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봄은 아름다워야만 한다

-오늘의 조언

by 지안

어쩌다 보니 문화생활로 충만한 한주를 보냈다. 먼저 개봉일에 만난 ‘작은 아씨들’


돌려 말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티모시 살라메를 보러 갔다. 다 아는 이야기에 가슴이 설렐 이유도 없었고, 뻔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감독의 솜씨에 감탄할 만한 영화적인 안목도 내겐 없다. 그러니 티모시 살라메.



나처럼 티모시를 사랑한 감독이 원작을 재구성한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그의 분량이 넘쳐나서 모처럼 흥이 가득한 두 시간을 보냈다. 응, 맞아. 그런 이야기였어 라며 과거의 기억까지 떠올린 덕에 이야기의 전개에 촉을 세울 필요 없이 화면 가득한 아름다운 영상에 흠뻑 빠질 수 있어 좋았다. 가난한 것이 너무 싫다는 네 자매가 사는 집에 엄연히 가정부가 존재한다는 19세기적 시대 상황에 딴지를 걸어 뭐하겠는가. 그저 그림이 좋으면 그것으로 됐다는 생각이었다.


피아노에 재능이 있던 베스는 너무 일찍 죽어 버렸다. 그림에 소질이 있던 에이미는 그보다 더 빨랐던 계산 때문에 다른 일을(예를 들어 부자와 결혼하는 일)을 찾아 나섰다. 소설의 화자인 ‘조’만이 글을 쓰고 쓰고 썼다. 잉크가 군데군데 얼룩져 지저분한 손을 한 채 나오는 첫 장면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쓰고 쓰고 쓴다. 성공했는가? 그렇다. 여자는 돈이 없기 때문에 결혼해야만 하는 시대에 결혼하지 않은 그녀는 성공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모든 편견과 어려움을 극복해서 성공했는가? 아닐 걸. ‘꿈을 찾는 법’ 같은 것을 조언하는 멘토들이라면 그녀의 ‘꾸준함’을 본받으라고 하겠지만, 핵심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런 마음으로 극장을 나와 티모시를 생각하며 설레는 며칠을 보낸 후 이번엔 ‘몽니’를 찾아갔다.



이 글의 제목은 몽니의 이번 콘서트 제목(‘우리의 봄은 아름다울 거야’)에서 따왔다. 지난 몇 년동안 많은 페스티벌에서 이들의 공연을 보았다. 언제나 드는 궁금증은 ‘왜 이들의 공연시각은 늘 비슷한 때에 머물러 있는가’였다. 페스티벌의 공연시간은 '인지도' 내지 '인기'를 반영한다. 끝을 향하는 시간일수록 인기 있고 실력 있는 팀이 연주한다. 내가 팬이라서 충분히 편파적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그들의 공연시간은 늘 너무 일렀다.


공연 당일,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객석에는 ‘마스크 착용’ 후 관람이라는 특단의 조치가 내려졌다. 온통 나쁜 결과만 있을 줄 알았는데, ‘몽니’를 잘 모르는 딸은 오히려 ‘앗싸’를 외쳤다. 떼창에 참여하지 못해도 티 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결론적으로 딸의 근심은 소용이 없었다. 떼창도 없었고 뜀뛰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곳에는 ‘여유’와 ‘실력’이 있었다. 소극장 공연에 맞게 편곡한, 자리에 앉아서 감상할 수 있게 다듬어진 곡들을 들으며 생각했다. 이것은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선택이다. 관객을 들뜨고 설레게 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텐션을 올리고 소리를 높이고 몸을 쓰게 하는 것이다. 연주에 조금 문제가 있어도 관객과 함께 흥분해 버리면 대체로 ‘중박’은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같이 몰입하도록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모름지기 프로 아닌가. 같이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마다하고 관객과 거리를 두겠다는 전략을 택한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어려운 일을 잘도 해 버렸다.



이어지는 ‘이벤트’ 시간. 팬의 질문을 받고 ‘그들의 대답’을 들려주는 시간.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 선택할 일을 걱정하는 팬에게, “잘하는 것보다 오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꿈을 잃지 말라는 조언을 건넸다. 15년 동안 자신들이 거쳐왔던 힘든 시간의 에피소드들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작은 아씨들’의 장면들이 소환되었다. ‘조’가 성공한 이유는 ‘끈기’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져간 원고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었을지언정 글을 사 준 편집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30달러도 충분히 줄 수 있지만 여자라서 얕보며 20달러만 주는 재수 없는 편집자가 없었다면, 그 정도의 칭찬이라도 없었다면 조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꿈을 이어가는 방법이 ‘끈기’인 것은 맞다. 그런데 작은 보상과 칭찬도 없이 버텨가는 끈기가 있을까. 세상에 필요한 것은 "꿈을 오래 이어가는" 사람보다 "누군가의 꿈을 지지하고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코로나 19로 뒤숭숭했던 세상도 안정되어 가고, 올여름에도 여기저기서 몽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김신의의 보컬은 역시나 훌륭할 것이고, 인경 언니(이번 공연을 보고 딸이 팬이 되었다)의 아름다움도 계속될 것이다. 공 교수님의 기타는 섬세할 것이고, ‘유희열이 인정한’ 정훈태 군의 드럼도 멋지겠지. 그들의 봄은 아름다울 것이고, 우리의 봄날도 그래야 한다.


몽니, 올해 페스티벌에서는 달이 뜬 후에 만날 수 있었음 해요.


오늘의 조언: 칭찬과 위로는 돈으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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