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질문
‘일론 머스크’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영화 ‘아이언 맨’이 개봉했을 때였다. 깜찍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한 ‘아이언 맨’의 캐릭터를 ‘일론 머스크’에서 가져왔다고 했기 때문이다. 흠, 누구나 가슴에 원자로 하나쯤 품고 사는 것인가,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현실판 일론 머스크의 가슴에는 아크리액터(아이언 맨의 가슴에 넣고 빼고 하던 소형 원자로의 이름입니다) 같은 것은 없다. 다행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처럼 귀엽지도 않다(네, 제 개인적 취향입니다). 대신 온라인 결제 시스템 ‘페이팔’을 만들어 판 돈으로 스페이스 X라는 우주 관련 회사를 창업하고 전기 자동차 회사 테슬라를 만들었다. 내 생전에 살아있는 사람의 전기 따위를 읽게 될 줄은 몰랐지만(돌아가신 분의 것도 잘 안 읽습니다만), 그 책에 적혀 있다(일론 머스크의 광팬이 아니라면, 책은 권하지 않겠습니다. 훗~).
일론 머스크의 꿈이 화성에 가는 것이라는 것도 거기서 읽었다. 화성. 먼 곳이다. 달에 발자국을 찍고 돌아온 닐 암스트롱 급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화성에 가서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SF와 현실 세계가 슬슬 혼동되기 시작한다. ‘꿈’의 스케일이 다른 것이다. ‘내 집을 마련’하고, ‘편안한 노후’를 준비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겠다는 나의 꿈도 이루기 어렵고 벅차지만, 어쩐지 내 시야가 너무 소박하고 조심스러우며 지협적인 것이 아닐까 싶어 졌다. 그러니까 일론 머스크는 내게 ‘반성’을 줬다(뭐 그 사람이야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하지만 화성이라니. 인간이 달 표면을 걸은 것도 달랑 한 번이다. 미국이라는 천조국이 어마어마한 자금을 쏟아부어 겨우 한 번 성공한 것이다. 그걸? 이 사람이? 뭐, 꿈이야 크게 갖는 것이 좋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셨으니까,라고 할 수 있는 한 힘껏 그를 무시했다. 2018년 팰컨 헤비라는 로켓을 띄우고, 로켓의 재활용을 위해 부스터들을 얌전히 착륙대 위로 내려앉게 만드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제는 너무 흔해져서 기사로도 나오지 않는데, 지금도 스페이스 X는 계속해서 팰컨 해비를 띄우고 있고(느낌상.... 한 달에 한 번은 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시험을 포함해서요), 러시아와 중국, 일본과 인도에서도 쉼 없이 로켓을 쏘아 올리는 중이다. 내가 티브이 속 주인공의 사랑에 전전긍긍하고 어제와 다른 주식시장에 온 정신을 쏟는 동안 세상은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는 느낌이다. 뭔가 조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AI와 관련해 뜨거웠던 시간은 2016년이 아닌가 싶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경기가 열렸던 그때 말이다. 나란 사람, 바둑에 관해서는 흰 돌과 검은 돌이 사용된다는 것만 알 뿐인 무식한 사람이지만 이런 나조차 둘의 대국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알파고의 승!
인간과 AI의 대결이 바둑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먼저 진행된 것은 체스 쪽이었다. 1996년 딥 블루라는 AI와 가리 카스파로프라는 체스 챔피언의 경기는 인간의 승리로 끝났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인간이 마지막으로 AI를 이긴 것이 이 게임이다. 1997년 재경기 결과 딥 블루가 이겼고, 2011년 제퍼디 퀴즈쇼 최다 우승자인 켄 제닝스와 AI 왓슨의 경기도 인간의 패배로 끝났다. 그다음이 이세돌이고 그다음이 커제다. 그러니까 1996년 이후로 인류는 단 한 번도 AI를 이긴 적이 없다.
그래서 AI가 인간의 미래를 지배하는 암울한 미래가 걱정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냐면(물론 걱정합니다만) 그건 아니다. 적어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어제 과장이 던져 준 통계도 작성해야 하고, 보름 전부터 잡혀 있던 회의 자료도 만들어야 해서 바쁜 것은 안다. 갑자기 야근과 잔업이 이어지고 있어서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라는 것도 이해한다. 교수가 뭐라고 지껄인 것인지 일도 납득 못 한 과목의 시험 준비를 해야 해서 마음이 복잡한 상태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바쁜 일 때문에, 시험이 걸려 미뤄두었던 드라마, 영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더라도 잠깐 짬을 내서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한 번쯤 체크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우주나 AI, 양자역학에 대해 모른다고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 큰 지장은 없다. 지금 내가 월급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약간의 컴퓨터 활용 능력 정도다. 살림은 양자역학 너머 마법의 영역이다(인공지능이 탑재된 가전제품도 있긴 하지만, 아직은 내가 낫다). 공부로 해결되지 않는다. 지장이 있다면 티브이 광고에서 ‘퀀텀’ 어쩌고저쩌고 하는 문구가 나올 때 살짝 작아지는 정도다. 미적분도 포기한 나 같은 ‘수포자’에게 양자역학이란 이집트 상형문자처럼 난해한 것이다. 이해할 꿈도 꾸지 않는다. 게다가 NASA나 구글 같은 곳에서 큰돈을 퍼부어 양자 컴퓨터라는 것을 만든다고 해도 뭐가 문제겠는가. 하다못해 내 세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양자 컴퓨터가 완성되면 얼마 전 친구가 쏠쏠하게 재미를 봤던 비트코인은 쓰레기가 될 위험이 있다(이 이야기를 해 줬더니 친구는 몹시 놀랐습니다. 물론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고 금방 안심했지만요. 그럴 때가 아니라니까, 친구). 액티브 X를 물리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은행이나 인터넷 결제 관련한 모든 암호체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농후하다. 우리 대부분은 현금을 집에 쌓아두거나 하지 않는다(쌓아 놓을 정도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은 애써 하지 않겠습니다). 은행에 숫자로만 남겨진 잔고가 하루아침에 털려버릴 수도 있다.
즉 내 이해 여부와는 상관없이 세계는 멋대로 커다란 과학의 바다 위에서 대 항해를 시작해버린 느낌이다. 작은 보트라도 빌려 쫓아가지 않으면 영영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몇 푼 안 되는 돈마저 털린다면 집을 살 수도, 노후 준비를 할 수도, 데이트를 할 수도 없다. 슬프다.
일론 머스크는 사막이나 오지를 포함한 지구 전 지역의 인터넷 사각지대를 커버하기 위해서 스타링크라는 위성을 발사해 지구를 감싸버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벌써 몇 백 개는 쏘아 올렸다. 무려 만 이천 개의 위성을 발사할 것이라고 한다. 우주인이 쳐들어와도 위성 때문에 지구에 착륙하기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공상마저 하게 된다. 그가 관여한 뉴럴 링크라는 회사에서는 인간의 두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내가 모르는 사이, 세상은 SF 속으로 벌써 몸을 담근 것 같다.
일론 머스크를 한껏 얕잡던 마음을 버린 지는 오래다. 근거는 없지만, 나는 일론 머스크가 화성에 갈 것만 같다. 그가 우주선에 태워 보낸 테슬라 차 속 마네킹처럼, 우주의 어딘가에서 들숨과 날숨을 뱉을 날이 반드시 올 것만 같다. LA의 교통 체증을 위해 땅 속에 길을 만들자는 남자라면(이걸 목표로 세운 회사가 ‘보링 컴퍼니’입니다) 못 할 일이 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말이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처럼 귀엽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이따금 ‘코로나 무시’ 발언 같은 것을 해도 인간적으로 안심이 된다. 돈도 많고 꿈도 이룬 사람이 완벽한 판단능력까지 갖췄다면 그건 살아있는 AI다. 곤란하다. 이런 것에나 안심하고 있는 내가 좀 걱정되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