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유리 동물원’일까?

-아트원씨어터 2관

by 지안

예술은 현실을 반영한다. 반걸음 정도 앞서갈 수도 있지만(이런 경우 ‘천재’의 탄생이라 칭송받는다), 현실과 한 몸처럼 서 있거나, 혹은 반걸음 늦게 나타난다. 어떤 형태로든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예술이란 생명력을 부여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1944년 미국에서 초연되었던 연극이 2021년 서울에 올려진 이유는 뭘까? 어떤 마음이 이 작품을 소환했을까? 그런 궁금함이 내가 이 연극을 찾게 된 이유였다.




이십 대 청년인 톰은 집 나간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와 몸이 아픈 누나를 부양하고 있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지는 한참 되었기 때문에, 톰이 집안을 책임지기 전까지는 엄마가 남매를 전적으로 돌봤었다. 한때 부양자였던 엄마의 간섭은 그래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엄마의 참견은 밥 먹는 방식에도 잔소리를 할 만큼 세세한 곳까지 미치지만, 늘 그렇듯 아이들의 마음속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


바야흐로 때는 대공황 시기. 경제는 불안하고, 일자리는 취약하다. 풍문에 들리는 전쟁 소식에 마음을 설렐 정도로 젊은 톰의 생활은 지루하다. 톰의 마음은 언제나 다른 곳에 가 있다. 그곳이 영화관이든 마술쇼를 하는 술집이든 미지의 바다에 떠 있는 배 위든 상관없다. 비루한 현실을 외면할 수만 있다면 어디든 가능하다.


엄마가 구질구질한 현재를 살기 위해 택한 방식은 화려한 과거를 기억하고 음미하는 것이다. 남매에게는 그런 과거조차 없다. 과거로 숨어버린 엄마와 달리 남매는 현실을 살아 낼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겨우 숨이라도 쉬기 위해 찾은 방법이 로라가 모으는 '유리 동물원'과 톰이 매일 밤 향하는 '영화관'이다. 당연히 엄마와 아이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세대가 과거를 통해 소통할 수 있을까?




어딘가 당신의 생활과 겹치는 부분이 있지 않은가? 내 것과 겹치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나 역시 그런 부모 세대를 가지고 있고, 현실은 재미없다(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런 부모'가 되어가는 중이다. 누구도 자식과 과거를 소통할 수는 없다). 당장의 집세를 내기 위해 답답한 회사에서 일해야 하고, 꿈을 가지고 있지만 실현할 시간도, 방법도 없다. 집세를 벌어오는 것이 급하고, 이 달의 집세를 낸다면 다음 달의 집세를 또 내야 하기 때문이다. 내 가족이 언제부터 내 곁에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내 탓은 아니지만,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답답하다.


현실은 또 어떤가? 대공황은 아니지만, 취업은 힘들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일자리 자체가 줄어버렸다. 월세를 내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재미없는 일이라도 해야 한다. 내 하루하루가 한심해 보이지만 당장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다. 내 한 몸만 돌봐야 한다면 가능할 것 같은데…… 모든 책임을 버리고 떠나면 행복해질 것 같은데……. 유리 동물원처럼 깨지기 쉬운 것들을 팽개치고 떠난다면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톰의 생각이 잘 벼린 화살처럼 가슴에 박힌다.




아마도 이런 감정이 ‘유리 동물원’이란 연극을 지금 소환한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답답하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언제 현실이 뻥 뚫린 고속도로 같았던 적이 있느냐고 타박하는 어른이 있다면, 일단 무시해도 좋다. 그분은 과거를 멋대로 채색해 아름답게만 기억하는 사람이다.


절대적인 빈곤은 줄어들었지만 상대적인 경제적 차이는 입을 틀어막을 정도로 벌어지고 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거나 비트 코인으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린다. 상식적으로 누군가 벌었다면, 그 이상의 사람은 잃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건 이성의 영역일 뿐이다. 답답한 세계란 1944년에도 2021에도 동일한 기본값이다.


이 세계를 벗어날 방법은 떠나는 것뿐이다. 톰이 꾸는 꿈처럼 선원이 될 수도 있고, 톰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포인트는 현실의 모든 것을 내팽개쳐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으로 될까? 책임감과 한패인 미안함 혹은 죄책감은 어떻게 할까? 이런 물음을 담은 것이 이 연극이다. 그러니까 이 연극을 봐야 하는 이유는, 20세기에 쓰인 이 연극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21세기에도 명확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엄마 아만다 역의 김정민 배우의 연기가 너무 훌륭해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 저렇게 이기적이고 아이들의 마음 따위는 절대 이해할 줄 모르면서, 과거에만 얽매어 사는 엄마라니, 딱 나잖아!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저 엄마는 귀여운 구석이 있네, 라는 쓰라린 마음을 품으며 연극이 끝나는 순간까지 집중했다. 톰은 떠나지만, 엄마는 남았다. 엄마는 끝까지 아픈 딸을 위로하고 곁을 지켰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말이다.


무대는 톰의 집이다. 왼쪽에는 식탁이 놓여 있고, 번듯한 계단도 없이 허름한 비상구를 통해서야 들어갈 수 있는 톰의 집 문은 무대 오른쪽으로 설정되어 있다. 톰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독백을 하는 장소는 그래서 무대 오른쪽이다. 누군가 좀 더 톰의 얼굴을 가까이 보고 싶다면, 오른쪽 앞 좌석을 예매하시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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