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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Dec 07. 2020

진토닉을 마시는 시간

-    술 아니고 약

칵테일의 세계란 워낙 방대해서 아직도 무슨 술에 뭘 넣어서 어떤 이름이 되지 다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처음으로 알게 된 칵테일이 ‘진토닉’이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술이라면 소주 두 잔이 치사량이었던 부친께서, 어느 날 진 한 병과 토닉워터를 가져오셨습니다(분명 어디서 선물로 받으신 걸 겁니다). 몇 번인가 모친과 기분 내시는 걸 본 적은 있지만, 당연히 병을 다 비우시지는 못했습니다. 소주나 진이나 알코올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못 마시면, 당연히 저것도 못 드십니다.


진은 발칙한 딸의 손길이 닿지 않도록 잘 감춰 두셨는데, 함께 가져온 ‘토닉’은 냉장고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모른 척 물러설 제가 아니죠. 호로록 마셔본 결과, 두 번은 훔쳐 먹지 말아야겠다 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신선한 향기와 은은한 달달함까지는 좋았는데, 뭔가 딱 꼬집어 말하기 애매한 씁쓸한 맛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토닉(Tonic)이 씁쓸한 맛을 내는 이유는 ‘퀴닌’이라는 성분 때문입니다. 퀴닌은 남미 자생하는 ‘기나(cinchona) 나무’의 껍질에서 추출하는 성분이고, 말라리아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말라리아, 즉 모기로 인한 전염병은 인류의 가장 큰 적 중 하나였습니다.


말라리아에 관한 이야기는 이집트, 그리스 시대에도 나옵니다. 증상에 대한 기록은 있으나 그것이 ‘전염병’이라는 사실은 몰랐죠. 1897년 영국의 병리학자 로널드 로스(Ronald Ross)는 말라리아가 모기를 매개로 전염되는 병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그 공로로 1902년에는 노벨상을 받습니다.


말라리아는 왜 인간에게 치명적일까요. 제가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거친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는 걸 적어보자면 이렇습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 19는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됩니다. 바이러스란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편의상 O로 표시해보겠습니다. 장염이나 식중독을 일으키는 것은 ‘세균’입니다. 원핵생물이라고도 하죠. ㅁ으로 표시하겠습니다.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열원충’은 진핵생물(네, 포유류도  진핵 세포로 구성되어 있죠)입니다. V라고 표시해 보죠. 즉 바이러스나 세균에 비한다면 인간과 훨씬 가깝습니다. 인간은 X정도로 표시할 수 있겠네요.


우리가 감염이 있을 경우 항생제나 항바이러스제를 쓸 수 있는 이유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인간과는 확연하게 다른 종이기 때문입니다. 람 세포에는 영향이 없고 세균이나 바이러스 세포만 공격하는 물질이 항생제나 항바이러스제입니다. 그러니까  O나 ㅁ처럼 닫힌 도형에만 반응하게 만들어진 물질이라는 것이죠. 이런 이유로 인간과 유사한  말라리아 열원충에는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말라리아 열원충은 모기의 타액선에서 기다리다 흡혈하는 주둥이를 타고 인간의 몸에 들어옵니다. 인간의 몸 안으로 들어온 열원충은 적혈구를 먹이 삼아 성장하고, 전염된 사람은 발열, 오한 같은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퀴닌은 이 단계에 관여해 열원충의 증식을 막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단 감염된 사람을 모기가 물면, 그 사이 열원충은 모기의 몸 속으로 이동합니다. 모기에게는 전혀 피해를 주지 않은 채 모기의 몸 안에서 유성생식을 거쳐 새로운 세대를 탄생시키고, 그 놈들을 다시 타액선에서 대기하게 만드는 겁니다. 모기가 사람을 무는 순간 다시 전염의 써클이 시작됩니다.


17세기 페루로 진출한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이 ‘퀴닌’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말라리아를 퍼트린 것이 유럽인인지, 원래 그곳에도 말라리아라는 질병이 존재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릅니다만 아무튼 말라리아에 ‘퀴닌’이 효과가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유럽인들은 남미로 배를 보내 나무들을 통째로 잘라옵니다. 비범한 스케일입니다. 물론 원주민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나무의 위치를 숨기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사용합니다. 이따금 거짓말도 했을 겁니다.


그러니 영국 상인인 ‘찰스 레저’가 별 효과 없는 기나나무의 씨를 얻게 된 것도 그리 탓할 일은 아닙니다. 레저도 애를 쓸 만큼 쓴 것입니다. 볼리비아로 사람을 보내 씨를 구한 레저는 그것을 영국 정부에 팔았습니다. 효능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자 다른 종류의 씨앗을 수집해오도록 합니다. 이번엔 영국 정부에서 거부합니다. 그렇죠, 한 번 속지 두 번 속겠습니까.


판로가 막힌 레저는 할 수 없이 네덜란드 정부에 씨앗을 팝니다. 네덜란드 정부는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자바 지역에 이 씨앗을 심습니다. 영국 정부로서는 배가 아플 일이지만 이번엔 제대로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지금도 기나나무를 키웁니다. 인공적으로 퀴닌 성분을 합성하는 것보다 나무를 키워 성분을 추출하는 것이 비용적인 측면에서 낫다고 합니다. 더 들어가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생리학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니 여기서 발을 빼도록 하겠습니다.


퀴닌을 약으로 사용한 초창기부터 제기된 문제는 ‘쓴 맛’이었습니다. 소다수로 미각을 살짝 마비시키고, 설탕을 첨가해 꿀꺽 삼켜버리자는 아이디어는 그래서 탄생한 것입니다. 오렌지 주스든 레몬이든 와인이든 뭐든지 진에 섞어 먹던 사람들이니 손쉽게 ‘진토닉’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짜잔~!


조금 더 말하자면, 네덜란드 사람들은 기나나무의 껍질을 벗겨낸 후 재생시키는 방법까지 알아냅니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당시 퀴닌이 독일의 손에 들어갔는지, 연합군의 수중에 있는지에 따라 전세가 달라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싸우기도 전에 군인들이  말라리아 때문에 픽픽 쓰러지면  무슨 수를 써도 상대를 이길 방법은 없는 것이죠.


말라리아가 얼마나 엄청난 문제였는지, 미국은 2차 대전 중인 1942년에 국방 말라리아 통제활동 사무국(Office of National Defense Malaria Control Activities)이라는 것을 설립합니다. 전쟁터뿐 아니라 미국 남부에서도 말라리아 문제는 심각했거든요. 이 기구는 몇 번 이름을 바꾸다 1970년에 질병통제센터(Center for Disease 약칭 CDC)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네, 미국 코로나 상황을 이야기할 때 자주 나오는 미국 CDC가 여깁니다.


퀴닌 때문에 인간이 말라리아라는 질병을 물리친 것은 아닙니다. 퀴닌에 내성이 생긴 모기가 등장했거든요(말라리아 박멸을 위해 DDT를 사용했고, 그것 때문에 엄청난 환경오염이 생겼다는 부분은 그냥 지나가겠습니다) 현재 퀴닌에 내성이 생긴 모기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아르테미시닌’ 성분의 약 밖에 없다고 합니다(이 약을 합성한 분도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약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말라리아 열원충을 무찌르는 것인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나온 가장 강력한 약이라, 만일 이 약에 내성이 생긴 모기가 다시 출현한다면 이번엔 속수무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과 모기의 대결의 끝은 어디일까요. 인간은  조그만 생물을 과연 이길 수 있는 것일까요?


심각한 이야기를 이만큼이나 했으니 이제 진토닉 한잔을 음미해도 될 것 같습니다. 과거 토닉의 쓴맛은 ‘퀴닌’ 성분 때문이지만, 지금 생산되는 토닉에 퀴닌 성분은 들어있지 않습니다. 퀴닌도 많이 섭취하면 몸에 좋지 않기 때문에 ‘쓴맛’만 흉내 내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뭐가 문젭니까? 몸에 좋은 것이라고 믿고 마시면 다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진토닉 한잔 하시죠!


진토닉을 만들겠습니다.


1.     적당한 잔에 얼음을 넣어주세요

2.     진을 소주잔으로 한 잔 부어 주시고, 토닉워터를 채운 후 저어서 드시면 됩니다.

3.     저는 라임을 좀 넣었습니다. 레몬을 넣으셔도 됩니다.

4.     전문 레시피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 진 45ml, 얼음 2-3개, 토닉워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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