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칭 포 패런츠

-오늘의 질문

by 지안

임신을 알았을 때 바랐던 것은 ‘손가락 10개, 발가락 10개만 제대로 있으면 돼’였다. 내 오른손이 약간 기형이어서 생긴 염원이다. 머리가 비상하거나 외모가 빼어난 것을 원할 겨를은 없었다. 그저 내 손만 안 닮으면 됐다.


아이가 태어나고 염원이 이루어진 것을 알았을 때 다른 마음이 생겼다. 부모란 어쩔 수가 없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건강하게 자라기만 바란다고 말해도 다 거짓말이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아이를 00 하게 키우고 싶어’라는 욕망이 있다. 그것이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의 반영이던 살면서 느꼈던 경험이던 상관없다. 아이의 능력이나 성격과는 무관하게 부모가 원하는 것이 생겨버린다.




아이가 딸이란 것을 알고 원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태권도가 됐든 유도나 합기도가 됐든 호신용 무술을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살아보니 여자가 살기에는 만만한 세상이 아니라는 경험이 불러온 결과였다.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몸 정도는 지킬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자는 것이 두 번째 결심이었다. 종류는 상관없다. 평생 친구처럼 곁에 두고 연주할 수 있으면 된다. 음악을 듣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연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나는 믿었다(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쯤 태권도 학원을 알아봤다. 어디서 들은 소리인지 “여자는 그런 거 안 한단 말이야.”라며 딸은 단호히 거부했다(어린이집을 다니거나 티브이를 보면서 아이의 사회화는 시작됩니다). 결심 1 실패! 피아노는 몇 년 만에 집어치웠다. 둘 다 실패하기는 나도 싫어서 달래고 얼러 보았지만 본인이 싫다는데 어쩔 수 있나. 결심 2도 실패!


이후로 아이에게 원하는 것은 없다. 그런 것 가져봐야 될 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영화 한 편을 보면서 생각했다. ‘어떤 아이로 키우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떤 부모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있었나?’



2012년 내 최고 영화는 [서칭 포 슈가맨]이었다. 1970년대부터 수 십 년 동안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던 가수 ‘슈가맨’을 찾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몇십 년 동안 베일에 싸인 가수였던 것 치고는 쉽게 영화 초반에 그를 찾아낸다. 이후는 슈가맨으로 알려진, 로드리게스라는 이름의 가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와 주변의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와 노래가 영화를 채운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피가 흐르는 멕시코계 이민자의 후손인 로드리게스는 디트로이트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남은 시간에는 하수도를 처리하는 것과 같은 궂은일도 하면서 어렵사리 낸 6장의 음반은 미국에서 모두 망했다. 우연에 필연이 더해져 남아공에서 노래가 히트했을 때에도 그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화장실도 없는 집을 전전하며 노래를 하고 아이들을 키웠다.


영화 중반 그의 딸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도시는 사람들에게 꿈도 기대도 크게 품지 말라고 하죠. 하지만 아버지는 저를 특수 계층이 갈 만한 곳에 데리고 가셨죠. 원한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통장에 돈이 얼마 있건 상관없어요. 그렇게 아버지는 최고를 보여주셨고 저도 다를 바 없다는 걸 알려주셨어요…… 우리는 도서관과 박물관, 과학 전시관을 유치원처럼 자주 드나들었고, 디에고 리베라의 미술을 관람하거나 피카소나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보며 도시 밖의 삶에 대해 배웠죠. 책과 그림과 음악을 통해서요.”




아이에게 하는 모습을 보면 부모의 인간성이 바닥까지 드러난다. 부모도 인간인지라 욕망이 있고 단점도 있으며 실수도 한다. 아이는 약하기 때문에 부모가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던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욕망을 자식에게 투영하거나 제삼자 앞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말이나 행동들을 자식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유다. 실수에 대해 반성하기보다는 ‘못 본 척해’라는 말로 넘겨 버리기도 한다. 아이는 당연히 그런 것들을 흡수한다. 아이의 행동이 이상하다면 먼저 부모는 자신의 행동을 돌아봐야 한다.


자국에서는 실패한 음반이 지구 반대편에서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는 이야기만으로 영화는 충분히 특이하고 새롭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명치끝이 콕콕 쑤시고 눈물도 핑 돌았다. 하지만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딸들의 인터뷰였다. 영화가 전하려는 의도와 상관없이 그 부분이 내게 찰싹 달라붙어 버렸다. 로드리게스는 실패한 뮤지션이지만 훌륭한 인간이자 좋은 부모였다. 나는 딸에게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 멍한 상태에서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아버지는 한 번도 실의에 빠지신 적 없어요. 그냥 계속 움직이고 포기 안 하고 사는 거죠.”


로드리게스의 딸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부모의 말을 듣고 자라지 않는다. 행동을 보며 자란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는 말로 설명해줄 수도 없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행동을 보며 리트머스 용지처럼 쑥 빨아들인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어렵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더 어렵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가졌을 때 좀 더 고민했으면 좋았겠지만 할 수 없지. 이래저래 내가 너무 걱정이다.


-오늘의 질문 : 어떤 부모가 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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