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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Oct 02. 2020

지친 젊음은 캥거루를 꿈꾸는가

-오늘의 질문

오빠는 혼자 있는 것을 못 견뎠다. ‘싫다’와 ‘좋다’ 중 어디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잠시도 혼자 있는 것을 참지 못했다. 초등학교 5학년 어느 날 문득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시골에서 전학 온 남자아이가 갑자기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이유는 하나다. 좋게 말하면 학교에 텃세가 있었고 나쁘게 말하면 왕따를 당한 것이다. 정도는 심하지 않았지만.


본 투 비 댄서가 있고 타고난 가수도 있는 것처럼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따로 있다. 살면서 가끔 만났다. 이런 부류는 같은 수업을 들어도 시험문제로 나올 만한 것들을 본능적으로 집어낸다. 당연히 조금만 주의를 하면 좋은 성적을 받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학생은 소수다. 나머지는 앞이 보이지 않는 물안경을 끼고 잠수를 한 것처럼 더듬거리며 자신의 점수를 찾아간다. 당연히 품과 노력이 많이 든다. 나와 오빠는 잠수한 쪽이었고 내가 있는 곳이 훨씬 심해였다.



‘공부를 한다’와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는 양립할 수 없는 상태다. ‘공부를 잘한다’는 ‘좋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밖에 흩어져 있는 내용들을 머릿속에 어떻게든 쑤셔 넣은 후 답안지 위에 제대로 끄집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서 묵묵히 그것들을 채워 넣는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 있기 싫었던 오빠가 생각한 방법은 자신이 공부하는 동안 나를 뒤에 앉혀 두는 것이었다. 유레카.


공부하는 뒤에서 조용히 버티는 것이 내 임무이긴 했지만, 함께 있다 보면 대화라는 것을 하게 된다. 당시 대화의 주제는 ‘독립’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른 독립을 하겠다는 의지에 불타올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모와 그리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친구들이 독립을 꿈꾼다. 화목하더라도 자신의 공간이 없거나 집안일에 시간을 뺏겨야 하는 경우, 그러니까 자신의 자유에 어떤 방식이던 침해가 발생할 경우에 독립을 염원하게 된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한국 남자’였다. 자식 교육에 매를 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오빠가 아버지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진 후 매질하는 손을 멈춰 세울 때까지 아무도 그 생각을 막을 수 없었다. 피가 날 정도로 심하거나 아무 때나 때렸다는 소리는 물론 아니다. 아버지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문제는 그 규칙을 만든 사람이 아버지라는 것이다. 자식과 합의를 한 것도, 선거를 치른 것도 심지어 부부가 합의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버지의 자의대로 규칙은 만들어졌고, 그 아래에서 밥을 얻어먹고 사는 자식으로서는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이유를 불문하고 폭력은 자존감을 사라지게 만드는 가장 훌륭한 방식이다. 당한 사람은 자존감과 함께 상대에 대한 애정도 잃어버린다. 자식은 노예가 아니다. 노예도 자꾸 맞으면 탈출을 결심한다. 추노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 아버지의 규칙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다. 아버지의 규칙이라는 것이 말도 안 되게 낡고 비루해 보였다. 내 규칙에 맞게 살고 싶다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독립밖에 없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계산해보니 숨 쉬는 것만 빼면 모두 돈이 들었다(요즘은 마스크 착용 때문에 숨 쉬는 것에도 돈이 든다). 독립에 대해 불타던 욕망은 최저 생계비를 계산하는 단계에서 늘 무너졌다.




그랬던 나라서, 돈을 버는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와 함께 사는 사람들을 보면 잘 이해되지 않는다. 계산서 상으로는 물론 이해가 된다. 집을 구하는 비용, 식비, 세탁 그 외 자잘한 품목들을 계산해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후 실제 혼자 살면서 압박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니 부모와 함께 사는 생활을 택한 이유를 아주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의식의 저 아래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희미한 코러스가 울려 퍼진다.


동물의 무리이던 인간의 군집이던 집단에는 규칙을 만드는 자가 있고 따르는 자가 있다. 사자 무리에서도 코끼리 무리에서도 규칙을 만드는 자는 하나다. 사람의 무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인자가 바뀌면 규칙도 바뀐다. 세종대왕이 살던 시기와 연산군이 살던 때의 규칙은 분명 달랐을 것이다. 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부모와 살면 부모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내 부모는 민주적이고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 훌륭한 분들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 규칙은 그들이 만든 것이다. 부모가 연산군이 아니기 때문에 다행이긴 하지만 세종대왕 같은 부모라도 남은 남이고, 규칙은 규칙이다. 내 삶은 내 것이지만 그 규칙은 성군이 만들어 하사한 것이다. 아직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내 삶의 규칙을 만드는 자가 될 것인지, 누군가가 만들어 준 규칙을 따르는 사람이 될 것인지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다. 한 번도 자신이 규칙을 만들지 않고 다른 누군가의 규칙 속에 편입되거나(결혼), 혹은 타인의 규칙까지 책임져야 하는(육아)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곤란하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혼돈의 생활이 펼쳐질 것이 뻔하다.


그러니 때가 되면, 다 자란 수사자가 엄마와 이모들에게 볼썽사납게 쫓겨나기 전에 스스로 걸어 나오는 것처럼 독립하자. 세상이 힘들고 경제가 어렵고, 혼자 살기에 돈이 많이 드는 것은 안다. 나도 알고 세종대왕도 알고 연산군도 알고 암사자도 안다. 하지만 내가 사는 것이다. 내 삶의 규칙 정도는 내가 만들어야 정상이다.


오빠는 대학에 입학한 후 일주일에 하루는 혼자 있는 연습을 했다. 90년대에는 흔치 않게 혼밥을 하고 혼자 영화를 보러 다녔다(연애할 때에도 이 규칙은 지켰다). 처음에는 못할 짓이라고 하더니 그럭저럭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졌다.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는 내게 용돈을 줬다. 싫은 사람 돈 받고 사는 것 아니라는(아버지 말이다) 명쾌한 멘트와 함께.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 대부분은 안 보이는 물안경을 낀 잠수사들이다. 파이팅!


-오늘의 질문: 독립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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