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교육을 마치고 업무에 투입된 지 석 달쯤 지났을 때였다. 3주 정도 그를 교육시킨 것은 ‘여러 사람’이었다. 제공되는 교육자료가 있긴 했지만 업무에 관한 모든 것을 글로 옮겨 놓는 일은 불가능하다. 선임자들이 일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구두로 설명을 듣는 것이 3주간 교육의 주된 방법이었다. 최대한 많은 것을 알려주려고 노력하지만(안 그러면 바로 사고로 이어지니까), 신입직원에게 충분할 리는 없다. 나를 포함해 동료 직원들은 ‘이렇게 일을 처리하면 큰일 나’는 것들을 위주로 설명을 했다. 나머지 덜 중요한 것들은 일을 하면서 요령껏 깨달으면 된다. 그런 상태로 그는 일 인분의 일을 하는 직원이 되었다.
옆 사무실 직원이 몇 번인가 투덜대는 말을 했다. 자료가 방만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이 누락되어 사고가 나는 것이지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자료를 공유해야 하는 사람들의 귀찮음 지수는 상당히 올라간다. ‘신입이 다 그렇지, 조금만 기다리면 잘할 거야’라며 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그녀가 말했다.
“아니 어떻게 좀 해봐요. 너무 지저분하잖아. 아니면 내가 불러서 말해요?”
세상의 많은 일은 시간이 해결한다. 나까지 나서야 하는 일은 많지 않다. 자료 정리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었던 이유다. 문제는 그녀의 생각이 나와 달랐다는 것이다. 굳어 있는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냐, 내가 지금 말할게. 기분 풀어.”
그는 나와 함께 근무하는 직원이다. 까도 내가 깐다. 창 밖으로 얼핏 보이는 그를 찾아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모니터에 자료를 띄우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은 정리를 좀 해주면 더 아름답지 않겠어? 다음부터는 말이야.”
“그런 건 미리 말을 해줬어야죠.”
일부러 느릿느릿 말을 꺼낸 내게 그가 힘껏 당겨진 후 튀어나온 화살처럼 대꾸했다.
“아니, 이 사람야. 지금 말하잖아.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자고.”
순간적으로 붉어진 얼굴의 그가 씩씩거렸다. 이런 것까지 일일이 이야기해 줄 필요는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호흡하는 법을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니 듯 일의 일정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미리 알려준다고 다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알려주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들이 뒤범벅되어 일의 처리를 더디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다음부터, 다음부터’를 몇 번인가 외치는 사이 그는 평정을 되찾았다.
교육 형식의 문제이든 구성상의 실수이든 나는 그가 ‘이런 식으로 일을 할 줄 알았’다. 그즈음의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스무 살이 넘은 이후로 내게 세상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학교에서의 고민도, 매번 실패한 연애도, 직장 생활의 고단함에 대해서도 미리 알려주거나 방법을 보여준 사람은 없었다. 묵묵히 걸어가다 고스란히 일을 당하고, 마음을 다치고, 그 과정에서 남은 조각들을 주워 담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역시 그런 과정을 겪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조언 따위는 불필요한 충고와 다르지 않다고 믿었다. 아무리 후배가 생겨도 내 생각을 묻기 전까지는 입을 열지 않는 것이 나의 생활신조였다.
그런데 그의 말이 가슴에 박혔다.
“그런 건 미리 말을 해줬어야죠.”
미리 말을 해주면 상황이 나아질까? 모르겠다. 나 자신은 온몸으로 일을 겪으며 하나하나 체득하는 타입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미리 말을 해주는’ 것만으로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그것 때문에 결국 그가 나를 피하고, 꼰대라 손가락질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내보다 십 년 이상 어린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충고로서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이 정도만 알고 있었다면 좀 더 쉬었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적었다. 개인차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니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존재하는구나’ 정도로 가볍게 생각해줘도 무방하다.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