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안 Dec 14. 2020

라스트 키스

-그리고 펄잼(Pearl Jam)

바텐더들은 '적어도 작명에는 프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술 이름에 Last Kiss라니 말입니다. 단어가 가진 독특한 분위기 때문인지, Kiss라는 명사가 사용된 칵테일 이름은 정말 많습니다. Franch Kiss도 있고, Kiss of Fire도 있고, Angel’s Kiss도 있고, 또……. 그러니까 Last Kiss를 창조한 바텐더는 칵테일을 마시는 사람의 기억 속에 잠든 ‘마지막 키스’를 떠올리라는 의미로 이름을 붙인 것이겠죠.


하지만 어떤 말이나 음악, 영화 같은 것들이 창작자 밖으로 밀려 나오는 순간, 듣거나 보는 사람의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는 공공의 재산이 됩니다. ‘Last Kiss’라는 칵테일 이름을 듣는 순간이 그랬습니다. 제 머리에 떠오른 것은 ‘아련한 첫사랑의 아픔’도 아니고, ‘떠나간 연인과의 날카로운 마지막 키스’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펄잼(Pearl Jam)의 ‘Last Kiss’라는 노래였습니다.




펄잼은 1990년 미국 시애틀에서 결성된 밴드입니다. 당시 시애틀에서는 새로운 록 음악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훗날 그런지 록(Grunge Rock)이라고 불리게 된 이 흐름을 이끌어간 그룹은 단연코 너바나(Nirvana)입니다. 앨범 자체의 완성도도 좋았을 뿐 아니라, 보컬인 커트 코베인의 외모, 27살로 요절해 버린 것까지 주목을 받았습니다. 27세에 죽은 짐 모리슨(그룹 Doors의 보컬이었습니다), 제니스 조플린 등과 연관 지어 ‘록커는 스물일곱에 죽는다’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입니다.


너바나의 라이벌로 불렸던 것이 펄잼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적어도 커트 코베인이 살아있을 당시 펄잼은 너바나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아, 펄잼의 팬들께는 죄송합니다만 어느 누구의 팬도 아닌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 귀에 팍팍 꽂히는 강렬한 사운드와 보컬인 에디 베더(Eddie Vedder)의 음색 때문에 펄잼의 노래도 즐겨 들었지만, 대세는 아무래도 너바나였죠.




그러다 1994년, ‘응? 이거 봐라?’하는 느낌을 주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공연 티켓을 판매하던 ‘티켓마스터’와 펄잼의 한 판 대결이 시작된 것입니다. ‘티켓 마스터’는 당시 미국 공연시장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티켓에 높은 수수료를 붙였습니다. 공연을 즐기려는 관객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돌아간다고 생각한 펄잼은 수수료 인하를 요구합니다.


펄잼은 1994년부터 1년 넘게 소송을 진행합니다. 티켓 마스터 측도 가만히 있지 않았죠. 자신들과 계약된 공연장에서 펄잼이 서지 못하게 손을 쓰는가 하면, 그보다 작고 허름한 공연장에도 압력을 가해 마지막에 공연을 취소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아무리 인기 그룹이었다고 해도 거대 상업 회사와 붙은 것이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덕분에 펄잼은 5월부터 시작되는 여름 투어를 통으로 취소하는 등 엄청난 피해를 봐야 했습니다.


대형 회사를 상대로 일개 그룹이 승리를 거뒀다면, 저처럼 지켜보는 사람 마음도 뿌듯해졌을 겁니다. 하지만 '눈물 나는 시련을 겪었지만 결국 약자가 이겼다’는 스토리는 이야기 책에만 나옵니다. 펄잼도 13개월 만에 판정패를 당합니다. 한동안 투어를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소송을 반대했던 멤버가 팀을 나가 버리기도 합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펄잼과 함께 목소리를 낸 가수는 없었습니다. 티켓 마스터의 눈 밖에 나면 공연 자체를 할 수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겠죠. 약자의 작은 흠에는 분개하지만, 강자의 커다란 문제에는 입을 다무는 것이 우리니까요.




김수영 시인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
.
.
.
.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내가 불편해질 수도 있는 일, 손해를 볼 것 같은 일에 큰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래 직원에겐 별 일 아닌 걸로 사무실이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지만, 팀장 흉을 볼 때면 회사 밖 술집에서도 목소리를 낮추게 되지요. 부끄럽습니다, 진짜.


‘Last kiss’는 보컬 에디 베더가 시애틀의 골동품 가게에서 우연히 발견한 음반에 담겨있던 곡이라고 합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다가 너무 마음에 들었던 나머지 커버하기로 결정합니다.  워싱턴 DC의 한 연습실에서 저녁 공연에 연주할 곡들을 연습하던 중 잠깐 짬을 내 녹음을 했다고 합니다. 싱글 음반으로 만들어 팬클럽의 팬들에게만 나눠주었는데, 이 음반을 입수한 라디오 DJ들이 자신의 프로그램에 틀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습니다. 어지간하면 이쯤에서 제대로 된 싱글 앨범으로 발매할 법도 하지만, 펄잼은 다른 선택을 합니다. 코소보 전쟁 난민들을 위한 자선 음반 ‘No Boundaries’(1998년)에 이 곡을 수록하기로 한 겁니다.


세상에 ‘착한 사람’이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좋은 면’과 ‘나쁜 점’, ‘훌륭한 품성’과 ‘저질스러운 마음’이 공존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복잡한 것들 중 ‘어떤 성향을 추구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인격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위인전에 나오는 엄청난 분들의 삶도 대단하지만, 펄잼처럼 의외의 곳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더 마음이 갑니다. 펄잼의 기타리스트인 스톤 고사드(Stone Gossard)가 2003년 마침내 자신들의 앨범에 수록한 ‘Last Kiss’를 설명하면서 언급한 문장이 있습니다.


“당신의 성공은 가장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온다(Your Biggest succecces come from the most unlikely places.)”


네, 제 경우로 말을 바꿔보자면 ‘가장 큰 가르침은 의외의 곳에서 왔다’ 정도가 되겠네요. 오늘도 한 수 잘 배우고 갑니다, 펄잼.


-      라스트 키스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레시피는 화이트 럼 45ml, 브랜디 10ml, 레몬주스 5ml를 섞는 것입니다. 럼과 브랜디 모두 40도 정도의 술입니다. 거기에 레몬주스 5ml라면 제게는 너무 독합니다. 그래서 레시피를 좀 수정했습니다.


1.     럼, 브랜디, 레몬주스, 시럽, 소다수 준비해주세요

2.     셰이커에 얼음과 럼 소주잔 한잔, 브랜디 1스푼(밥숟가락이요!), 레몬주스 1스푼, 아가베 시럽 1스푼 넣고 흔들어 줍니다.

3.     적당한 잔에 따라 주시고, 소다수를 채워주세요.

4.     물론 40도 술도 괜찮으신 분들은 소다수 빼주세요^^



이전 04화 진토닉을 마시는 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