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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Sep 14. 2020

당연한 것은 없다

- 오늘의 조언

2020년 1월 1일.


그 날 뭘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새해 타종을 듣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지구는  확률이 지배하는 양자역학의 세계에 속한다지만, 어쨌거나 내게는 밤이 지나반드시 아침이 믿음이  있었다. 태양이 곧 폭발할 것이라는 소식도 못 들었거니와, 만약 그런 불운한 일이 벌어진다면 상황을 깨닫고 좌절할 나 역시 사라질 것이다.


경험상 2020년 1월 1일과 2019년 12월 31일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도 다. 해가 바뀌는 것을 사십 번도 넘게 겪다 보면 이렇게 된다. 아침은 올 것이고, 새해라고 해 봐야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 새해 기념 보신각 타종이나 해돋이 따위 잊고 푹 잘 수 있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 믿었다.




잠들기 전 했던 생각은 기억난다. 언제쯤 휴가를 낼지, 기간은 얼마나 가능할지, 예산은 어디서 당겨서 쓸 수 있을지 하는 것들이었다.  


놀기 위해 돈 버는 입장이지만, 민폐를 끼칠 수는 없다. 그러니 팀원들의 사정을 봐가며 눈치껏 휴가를 내야 한다. A는 아이가 어려서 당분간 긴 휴가는 내지 않을 것 같고, B는 다른 팀으로 옮길 예정이니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C는 휴직 후 생긴 경제적 문제로 올 해는 자중한다고 했으니 내가 원하는 때에 양보해 줄 것이다. 팀원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리며 계산을 했다. 2월과 9월, 안되면 10월 정도 휴가를 내보자고 꿈에 부풀었던 것도 같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 믿었다.




3년 정도 같은 시간에 퇴근한 적이 있다. 시침과 분침이 같았던 것이 아니고, 해 지는 시간에 맞춰 퇴근을 했다. 일몰 30분 전 사무실을 나와 운전을 하다 보면 긴 인천대교 위에서 저녁노을을 만났다. 날이 좋아서, 좋지 않아서, 비가 와서, 구름이 많아서 하늘은 달랐다. 단 하루도 같은 날은 없었다. 내게 허락된 언어가 '일몰'이고 '저녁'이고 '퇴근'이지, 그것은 늘 다른 풍경이고 시간이며 공간이었다.




몇 번을 반복하다 두 가지를 깨닫고 말을 못 할 정도로 놀랐다.


첫째는 내가 느끼는 것들과 감정들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턱없이 부족했다.


두 번째는 아무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는 점이었다. 매일의 하늘도 그렇게 다른데, 반복되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운 계절을 다 보내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에야 새해 첫날의 나를 반성한다.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마음대로 미래를 구상했을까. 마스크를 끼고, 친구를 만날 수 없고, QR 코드를 찍고, 체온을 재는 미래까지는 상상하지 못했겠지만 언제나 평화롭고 안온한 날들이 반복될 것이라는 생각은 어떻게 게 되었을까.


올해 나의 새해 소망을 이룰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해외여행은커녕 국내 여행지에서도 환영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내년에는 가능할까? 혹은 그 후에는? 역사로 보면 인류는 어떻게든 전염병과 함께  살아왔다. 얼마나 큰 대가를 치루는가의 문제일 뿐 결국 모든 일은 끝이 있었다. 그러니 지금의 이 상황 또한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아무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 지금과 같은 시간이 내일 다시 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현재 누리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온 마음과 몸을 다해 제대로 살아나가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모든 일을 꼭 두 번 겪고서야 이해하는 내가 여전히 걱정되지만 말이다.


-오늘의 조언 : 필요한 사람 말고 좋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연락의 끈을 놓지 마세요. 이 모든 일이 지나간 후 제일 먼저 만날 사람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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