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는 글 - 괜찮다, 잘하고 있다

by 지안

이른 아침 마추픽추에 가기 위해 게스트 하우스를 나섰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이 어디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여행객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그곳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산길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커피를 마시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짙게 낀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유적지를 둘러볼 수도,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사방이 물에 젖은 돌덩어리라 잘못 밟으면 미끄러져서 장기 체류를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시간쯤 기다리고 나자 서서히 흰색의 방해물이 물러갔다. 사람들이 환호를 질렀다. 그대로 주저앉아 눈 아래 펼쳐지는 거대한 도시 유적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최대한 줄인 짐을 챙겨 걸음을 옮겼다.



마추픽추는 많은 인구가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도시 유적지다. 인공적으로 배열된 돌 앞에는 주거지나 특정 용도의 장소라는 설명문이 붙어 있었다. 돌이 쌓인 모양만 보고 그 모든 것을 알아낸 고고학자들의 눈썰미에 감탄하다 어느 유적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지나왔던 곳보다 몇 배는 큰 집 터였다. 잉카제국의 관리자가 거주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공간이었는데, 한쪽 방(방 하나가 일반 집 크기만 했다)에 ‘공주의 옷 방’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어떤 근거로 옷 방이라는 설명이 붙게 된 것인지는 모른다. 이유는 있을 것이다. 내가 놀란 점은 크기였다. 일가족이 거주하는 일반 집 터 보다 공주의 방(그것도 옷만 넣어 놓은!)이 컸다.


마추픽추는 누가 봐도 인간이 만든 건축물이다. 근처를 둘러봐야 보이는 것은 침 뱉기 좋아하는 라마 정도다. 짐을 옮기는 일에 싫지만 함께 수고해 줄 말이나 소도 없다. 즉 사람이 산 중턱까지 돌을 날아와 하나하나 쌓은 것들이다. 어떤 돌은 집이 되었고, 어떤 것은 합해져서 물길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쪼그리고 그것들을 만졌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높은 곳에 앉아 그들이 일 하는 과정을 지켜봤을 것이다.


내가 그곳에 태어났다면, 마추픽추의 험한 산중에서 돌을 옮겼을 것이다(대부분의 문명에서 관리자들이란 한자리수 비율 정도다. 확율적으로 나머지에 속했을 확률이 더 높다). 좁은 집에서 감자와 옥수수를 먹으며 온몸을 바쳐 돌을 쌓았을 것이다. 훨씬 좋고 넓은 곳에 왕이 살 수 있도록, 공주가 옷을 그득그득 담아 놓을 수 있도록 최대한 힘을 끌어 모아 일을 했을 것이다. ‘역사는 진보한다’라는 말을 믿지는 않지만 적어도 마추픽추의 돌을 쌓아야 하는 운명보다는 지금이 나은 것 같다.



조선시대 서민의 평균 수명은 35세 정도라고 한다. 영양과 생활 상태가 좋았던 양반들은 60년을 넘게 살아 잔치까지 벌였지만, 전체 인구 비율에서 볼 때 매우 적다. 나머지 서민이나 노비들은 삼십 년 정도 이것저것 힘들게 일을 하다 죽어갔다.


지금 나는 사십이 훨씬 넘었다. 200년 전 사람들은 사십 이후의 삶은 생각하지도 걱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서른 정도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 이 나이에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당할 때마다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하는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사회에 갓 나왔던 때를 떠올리면 지금이 그때보다 낫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려운 것은 어렵다.


당신이 어떻게 살고 있든 살아남았다면 된 것이다. 잘하고 있다. 살아남는 일에 이 짧은 이야기들이 마추픽추를 덮고 있던 안개의 물방울만큼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곧 해가 뜨고 안개는 걷힐 것이다. 그때는 이런 조언 따위 무시하고 당신의 걸음을 걸으면 된다.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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