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는 바이엘을 겨우 뗐다. ‘겨우’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이후로 부모님이 피아노 학원에 보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로 기억한다. 울고 매달려도 소용이 없었다. 군사 정권 시절의 엄혹함과 관련된 모종의 문제 때문이었는데, 지금이야 이해하지만 그때는 알게 뭔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우고 싶은 것이 생겼는데, 그것을 거부당하자 대단히 실망했다. 그래서 반항심에 공부도 하지 않았다……는 아니고, 공부는 원래 싫어했다. 덕분에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한을 품은 공부 못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딸이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친구와 수다를 떨다 옛날이야기가 나왔다. ‘그랬다니까, 그때 부친이 그 소원 하나를 안 들어주셨어’ 뭐 이런 이야기였다. 나에 대한 동정심은 먼지만큼도 찾을 수 없는 냉정한 표정으로 친구가 대꾸했다.
“지금 배워. 돈이 문제야? 시간이 없어? 허락받을 아버지도 안 계시잖아, 이제.”
“돈도 없고 시간도 없지만 그보다는 그걸 지금 배워 뭐 하겠어?”
손사래를 치며 내가 대답했다.
“그럼 초등학교 때는 피아노 배워서 뭐 하려고 했어? 피아니스트가 꿈이었어?”
그랬다. 친구의 말에 틀린 곳은 없었다.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생각은 가져본 적이 없다. 가뜩이나 손도 기형이다. 나는 그저 피아노 소리가 좋아서 치고 싶었을 뿐이다. 며칠 동안 친구의 말을 곱씹었다. 몇 주 후 동네 학원을 찾아갔다.
간단한 악보에 반주를 붙이는 정도면 된다는 나의 말에 피아노 선생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편곡한 악보를 제공하고 최소한의 화성학 설명을 해주는 것으로 수업 내용을 합의했다. 일주일에 한 번 선생은 내가 원하는 노래의 악보를 들고 왔다. F조일 때는 이런 구성의 반주를 C조일 때는 이런 식으로…… 설명이 끝나고 선생의 본보기 연주를 핸드폰에 저장했다. 다음 주 수업 시간까지 최대한 녹음한 것과 비슷하게 만들려면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연습은 필수였다. 퇴근 후 시간의 대부분을 피아노 앞에 쏟아부었다. 2년 후 지방 발령으로 학원을 그만둘 때까지 연습은 이어졌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지금 피아노 실력은? 형편없다. 배운 티도 나지 않는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재능 없고 손도 굳은 중년의 피아노 실력이란 연습을 하는 그때뿐이다. 몸에 붙지 않는다. 어렸을 때 배운 것처럼 손에 익어 술술 풀려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은 늘지 않는 것이고 행복한 것은 행복한 것이다.
피아노를 못 배운 한은 다 풀었다. 거기에 더해 꼭 거창한 꿈을 가지고 뭔가를 시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은 어른이 되었다.나의 즐거움은 소중하다. 꿈을 이루는 것 못지않게 애를 써야 누릴 수 있다. 한참 노력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더라도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면 된 거다. 어른이 된 후의 배움은 시험도 필요 없으니 마음 편해서 좋다.
작년 초, 휴가로 한 달 정도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는 옆 사무실 동료가 인사차 찾아왔다. 사무실에 인력 충원이 되면서 쌓여 있던 연휴를 드디어 소진할 수 있는 타이밍이 되었다고 했다(고 쓰고, 회사의 강제휴무라고 읽는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은 그 친구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빨리 항공권 예약부터 하라고 말하자 동료가 대답했다.
“혼자? 에이, 됐어."
“어떻게 생긴 시간인데 이 기회를 날려? 애들은 컸겠다, 와이프는 싫다고 했다며?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가. 나중에 무릎 아파서 고생하지 말고.”
“갑자기 그게 되냐? 이 나이에 젊은 애들처럼 그런데 막 돌아다닐 수도 없고. 생각만 해도 무섭다.”
코로나까지 겹친 지금, 동료의 버킷리스트는 기약 없어졌다
남미 배낭여행을 떠날 결심은 출발 3주 전에 했다.가고 싶다는 생각을 내내 품고 있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긴 휴가를 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옆 사무실 동료처럼 나도 갑작스럽게 휴가가 생기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루 정도 고민했다. 낯선 곳, 알 수 없는 나라,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을 혼자 가는 것이 괜찮을까? 무조건 출발하기로 했다. 기회가 두 번 와줄 리가 없다.항공권을 일단 산 후, 여행 정보를 모았다.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놀려 가서 사고사 할 수는 없다.
지금 돌아보면 스페인어 몇 마디라도 하고 갔어야 했다는 반성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은 날 기다려주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버리는 시간을 꼭 붙들어 이용하는 것뿐이다. 남미에서의 두 달은 만족스러웠고 행복했다. 길게 적혀 있던 내 버킷 리스트 중 하나도 삭제할 수 있었다.
시작하기에 늦은 때는 없다는 말은 절반쯤 진실이다. 목표를 어떻게 잡는지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도 믿어서는 곤란하다. 노력하면 되는 일이 몇 가지쯤 있을 뿐이다. 딸에게도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 따위는 해 본 적이 없다. '이건 아니고, 저건 재능이 없는 것 같으니 이런 것 중 하나를 시도해 보지 않을래?'가 최대한 해줄 수 있는 말이었다. 지금 노래와 춤을 미친 듯이 연습한다고 나나 딸이나 아이돌이 될 수는 없다. 그런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원한다면 근접한 곳까지 가볼 수는 있다. 하고 싶은 일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데 나이 때문에, 환경 때문에 포기하면 곤란하다. 여러 가지 한이 겹겹이 쌓여서 고집불통인 어른이 될 뿐이다. 그러니 원하는 것이 있다면 시도하자. 단언컨대 잘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반복하다 보면 즐거움 정도는 얻을 수 있다. 즐거움을 얻기 위해 늦은 나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