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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Apr 05. 2021

쿠바 리브레

- 콜라와 럼이면 충분한.

오래전 미국 영화 한 장면을 기억합니다.  초보 바텐더에게 손님이 ‘쿠바 리브레’를 주문합니다. 당황하던 바텐더는 선배가 만드는 레시피를 보며 투덜거립니다. ‘그냥 럼에 콜라를 섞어 달라고 했으면 됐잖아.’ 그렇습니다. ‘쿠바 리브레 - 쿠바의 해방, 쿠바의 자유’라는 엄청난 이름의 이 칵테일은 럼에 콜라를 섞으면 끝입니다. 레몬이나 라임이 들어가기는 합니다만.




‘쿠바’라고 하면 뭐가 떠오르십니까? 체 게바라, 카스트로, 사회주의, 케네디 대통령 집권기의  미사일 사태 뭐 이런 것들이 제 머릿속에는 있었습니다. 2000년 즈음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미국의 프로듀서인 라이 쿠더와 그의 아들이 쿠바 곳곳을 돌며 잊혀진 뮤지션을 찾아 그들의 음악을 연주하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미국 점령기와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거치던 시대의 쿠바에서 활동했던 음악가들은 혁명의 시기에 무대를 잃고 사라집니다. 누군가는 동네 발레학원에서 피아노 연주를 해서 먹을 것을 벌고, 다른 음악가는 구두를 닦으며, 또 이발사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늙고 약해진, 그러나 실력은 반짝거리는 그들을 불러 모아 녹음한 음반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그 과정을 찍은 영화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입니다.


낡고 바랜 하바나 거리와 편안한 음악, 살사, 다시 음악을 할 수 있게 된 오래전 음악인의 환희 같은 것들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과연 저렇게 생긴 차가 굴러 다닐까’ 싶게 오래된 차들이 달리는 하바나 거리는 상당히 매혹적이었습니다. 굳이 쿠바 여행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이유의 9할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었습니다.



문제는 영화를 보고 20년이 지나서 간 쿠바의 모습도 영화 속 그대로였다는 겁니다. 올드 카가 매연을 뿜으며 돌아다니고 있었고, 칠이 벗겨진 낡은 건물은 여전했으며,  고개를 돌릴 때마다  체 게바라의 강철 같은 시선과 마주칠 수 있었고, 어디에서든 익숙한 라틴음악이 들렸습니다. 20년 전의 모습을 찾자면  한참을 두리번거려야 하는 나라에서  제게는 쿠바가 속한 우주만 시간이 멈춘 듯이 느껴졌습니다.  세상과 동떨어져  변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라 서늘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혁명’이란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라는 물음과 함께 말입니다.


하바나 골목의 어지간한 카페 앞에는 사탕수수 더미가 쌓여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즉석에서 짠 사탕수수 시럽을 넣고 만든 다이끼리를 마실 수 있습니다. 크고 표정 없는 남자들이 사탕수수를 압착기에 넣고 시럽을 짠 후 럼과 라임, 얼음을 섞어 내놓습니다. 헤밍웨이의 극찬이 고개가 끄덕여지는 맛입니다.


시럽뿐 아니라 럼의 원료 자체가 사탕수수입니다. 당밀과 설탕을 제조하고 남은 폐기물을 발효시킨 후 증류한 것이 럼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럼은 카리브해의 바베이도스 섬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는데, 럼(Rum)의 어원인 Rumbullion은 ‘소동’이나 ‘난동’을 뜻한다고 합니다. 독한 럼을 마신 후의 상황을 떠올리면 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럼이 만들어질 당시 카리브해의 나라들은 대부분 식민지 상태였습니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 같은 나라들이 몰려와 원주민들을 몰살시킨 후 그곳에 거대한 사탕수수 농장을 세웠습니다. 백인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아프리카 사람들을 데리고 와 노예로 부리기 시작합니다. 일정한 숫자의 백인 농장주 아래 끊임없이 늘어나는 흑인 노예가 있다면, 반란이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여러 차례 일어난 반란은 가혹한 탄압으로 끝을 맺기도 하고, 독립으로 결실을 보기도 했습니다.


쿠바 역시 스페인 점령자들을 몰아내는 독립 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이 시기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이 벌어지고, 쿠바는 스페인 식민지 상태에서 미군정  아래로 위치가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들어온 미군 병사들이 ‘럼과 콜라를 섞어 ‘쿠바 리브레’라는 이름을 붙여 마시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쿠바의 현대사 중 미국과 관계가 괜찮았던 아주 짧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 바로 ‘쿠바 리브레’라는 칵테일입니다.


럼의 양대 산맥인 ‘쿠바 아바나 클럽’(쿠바 국영 기업입니다)과 ‘바카디’(쿠바 혁명 후 우여곡절을 엄청 겪은 후 미국에 정착한 회사입니다)는 이 이야기에 다른 견해를 내놓습니다. 바카디 측은 쿠바와 스페인 독립 전쟁 당시 쿠바 편이던 미국 장교가 바카디 럼에 콜라를 섞어 마시면서 ‘쿠바 리브레’가 탄생한 것이 맞다고 설명합니다. 이에 대해 전쟁은 1898년에 끝났고, 콜라가 들어온 것은 1900년대이기 때문에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쿠바 아바나 클럽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듣는 분들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그렇다면 쿠바인들은 ‘쿠바 리브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오랜 식민지 시대와 독재시대, 카스트로의 집권기를 거쳐온 지금, 그들은 해방되고 자유롭다고 느낄까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단지 그곳에 며칠 머물렀을 뿐이라서 내밀한 생각까지는 읽을 수는 없었습니다. 단지 팁을 주지 않으면 절대 오지 않는 웨이터와 박물관 전시품을 설명한 후에 손을 벌리는 큐레이터, 100년쯤 된 차를 몰며 “Capitalism good, money is good.”을 외치던 무허가 택시 운전사의 밝은 얼굴은 기억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물론 아침을 차려 주시던 CASA 주인 할머니의 평화로운 웃음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만.


쿠바에 도착하자마자 일본인이 운영한다는 밥집에 들렀습니다(네,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추천코스였습니다). 간단한 덮밥류를 시켜 배를 채우고 있을 때 현지인과 구별 없어 보이는 남자가 들어와 익숙하게 음식을 주문했습니다. 사업차 종종 쿠바에 들르곤 한다는 그 한국분이 나가시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쿠바 사람들을 너무 믿지 말라고, 예전의 쿠바가 아니라고.


겉모습은 같지만 살아가는 사람은 변하는가 봅니다. 기왕이면 좋은 쪽으로의 변화였으면 좋겠습니다.




쿠바 리브레를 만들겠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화이트 럼과 콜라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자취생 최고의 리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시면서 ‘해방’과 ‘자유’에 대해 토론을 나눠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방금 실연당한 친구와 ‘커플 해방’에 관해 논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1.     적당한 잔에 럼 한잔 넣으시고, 콜라를 적당량 부어주세요

2.     라임이나 레몬이 있다면 장식으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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