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과 함께 살아가는 일

-오늘의 위로

by 지안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안타깝지만 상상력이 없는 편이다. 내가 팀 버튼 감독의 영화를 보거나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읽으며 소름이 돋은 이유는 영상미나 문장의 유려함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상상력의 스케일이 달랐기 때문이다. 다음을 예측할 수 없는 것에서 오는 짜릿함, 그것은 어떤 종류의 카타르시스보다 확실한 자극을 준다. 크리스마스에 해골 귀신이 준비하는 파티를 보여주거나, 궁지에 몰렸을 때 죽은 자들이 벌떡 일어나 살아 있는 적을 제압하는 상상은 내 머릿속에서 낌새조차 찾을 수가 없다. 의미 여부를 떠나 박수를 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상에서 내 상상력의 빈곤으로 인해 애를 먹은 적은 없다. 비슷한 공간과 시간에서 부딪히는 타인과 지인들의 수준이란 것이 대개 거기서 거기인 까닭이다. 우주인에게 납치를 당했다는 사람도 없고, 귀신을 보는 친구도 없다. 하루 밤 사이에 팍삭 늙어 버렸다는 선배도 없고, 하다못해(?) 재벌 2세와 사귀는 후배도 없다. 당연히 일상은 평온하고 안일하며 그만큼 지루했다.




그런 일상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 최근 몇 달이다. 형체를 확인할 수도 없는 바이러스에 의해 병이 퍼져 나가고, ‘We are the World’라던 세계는 언제 그런 적이 있었냐는 듯이 완벽하게 나뉘어 닫혀 버렸다. 학교와 직장이 문을 닫았고, 약속을 준다는 종교에서는 구원 대신 병원체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집에서 꾸물대는 것을 좋아하고, 내버려 두면 얼마든지 혼자 잘 노는 나지만 집에 얌전히 있다는 이유만으로 칭찬받는 시절이 올 것이라고 과거의 누군가가 말했다면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시지!'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현실이 그 어떤 판다지보다 상상력이 가득한 장면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간혹 소소하게 재미있는 일도 있긴 했다. 록다운이 실시된 유럽에서 외출이 허용되는 조항 중의 하나가 ‘반려견 산책’이라는 뉴스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산책용 개를 돈 받고 빌려’ 주는 사업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역시 인간이란…….’하는 싸늘한 기분이 되었다.




코로나 19 확산을 막기 위해 봉쇄조치가 실시된 미국에서 연일 시위를 벌인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보고 있다. 총까지 들고 나선 시위대의 모습에는 기가 질린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자세한 속마음까지는 알 수 없다.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고 그렇게 있지는 않겠다’는 결연함은 충분히 읽힌다. 의료진이 나서서 막아보지만 속수무책이고, 시위대는 마스크도 하지 않았다며 현장을 전하는 기자는 쓰고 있다.


미국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이고, 주에 따라 진화론 대신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친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도, 인간이 아담의 직계 후손이라는 것도 내 상상력을 뛰어넘는 문제이지만 나는 이들의 생각을 존중한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고, ‘인간의 조상은 아담이다’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며 잘 살아가면 된다(아마 내가 그들과 말을 섞을 일은 없을 것이니까 난 괜찮다). 그런데 그렇게 믿는 사람이 ‘내 아이의 과학 교사’가 되거나 ‘내 나라의 과학부 장관’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그런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이 곳은 엄연한 현실 세계이며 판타지가 개입될 여지는 없기 때문이다.


전염병이 그 어떤 것보다 빠른 속도로 허공을 질주하는 지금, 경제적인 이유 혹은 그보다 근본적인 자유에 대한 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고 최대한 긍정적인 마음으로 그들의 시위를 바라본다.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니 여유가 있는 탓도 있다. 하지만 전염병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은 과연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은 도무지 떨칠 수가 없다.




에볼라와 사스, 에이즈 등 인수공통 전염병에 관한 재미있고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 데이비드 콰먼은 [인수공통 모든 점염병의 열쇠]라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은 개체수가 70억을 넘어 계속 증가하고 있고, 밀집된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거대한 숲과 야생 생태계를 침입하여 물리적 구조와 생태학적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 공장식 축산업을 일으켜서 이런 가축이 외부로부터 병원체에 감염되고, 그런 감염이 널리 퍼지면서 병원체가 새로운 형태로 진화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아무리 먼 거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라운 속도로 가축들을 수출하고 수입하며 세계 여러 곳으로 날아가 낯선 사람들이 재채기를 해대는 호텔에서 묶는다. 이곳저곳을 방문하고 손으로 만지고 친절한 현지인과 악수를 나누고 바이러스를 지닌 채 귀국 행 비행기에 올라 탄소를 배출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배출한 탄소가 기후를 변화시킴에 따라 모기와 진드기가 서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우리는 어디나 엄청난 숫자로 존재하기 때문에 모험심 강한 미생물에게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과 기회를 제공한다.’


딱히 반박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이어서 시카고 대학의 생물학자 드렉 드와이어의 말을 옮기며 이렇게 말한다.


‘전염병의 평균 전파율이 일정하다면 이질성이 조금만 추가되어도 전체 감염률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개인의 노력, 개인의 분별 있는 행동, 개인의 선택이 집단의 멸절을 몰고 갈 파국적인 상황을 방지하는데 엄청난 효과를 발휘한다.’


오늘도 핸드폰에는 질병관리본부에서 보내는 읍소성 ‘거리두기’ 문자가 도착했다. 다들 힘들다. 나같은 집순이도 이 정도면 지친다. 그러나 전염병의 성격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고생해서 여기까지 잘해 왔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으니 조금 더 참아보자는 의지가 생긴다. 여기까지다. 전염병으로 인해 상상력을 자극하는 어떤 상황도 더는 벌어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어느 날씨 좋은 날 마음 편히 외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오늘의 위로 : 조금만 더 힘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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