여 대장이 과민해지기 전까지만 폭식 모드를 가동하고 딱 3킬로만 늘려서 오자. 그래, 그래. 원하는 메뉴는 적어가야 할까? 영어는 통하지 않을 것 같은데, 아냐, 한국어 메뉴판도 있대. 혹시 다른 걸 주면 그냥 먹으면 되지. 백 선생 먹는 것은 다 맛있어 보이더구먼. 이것이 웰빙이지. 이런 말을 두런거리며 두더지 잡는 고양이 모녀처럼 머리를 맞대고 모의를 했다. 금쪽같은 휴가를 위해 나는야, 구정 연휴에도 열심히 일한 자! 떠나자! 이런 외침이 여행 계획을 짜던 식탁 옆에서 울려 퍼졌다. 그때, 나는 참 좋았더랬다.
출발 5일 전, 전염병의 기세가 만만하지 않다는 징조가 유튜브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가짜 뉴스일 거야.’, ‘이건 뭐랄까, 클릭에 눈먼 호들갑 같은 거야.’ 애써 무시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는 우리나라에서도 확진 환자가 나온 시점이었다. ‘유튜브 같은 것 믿지 말자고. 자고로 믿을 수 없는 뉴스란 뉴스는 모두 여기가 진원지 아니냐고!’라고 외쳤지만 어쩐지 소리는 한참 작아져 있었다. ‘우한에서 산다는 이 미국 청년 이야기 좀 들어봐. 도시가 너무 썰렁해.’, ‘중국 청년의 말이 너무 가슴이 아프잖아.’ 도무지 유튜브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3일 전, 여행을 취소했다. 먼저 말을 꺼낸 쪽은 딸이었다. “혹시 남의 나라 병원에까지 입원하게 되는 일은 국제적인 민폐야.”라고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내 예약금을 날리는 건?”이라고 눈을 크게 떴지만, “사정 아는 사람이 이러시기야?”이라는 말 앞에서 무너졌다. 돈도 돈이지만 눈치 봐 가며 신청한 휴가가 더 걸렸다. 올해 다시 이런 스케줄 만들기 어렵단 말이지. 이미 투덜대는 내 목소리에도 힘은 없었다. 대신 나 때문에 휴일을 포기한 선배에게 카톡을 넣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휴가, 뱉을까요? 마음 넓은 선배는 그냥 쉬라며, 집에서 1일 5식 하며 아프지나 말라며 키득거렸다.
예정대로 였다면 출발하는 당일. 상황을 이해하는 것과 내가 당하는 것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끼며 눈을 뜬 뒤에도 침대에서 뒤척였다. 큰 손해를 본 기분이었다(구체적으로 뭔데?) 화가 난 것도 아니고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조금 마음이 상한 채로 오전 시간을 보냈다.마스크를 끼고 동네 산책을 한 후 리스트에 담아뒀던 책을 몇 권 구입하고(서점도 한산하더라) 돌아오는 길, 세일 중(무려 70퍼센트!)인 겨울 재킷 하나를 딸에게 선물했다.
뚱한 내 손을 끌고 딸이 향한 동네 맥주 집. 잘 통하는 말로 주문하고 원하는 음식만 쏙쏙 골라 시켜 배를 채웠다. 테이블 위에는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의 라이브 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테니스를 알아?”
한다고 했으나 키운다고 키웠으나, 지나고 보면 남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바로 이럴 때. 이 아이는 어째서 테니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지? 테니스는 축구가 아니다(축구 미안~!). 룰은 간단하지 않고 점수를 세는 것부터 평범하지 않다. 나는 그것을 각급 학교에 총동원령이 내려졌던 ‘86 아시안 게임 테니스 경기장’에서 배웠다. 사전 지식이 없어도 일단 오래 앉혀 놓으면 이해는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후로 테니스 경기를 시간 내서 본 적은 없다. 집체교육의 문제점이다.
딸은 두 잔의 맥주로 흥이 오른 내 앞에서 심각한 얼굴로 콜라를 마시며 라파엘 나달과 도미니크 팀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틈틈이 라파엘 나달이 KIA의 모델이 된 스토리를 들려주고, 테니스 잘하는 사람을 왜 ‘흙신’이라고 부르는지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너, 정말 낯설다. 함께 집으로 오는 길, 테니스에 관한 모든 것은 ‘테니스의 왕자’라는 만화책에서 배웠다는 고백을 들으며 천천히 걸었다.
아이가 하나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 때가 있다. 대부분의 시간, 그렇다. 아이는 나와 분리되는 순간 하나의 독립체가 되는 것이어서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내 시선과 상관없는 지점을 바라보고, 내 흥미가 동하지 않는 곳에서 희열을 느낀다. 그 상황에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오히려 엄마 쪽이다. 열 달 동안 아이와 함께 했던 느낌이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람을 모른다’는 관점을 유지하지 않으면 타인과의 생활에서 끊임없이 삐걱거리게 된다. 끊임없이 타인의 의사를 묻고, 호불호를 따지고, 괜찮은지 체크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사회적 교육’을 받았음에도, 내 아이를 그 ‘타인’의 범주에 놓기가 쉽지 않다. ‘나는 이 아이를 안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 편한 것이다. 바보같이, ‘테니스의 왕자’도 모르면서…. 이러니 아이가 둘이었으면 충격은 두 배가 아니었겠는가. 바보 같은 나는 아마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다음 날 딸의 손을 잡고 병원에 갔다. 어차피 범 세계적으로 외출을 자제하는 분위기라면 집에 숨어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딸의 얼굴에 생긴, 볼 때마다 걸렸던 비립종 몇 개를 제거하고 누덕누덕 된 얼굴로 돌아왔다. ‘이따금 굉장히 쓰려’라고 투덜댔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 맥주와 콜라, 피자를 시킨 후 도미니크 팀과 알렉산더 츠베레프의 준결승전을 흥미진진 지켜보았다.
“엄마가 야구 볼 때 피맥 하는 기분을 이제 알겠어?”
“물론입니다. 백 퍼센트 동감입니다.”
라켓을 휘두를 때마다 내는 괴성을 따라 지르며 도미니크 팀을 응원했다. 왜? 이유는 없다. 그저, 밖에는 신종 전염병이 창궐하고 우리는 집에 있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 휴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