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첫 운전연습

- 오늘의 질문

by 지안

대부분의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모르지만, 내 경우는 ‘뭐 그렇겠지’이다.


내 아이가 영재인 것 같고, 신에게 근접한 재능을 물려받는 느낌이 나고, 어떤 경로를 거쳐 이런 아이가 내게 온 것인가 감사하는 분도 계시는 것 같은데 그것과는 영 다른 결이다. 미안하게도 나를 닮았고, 그래서 당연한 결과이지만 특별한 구석이란 없다. 눈에 띄는 외모도 아니고, 머리가 별나게 좋지도 않다. 성격이 고귀하고 범접할 수 없느냐면 그것도 아니고, 연예인 기질이 있거나 인싸 같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누가 봐도 딱 내 수준이다.


그러니 아이와 함께 사는 일은 ‘뭐 그렇겠지’의 연속이다. 대학을 떨어져도 ‘뭐 그렇지’, 친구들과 어긋나는 일을 풀지 못해 울고 있어도 ‘뭐 할 수 없지’이다. 살이 쪄서 맞는 옷이 없다고 해도 ‘다 그런 거야’이고, 자신에게 아무런 재능이 없는 것 같아 속상해할 때도 ‘내가 딱 그렇다니깐’이다. 속이 타는 것은 백억 칠천만 번 이해한다. 그 나이의 나도 그런 시간을 지나왔고, 울다 지쳐 깨어난 밤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그렇겠지’이다. 인생의 과정을 몸으로 완벽하게 느끼지 않으면 아무것도 깨달을 수 없는 수준의 보통 인간들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



딸이 첫 시험에 운전면허증을 받아 들고 왔을 때는 그래서 놀랐다. ‘뭐야, 다른 것은 다 나처럼 멍청한데 운전에는 특출 난 재능이 있었던 거야?’라고 차마 입 밖으로는 낼 수 없는 생각도 했다. 면허를 따고 곱게 소장만 했다가는 영영 다시 볼 일이 없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당장 차를 가지고 다닐 것도 아닌데 학원에서 연수를 받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았다. 장성한 아들에게 이미 운전대를 넘겨버린 선배에게 연수는 어떻게 했는지 급하게 물어봤다.


“통일로 쪽으로 가면 한적한 주차장이 있어. 거기서 주차 몇 번하고 감 잡은 다음에 도로로 나왔는데, 금방 하던데?”


선배의 아들은 그랬겠지만, 내 딸은 날 닮았다. 그렇게 금방 될 리가 없다. 불신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는 내게 “야, 넌 딸이잖아. 나도 내 딸은 학원 보냈어. 아들이야 못 하면 몇 대 쥐어박을 수 있는데 딸은 안 되잖아.”라고 토를 달았다. “응, 성차별이야, 그런 말 하지 마”라고 대답하고, 결국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뭐 다 그렇지.



화창한 일요일, 벚꽃이 드문드문 피어 있는 길을 달려 집 근처 공영 캠핑장에 도착했다. 아파트 주차 라인에서 연습을 했다가는 공공의 적이 될 테니 캠핑장 주차장에서 연습을 하고 집까지 운전해 가면 괜찮은 코스가 될 것 같았다. 이곳, 사람들 안 지나다니는 곳에 전면 주차 한번, 저기, 차 없는 곳에 후면 주차 한번. 자, 시작.


차가 주차라인을 향해 비틀비틀 움직일 때, 우리의 아름다운 주말 오후는 주차의 개미지옥에 빠질 것이라는 강력한 예감이 들었다. 시동을 걸고 발을 뗄 때부터 딸의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만하다. 내 차는 딸이 운전학원에서 연습하던 차종과 완전히 다르고, 브레이크며 엑셀도 상태가 다르다. 학원에서는 반은 깨어 있고, 반은 졸고 있는 강사가 위급 상황에 대처를 해 주지만 이 곳에는 아무도 없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잔소리밖에 없는 엄마뿐이다. 학원에서 코스 연습을 어떻게 시키는 줄은 나도 알고 있다. 해 봤으니까. “이 표시가 차의 이 부분에 닿으면 핸들을 꺾고 블라블라~” 내 차와 공원 주차장에서 그런 것이 통할 리가 절대 없다. 한참만에 차가 앞부분부터 주차 라인 안에 쏙 들어온 것을 확인한 내가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됐고, 저 쪽에 후면 주차.” 곧바로 나는 인터넷의 늪에 빠졌다.




딸이 ‘이제 그만’을 외칠 때까지는 한 시간쯤 걸렸다. 열대여섯 번의 주차를 끝낸 후였다(옆에서 인터넷만 보고 있어서 몇 번 했는지 세지를 못했다).


햇살은 스웨터를 막 꺼내 입었을 때처럼 따스했고 뭔가를 풀어놓은 것이 아닌가 의심할 만큼 공기는 청량했다. 벚꽃 잎이 바람에 흩날렸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때때로 차 안까지 들어왔다. 이따금 개를 산책시키러 마스크를 끼고 나타나는 사람들에게 공기 중 미세먼지를 흠뻑 풀어놓은 것 같아 미안했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여기까지 나왔으니 조금 무리해서라도 도로로 나가보자는 나의 제안을 딸은 단번에 거절했다.


“그건 민폐야.”


다 그렇지 뭐. 나도 네가 한번 연습에 도로를 달리게 될 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고. 조수석으로 물러난 딸의 표정에 온화함과 피곤함이 교차되어 지나갔다.



지금의 나는 별 무리 없이 차선을 바꾸고, 장거리 운전을 하고, 고속도로를 달리지만, 나 역시 주차 한 번에 피가 마르고 급하게 꺾인 골목에 식겁했던 때가 있었다. 아이를 바라보면서 내 과거를 떠올린다. 그런 시간을 잊지 않고 기억해두지 않으면 누군가 비슷한 시간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는 나의 현재다. 오랜 시간 유충으로 지낸 기억이 없다면 매미가 여름에 그렇게 처절하게 울지는 않을 것이다. 딸은 나를 닮았고 덕분에 어리버리하고 헤매기만 했던 내 과거를 확실하게 떠올리게 해 준다. 고마운 녀석.


오늘은 고생했으니 맛있는 것 먹자, 근데 그게 뭐지? 코로나 때문에 회사 휴직 들어간대. 그러니까 당분간 외식할 돈 없어. 집에서 먹자. 이런 말을 두런거리며 첫 연습을 마쳤다. 조만간 두 번째 연습에서는 도로로 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오늘의 질문 : 첫 운전, 기억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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