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예식장에 간 것은 20년 전이다. 그 시절까지는 결혼하는 '친구’가 있었다. 이후로도 직장 동료나 지인들의 결혼식이 있긴 했지만 참석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결혼’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딛는 신부 혹은 신랑에게 그 곳의 끝인 ‘이혼’을 경험한 사람의 축하가 무슨 쓸모가 있을까 하는 심리적인 문제에 더해 예식 비용이 오르고 있는 요즘 비싼 밥을 먹어 치우기보다 ‘입금’ 정도로만 끝내는 것이 서로에게 좋지 아니한가 하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결혼하는 비율은 줄었다고 하는데 청첩장은 꾸준히 도착한다. 국가 통계로는 혼인건수가 급감했다는데 내 주위는 왜 이런가 싶을 정도다. 결혼한 커플의 대부분은 금방 아이를 낳는다. 피곤한 얼굴로 돌아다니며 삶의 노곤함과 생활의 절절함을 토로한다. ‘야, 나도 힘들다고’ 같은 대답을 할 분위기가 아니다. 절대적인 나이로 감을 잡지 않는다면, 결혼한 지 30년 된 사람과 3년 된 사람의 차이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1-2년 전에 테이블 이 편에 앉아 세대 차이와 꼰대에 대해 떠들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테이블 저 편으로 자리를 옮겨 아이와 배우자, 그에 따라온 가족들에 대해 고민을 풀어놓는다. 자세의 전환이 계절의 변화보다 빠르다. 테이블 저 편으로 옮겨간 후에는 결혼한 지 10년이 된 사람과도 20년이 지난 사람과도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다. 인생이 ‘결혼 전과 후’로 나뉘는 듯한 느낌이다.
세대를 아우르며 대화할 수 있는 원동력은 ‘공통 소재’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한 가지 유형으로 묶이지 않는다. 부모와 사는 사람, 독립한 세대, 커플이거나 솔로인 경우로 다들 나뉘어서 쓸만한 이야깃거리를 찾지 않으면 대화가 성립하지 않는다. 회사 생활의 스트레스나 어제 본 드라마, 영화라도 테이블 위에 올려야 한다. 갖은 노력 끝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부탁받고 얼떨결에 나간 소개팅처럼 불쑥 얘기를 꺼내고 침묵하는 일이 반복된다. 결혼한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살짝 틀어진다. 배우자에 대한 이야기(험담이 대부분이긴 하다), 육아 문제만으로 할 말은 끝이 없다.
세상도 변했고 시대도 바뀌었다. 우리나라에 가정용으로 컴퓨터가 보급된 것은 1990년대다. 그때는 프로그램도 빈약해서 글자를 타이핑하거나 전화선을 이용한 통신 정도에 사용했다(크기는 또 얼마나 컸는지……). 누군가 과거의 나에게 핸드폰을 보여주며 “네가 사용하는 도스 컴퓨터와 비슷한 종류의 물건”이라고 말했다면 ‘정신 차리라’고 했을 것이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지금은 궁금하다. 30년 만에 컴퓨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변신했는데, 결혼생활은 어째서 세대를 넘어 공감할 만큼 비슷한 지 말이다.
1990년대에 결혼한 선배와 2020년에 아이를 낳은 후배는 놀라울 정도로 이야기가 잘 통한다. 물론 ‘나 때는 00문제로 힘들었는데, 요즘 애 키우기는 좀 수월하지’ 정도의 차이는 있다. 배우자 이야기를 해도 격한 응원을 받고, 육아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공감을 얻는다.
미혼들은 BTS의 멤버 이름을 다 외우지는 못하더라도 빌보드 차트에서 1등을 했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 떠들 수 있지만 ‘결혼’의 협곡 너머는 그렇지 않다. 그들 만의 폭풍이 몰아치고 그 땅 위로만 지나가는 태풍이 있다. 50년 전에도 쳤고, 30년 전에도 불어왔으며, 어제도 찾아온 불길한 날씨가 그들 머리 위에만 떠 있다. BTS이야기를 꺼냈다가는 ‘그런 것 찾아볼 여유 있어 좋겠다’는 핀잔만 돌아온다. 미혼의 입장에서 보자면 기혼이란 ‘외국어를 쓰는 한국인’처럼 대화하기 난감하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결혼’이라는 것이 ‘다른 모든 일에 관심을 끊어도 상관없다’는 증명서 이기라도 한 것일까? 지금 대한민국은 변화하는 기술과 넘쳐나는 정보들로 매일이 바쁘다. 잠깐 한숨을 돌리는 사이 나만 역에 내려놓은 채 달려가버리는 기차처럼 모든 것이 변한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을 어쨌거나 기차를 따라잡으려 노력하는데, 기혼자들은 ‘증명서’를 앞에 놓고 어깨만 으쓱하고 있는 기분이다. 왜일까? 왜 그래도 된다고 생각할까? ‘결혼해서 너무 행복해’라고 진심으로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왜 다른 모든 것에 관심을 끊고 ‘결혼’에만 신경을 쓰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가정용 컴퓨터가 보급되던 1990년대 드라마는 ‘가족’이 주인공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남녀가 만나더라도 ‘결혼해서 이룬 가족’ 간의 이야기가 많았고 이런 드라마들이 60퍼센트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사랑이 뭐길래’ 같은 드라마가 그랬다. ‘전원일기’ 같은 건 …… 말하지 말자). 어마어마한 숫자다. 적어도 그 정도의 사람들이 이야기에 공감했다는 말이다.
요즘 드라마에서 ‘결혼’을 주제로 삼은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막장드라마가 아닌 이상 결혼에 관한 이야기는 소재로도 사용되지 않는다. 영원한 주제인 ‘사랑’이나 ‘연애’에 관해서는 쏟아져 나오지만 이제 결혼은 한걸음 뒤로 물러난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 미디어가 현실을 앞서 나가는 중이다. 아무리 애를 쓰고 상상력을 발휘해도 ‘결혼’을 즐겁거나 아름답게 포장하기 힘들어진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결혼한 분들은 모두 모두 행복하시길 바랍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