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낮의 유린하

-오늘의 조언

by 지안

일주일만의 게으름을 부리던 늦은 아침, 친구에게 톡이 왔다. 휴직이라며 이 틈에 돈 대신 살만 붙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코로나 19보다 성인병으로 병원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물었다.


휴직은 했으나 일하느라 피곤해. 간만에 뒹굴모드라고.”


투덜대자 친구가 말했다.


“4-5개월 됐나, 얼굴 못 본지? 우리 나이에 오래 안 보면 나중에 못 알아볼 수도 있어. 그런 의미로 오늘 점심이나 어때? 내가 당신 집으로 갈게.”


뭔가 조금 손해를 보는 느낌이라고 중얼거리자 기분 탓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긴 마스크도 몇 장 남지 않아 외출을 삼가던 요즘이다. 남는 것 있으면 몇 장 가져다줘. 콜~




냉장고에는 이틀 전 먹다 남긴 삼겹살 반줄과 쌈 채소, 냉동 새우 정도가 들어 있었다. 새우를 해동해서 튀기고 쌈채소를 적당하게 잘랐다. 삼겹살을 조각 내 야채와 굴소스를 넣고 볶고 있을 때 연락이 왔다.


“술 사러 왔는데, 필요한 건 없어?”


“레몬 있으면 하나 사와.”


톡 옆 1자가 지워지고 3분 정도 대답이 없던 친구가 물었다.


“뭐야? 오늘 메뉴는 레몬소주야?”


“이거 왜 이래. 내가 사는 건 좀 불순해도 술은 순수하게 마신다구. 잔말말고 하나만 사와. 많이 사면 안 돼.”




친구는 맥주 몇 병과 레몬 하나가 담긴 봉지를 들고, 5프로 의심하는 눈초리로 나타났다. 마늘과 간장으로 맛 낸 소스에 레몬즙을 짜 넣은 후 새우 튀김과 야채 위에 뿌리고, 삼겹살 볶음에는 우동사리를 넣고 휘저었다.


“오, 이거 맛있어. 이름이 뭐야?”


의심이 사라진 맑고 밝은 눈빛으로 친구가 물었다. 젓가락 끝은 새우를 향해 있었다. 글쎄, 그건 이름을 뭐라고 해야 하나. 유린기 소스를 부은 것인데 닭 대신 새우가 들어간 것이니, 유린하?


“아무거나랑 비슷한 거구나?”


낄낄거리며 친구가 말했다. 생 레몬으로 맛을 낸 최상급 소스를 먹으면서 그게 할 소리냐고 타박하자 엄지 손가락을 치켜 주었다.


“내가 사온 레몬으로 나한테 생색내는 그 패기, 인정한다!”




비가 올 듯 말듯 더운 한 낮,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코로나 백신 관련 모더나 주식이 왕창 올랐다는 뉴스를 떠들다가 그래서 돈은 있는 사람만 번다는 한탄과 동시에 어차피 돈을 쓰려면 일론 머스크가 짱이 아니냐는 의식의 흐름을 거쳐 과연 그는 화성까지 갈 수 있느냐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일론 머스크와 일면식도 없긴 하지만, 스페이스 X가 우주정거장 도킹에 성공한다면 제대로 한 잔하자는 말도 안되는 약속을 한 후 진지한 얼굴로 친구가 물었다.


“그나저나 아침형 인간이 왜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었어? 휴직한 주제에 뭔 일을 했다는 거야? 그거 법에 걸려.”


“도시락 쌌거든. 일주일동안.”


그랬다. 딸에게 사정이 생겨 새벽 6시까지 도시락 2개를 싸야 했다. 그리고 아침 준비.


“요리하는 것 좋아하잖아? 그래서 나도 별 생각없이 밥 얻어먹으러 온 거고.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이니 6시까지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그렇지. 그런데 타인을 위해 만드는 도시락은 어쩔 수 없이 부담이 되더라고. 부담이 일처럼 느껴지는 건 딱 한걸음인 것 같아.”


화요일까지는 괜찮았다. 수요일에는 이유를 알 수 없이 늦잠을 잤다. 덕분에 목요일에는 타이머를 두 개나 맞춰 놔야 했다. 금요일에는 이미 요리 흥미 따위는 떨어진 뒤였다. 토요일 새벽에는 가지고 있는 모든 요리흥을 쥐어 짜내 도시락을 만들어야 했다.


“취미가 일처럼 느껴지니까 힘이 들더라. 도시락 싸기는 끝났는데, 얼마나 좋은 지 어제는 밤에 혼자 한 잔 했어. 일주일동안은 늦잠잘까봐 맥주 한 깡통을 못 마셨거든.”


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하긴 게임 많이 하는 애들을 고치는 지름길이 프로 게이머를 시키는 거라고 하더라.”


친구가 네 번째 병을 따며 호탕하게 웃었다.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한숨을 쉰 후 말했다.


“근데 웃긴 게 뭔지 아냐? 오늘은 늦잠 자도 되잖아? 눈 떴는데 새벽 5시야. 정신 완전 말짱하고. 인간이 이래도 되는 거냐?”


꽉 채운 술잔을 부딪히며 친구가 말했다.


“일만 안 하면 행복한 인간을 위하여!”


그러게, 우물쭈물 잔을 부딪혔다. 인간이란, 도대체 모를 존재야. 이 나이가 되어서도 이러고 있으니, 정말 내가 걱정이다.


-오늘의 조언 : 취미가 일이 되면 흥미를 잃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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