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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Oct 05. 2020

태어나보니 지옥입니다만

-오늘의 질문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에서 구글에서 일했던 트리스탄 해리스 씨가 미국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발언한다. SNS 같은 소셜 네트워크 기술이 정치적 해킹, 포퓰리즘, 분노 같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의 발언을 다 들은 상원의원 존 테스터가 말한다.


“저는 62세이고 이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더 늙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분명합니다. 전 아마 죽는 걸 다행으로 여기게 될 겁니다. 이런 문제가 터지면 말이죠. 왜냐하면 저는 정말 무섭거든요.”




내가 콧물을 흘리며 교문 안으로 쫄랑쫄랑 들어갔던 해는 소위 ‘경제 성장 이후 베이비 붐’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갈 시기였다. 최고 경쟁률, 최대 학생수를 전부 경신했고 이 기록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이어졌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내 번호는 73번이었다. 한 학급에 학생이 70명이 넘었다는 말이다. 선생이 학기가 끝나기 전에 애들 이름만 다 외워도 기특한 일이었다. 교실이 부족해서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서 학교에 갔다. 학생 개개인의 품성이나 특성 따위 알 수가 없다. 그 많은 아이들은 역시  함께 사회로 쏟아져 나왔다. IMF는 내 세대가 일자리를 구할 즈음 터진 일이다. 세상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어쩌자고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태어난 김에 사는 것이긴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들었다.




그러다 어머니를 보면 스르륵 꼬리를 내렸다. 어머니는 방앗간 집 맏딸이었다. 추석과 설이 되면 새벽부터 밀려드는 쌀을 다 빻고 나서야 등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차가운 음력 1월에 얼어붙은 쌀을 기계에 넣으려면 우물물을 길어서 일일이 얼음을 씻어내야 했다. 간간히 고추를 빻거나 기름을 내던 기억은 귀여운 추억이다. 어머니는 지금도 티브이에 방앗간 풍경이 나오면 고개를 돌린다. 그 전에는 동생을 업고 피난을 떠났다. 내가 힘들다고 말할 상대가 아니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그 전 세대가 해 놓은 일에 휘말려 정신없이 살고 있다. 어머니는 그보다 전 세대가 벌여 놓은 전쟁과 그 뒷감당에, 나는 어머니 세대가 드디어 안심하고 낳아버린 애들과 망쳐버린 경제 때문에 동동거렸다. 내 뒤로 오는 사람들은? 드디어 내 세대가 저질러 놓은 인터넷과 SNS 문제 같은 것들 때문에 엉망이다.



산업 혁명 이후로 농축된 기후 문제는 앞 세대 모두의 책임이지만 풀어야 할 세대는 따로 있다. 앞으로 닥칠 문제들은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새로운 것들이다. 당연히 해법은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찾아야 한다. 미안하지만 사실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어른 말씀을 잘 듣는다’로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먼저 살았으니 경험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몹시 남루하고 빛이 바랜 것은 어쩔 수 없다.


신입사원때 회식에 가면 당연하다는 듯이 팀장 옆 자리에 앉혔다. 팀장의 개인적인 심부름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시켰다. 선배가 주는 술은 다 마시는 것이 예의였다. 음식은 소화를 시킬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을 뿐, 예의를 따질 일이 아니다. 아무리 팀장이라도 멋대로 개인적인 일을 시켰다가는 배임죄로 고발당할 수 있다. 지금쯤은 신입 여직원이 왔다고 남자 팀장 옆에 앉힌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사라졌겠지. 


그러니 나 같은 사람들이 선배랍시고 떠드는 말에 귀를 기울여서는 곤란하다. 문제는 새롭게 튀어나오고 해결할 일은 쌓여간다. 앞 세대와는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봐야 조금이라도 해결 가능성이 생긴다.


이러니 죽는 것이 다행이라는 상원 의원의 말이 백번 이해된다. 요즘 라디오에서 나오는 선전 중 가장 무서운 것은 “우리 손자는 150살까지 산다던데…..” 하는 제약회사 광고다. 믿어지지는 않겠지만, 진심으로 뒤 세대에게 미안하다. 어른 말 듣지 말고 새로운 생각을 할 때다. 지금도 조금 늦었을지 모른다.


-오늘의 질문 : 지구 온난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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