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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Nov 30. 2020

진 피즈 한잔 할까요?

- 영국 서민의 술, 진(Gin)

‘칵테일’이라고 하면 ‘분위기 근사한 곳에서 적지 않은 돈을 내고 마셔야 하는 술’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분위기라는 것이 도대체 뭐냐”라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요. 그런 느낌적 느낌을 날려준 것이 바로 이 술, 진(gin)입니다. 제게 ‘진’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일단 ‘BTS멤버 중 한 분’란 말을 큰 소리로 외친 후에, ‘영국의 소주’라는 말을 수줍게 덧붙이겠습니다.


17C말 유럽은 ‘증류주’의 매력에 풍덩 빠져듭니다. 프랑스에서는 ‘브랜디’의 열풍이 불고, 네덜란드에서는 ‘게네베르’의 인기가 한창이었습니다. 영국은? 청교도 혁명(지금은 ‘내전’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전 예전 ‘세계사’ 시간에 배운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중이었습니다. 당시 왕이었던 찰스 1세와 일부 귀족은 처형됐고, 아들인 찰스 2세와 그의 가족, 살아남은 귀족들은 프랑스로 망명을 떠나버립니다.  


영국의 귀족들은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브랜디 같은 증류주의 매력에 빠집니다. 영국의 서민들은? 청교도 혁명이었다니까요. 술 마실 때가 아닙니다. 지금도 ‘청교도 같다’는 표현을 가끔 쓸 때가 있지 않습니까? 금욕적이고, 술은커녕 과식도 안 하는 사람들에게 사용하죠. 청교도가 권력을 잡았던 시기에는 ‘크리스마스’마저 사라집니다. 제가 가 본 영국은 11월도 되기 전부터 크리스마스 장식을 집 밖에 걸어 놓는 분위기던데……이랬으니 본격적으로 술을  마실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수질 문제로 인해 대신 에일을 마시긴 했지만 말입니다.




역사를 되돌아볼 때, '술을 금지하고 살아남은 정권은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1933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루스벨트는 미국 금주령 때문에 당선됐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1933년 1월에 취임하고 가장 먼저 취한 조치 중 하나가 3.2% 이하 알코올음료를 마실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 거였다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도 같습니다) 올리버 크롬웰로 대표되는 청교도 세력을 몰아내고, 프랑스로 탈주해 있던 찰스 2세를 모셔와 ‘왕정복고’를 했던 이유가 꼭 술 때문은 아니었겠으나, 꽤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덧붙여 봅니다.


프랑스 망명자라는 것에서 느낌이 옵니다만, 찰스 2세와 그의 동생이자 후에 왕위를 잇게 되는 제임스 2세는 친 프랑스 파였습니다. 이들의 치세 기간에는 전제정치로 복귀함과 동시에 프랑스 국교였던 로마 카톨릭이 세력을 확장하게 됩니다. 영국의 국교였던 ‘성공회’를 무시하는 지경까지는 아니었지만,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떨떠름한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깟 왕쯤 명예롭게 바꾸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 쿨한 영국인들은 네덜란드에 살고 있던, 두 명의 메리와 관련 있는 남자를 모셔오게 됩니다(제임스 2세는 다시 프랑스로 망명을 떠납니다. ‘명예혁명’이라고 부르는 사건입니다).  


남자의 어머니 메리는 영국 왕 찰스 1세의 딸이었고, 아내 메리는 찰스 1세의 손녀이자, 제임스 2세의 딸이었습니다. 영국인들은 아내 ‘메리’와 남자를 공동 국왕으로 모셔옵니다. 아버지가 쫓겨난 자리에 딸을 앉히는 것이 생판 모르는 사람을 왕으로 앉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남자는 ‘오렌지공 윌리엄’이라고도 알려진 ‘윌리엄 3세’입니다. 이때 그가 네덜란드에서 마시던 ‘게네베르’가 함께 들어옵니다. 진(Gin), 네덜란드 명 ‘게네베르(jenever)’는 이런 과정을 거쳐 영국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윌리엄 3세가 즉위한 1688년, ‘아우크스부르크 전쟁’이라고도 하고, ‘9년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전쟁이 시작됩니다. 루이 14세의 프랑스 대 네덜란드-잉글랜드-신성로마제국-스페인 연합국의 전쟁이었습니다. 당시 영국 귀족들은 프랑스의 브랜드를 엄청나게 수입해서 마시고 있었습니다.


윌리엄 3세는 프랑스산 브랜디에 무자비한 관세를 붙입니다(적국의 술이니까요). 귀족들은 (스페인의 증류주인) ‘셰리’나 (포르투갈 증류주인)‘포르투’로 눈길을 돌립니다. 서민들은? 네, ‘진’을 마시기 시작합니다. 영국 의회는 당시 증류주 생산을 장려했습니다. 양조업자들은 세금도 거의 내지 않았고, 면허 없이도 마구 만들어 팔았을 정도입니다. 당연히 술의 질, 성분, 가격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는 제품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당시 영국은 인클로저 운동이 벌어지고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였습니다. 에일을 마시며 묵묵히 일하던 농부들이 토지를 잃고 런던의 빈민굴과 판자촌(이런 것이 영국에 있었다면 말입니다)으로 모여들던 시기였죠. 가난한 빈민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대충 짐작은 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도 그런 역사가 있었죠. 전태열 열사로 설명할 수 있는. 그들에게는 삶의 피곤함을 잊게 해 줄 독한 술이 필요했습니다. 지금도 비슷하지 않으냐고 물으면, 혼나나요?


당시 진은 거의 80도 가까운 도수의 술이었다고 합니다(지금은 40도 정도입니다). 너무 독한 나머지 술을 마시다 급사한 사람도 있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피곤하고 비참한 건 남자들만은 아니었습니다. 여자들도 엄청나게 진을 소비합니다. 여성들이 주로 가는 ‘드램 숍’이라는 술집이 성행할 정도였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주인도 여성인 ‘여성 전용 포장마차’ 정도 되겠네요. 좋은 것도 남용하면 결과가 좋지 않은데, 독한 술을 계속 마시고 괜찮을 리가 없지요. 혼자 술을 마시다 급사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고 자신의 아이를 죽이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당시의 어이없는 상황은 윌리엄 호가스가 그린 ‘Gin Lane’이라는 유명한 그림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영국 정부가 서서히 개입합니다. 면허 없이도 진을 만들던 17세기 말부터 문제가 발생했는데, 수습된 것은 19세기가 되어서입니다. 엄청 ‘빠르게’ 해결한 것 같지는 않지요? 귀족들의 문제가 아닌 빈민층의 문제여서 덜 적극적이었던 것 같은 느낌은, 제 기분 탓이겠지요. 흠......




진은 밀, 옥수수, 호밀 같은 곡물을 증류하고 주니퍼 베리로 풍미를 더한 술을 일컫습니다. 국내 마트에서도 이만 원 안팎으로 구입이 가능하고(뭐 비싼 것은 또 비쌉니다만), 국내 브랜드에서도 많이 생산되고 있습니다(국내산은 도수 15-20도 정도인 제품들도 많습니다). 바에 앉아 레몬으로 장식한 진피즈를 홀짝이는 것은 꽤 한가하고 여유있는 행동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들어가보면 저와 같은 영국 대중들이 피곤을 잊으려 소주처럼 삼켰던 술이 진(Gin)이었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런 느낌입니다.


오늘은 진(Gin)을 베이스로 만드는 ‘진 피즈’를 만들어보겠습니다.


1.     큰 잔을 준비하시고, 얼음을 넣어주세요

2.     진을 소주잔 한잔 부어주시고, 레몬주스는 반잔만 넣어주세요.

설탕을 2ts 넣어주세요. 저는 핫케익에 뿌려먹는 용도로 냉장고에 숨어 계신

아가베 시럽을 넣었습니다. 설탕이 잘 안  녹아서 말입니다.

3.     나머지는 탄산수로 채워주세요.

4.     시럽 넣을 때 사용한 찻숟가락으로 잘 저어 드시면 됩니다.


5.     정식 레시피에 나온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진 45ml, 레몬주스 20ml, 설탕 2ts, 소다수

-      소다수 이외의 재료를 넣고 흔들어 텀블러에 따른다.

-      얼음을 넣어 차게 식힌 소다수를 채운 후 젓는다.


6.     ‘진 피즈’의 ‘피즈(fizz)는 소다수의 탄산가스에서 나오는 소리가 피즈, 피즈 하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저는 듣지 못했습니다! 제 청력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맛은 달콤하고 상큼합니다. 독한 술이 맘에 들지 않는 분은 진의 양을 줄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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