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안 Apr 01. 2021

달콤한 여정, 피나콜라다

술 약한 당신도 환영!

멕시코와 쿠바 여행 내내 함께 했던 것은 럼이었습니다. 데낄라는 멀리했습니다. 혹시라도 스트레이트로 마셨다간 다음 날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이 뻔하니까요. 마가리타(테킬라 베이스의 칵테일입니다)를 한두 잔 마시긴 했습니다만 ‘중앙아메리카’라고 하면 어쨌든 럼입니다(테킬라, 미안~).


무더운 날씨에 곤두선 신경으로 빡빡한 일정을 끝낸 후, 숙소 근처 아무 바에나 들어가 다이끼리를 마시면 딱딱해진 다리 근육이 녹아내리는 느낌이 듭니다. 칵테일은 만든 이의 손맛을 많이 타는 편이라, 어떤 날은 눈이 번쩍 뜨일 때도, 다른 날은 찡그리며 다른 메뉴를 찾은 적도 있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처음 바에 갔을 때 술을 못하는 딸에게 제가 권한 것이 피나 콜라다였습니다.


피나 콜라다는 럼과 파인애플 주스, 코코넛 밀크가 들어간 달콤한 칵테일입니다. 술을 잘하지 못하는 분들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딸도 처음 맛을 본 후 ‘대박’을 외치며 3번에 2번 정도는 잔 바닥을 확인했습니다. 1번 정도는 럼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몸서리를 쳤지만 말입니다(여행 내내 십여 잔은 마신 것 같습니다만). 여러 가지 의미로 역시 칵테일은 손맛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피나 콜라다는 푸에르토리코의 해적 로베르토 코프레시(Roberto Cofres을)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코프레시는 포로들을 갑판에 못 박아 놓고 구경하며 직접 만든 피나 콜라다를 마시던 무시무시한 해적이라고 전해지지만 그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일설에는 카리브해를 운항하던 보물선을 약탈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준 의적으로도, 스페인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로도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전설이 만들어진 이유는 그가 활약한 시대와 푸에르토리코의 위치 때문일 겁니다. 카리브해 한가운데 솟아 있는 푸에르토리코는 많은 배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있습니다. 해적이 될 마음을 품던, 의적이 되겠다고 결심을 하던 모두 가능했겠죠. ‘캐리비안의 해적’ 이라니, 입에 착착 붙지 않습니까?




제가 ‘푸에르토리코’라는 지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영화 속 한 장면 때문이었는데, ‘캐리비안의 해적’은 아닙니다. 영화 ‘콘택트’에 푸에르토리코의 풍경이 조금 나옵니다. 20년도 더 된 영화라 못 본 분들이 더 많겠으나(1997년 개봉이었는지, 98년이었는지 가물가물합니다), 좋아하는 ‘조디 포스터’가 나오는 영화라 저는 챙겨서 봤습니다.


조디 포스터는 여주인공 ‘앨리’로 나옵니다. 그녀는 우주 어디인가에 지적 외계 생명체가 있을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연구 중인 천문학자입니다. 매일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전파 망원경을 통해 전해지는 알 수 없는 신호를 분석하고 있지요. 그런 그녀가 일하던 곳이 푸에르토리코에 위치한 아레시보 천문대였습니다. 스페인에서 독립 후 미국령이 된 푸에르토리코에 미국 코넬 대학을 비롯한 유수의 대학들이 협력하여 세운 곳이 아레시보 천문대입니다. 한 때 세계 최대 전파 망원경을 보유한 곳으로 유명했던 곳입니다만 2016년에 중국에 그 명성을 내주었고, 2020년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영화 속, 잠깐 틈이 난 앨리가 동네 가게에서 메달라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 팔머라는 남자가 다가옵니다(메달라 맥주도 맛이 좋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실제 마주친 적이 없어 마셔보지를 못했네요. 아쉽습니다).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만났으니 당연하게 영화 속 세상은 둘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주인공에게 쏟아지는 엄청난 시련과 역경은 두 사람의 티티카카로 잘 풀려 나갑니다. 평범한 우리네 인생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아, 팔머 조스 역의 남자 배우는 메튜 맥커너히입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쿠퍼 박사의 젊은 날이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찾아봐도 좋을 영화입니다. 저는 감히 ‘역변’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만 말입니다. ㅎㅎ


외계 생명체는 존재할까요? 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압도적인 기술을 가진 외계의 존재와 조우하는 일은 일어날까요? 모르겠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일의 확률을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원작자이자 각본에도 참여한 칼 세이건의 “이 거대한 우주에 우리만 존재한다는 것은 공간의 낭비”라는 말이 설득력 있게 느껴집니다. 물론 외계인의 모습은 ‘콘택트’보다는 ‘맨 인 블랙’ 쪽이 어쩐지 더 그럴듯하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만.




빅뱅과 중력파, 힉스 입자나 지적 외계인 찾기 같은 '우주적'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금 내가 딛고 있는 현실’이 작고 하찮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나의 삶이란 우주의 먼지’ 정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당장 해치워야 하는 숙제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도 긴 호흡으로 보면 그렇게 아등바등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대범한 생각으로 슬쩍 움직일 때가 있습니다.


발 앞에 떨어진 돌멩이와 걷고 있는 길의 움푹 파인 것들에 집중하다 보면 그 뒤로 펼쳐지는 숲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니 현실이 힘들 때 의도적으로 시선을 먼 곳으로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물론 그런다고 할 일이 줄어들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한숨을 돌리며 여유를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요? 마치 무더운 날 종일 걸어서 피곤해진 몸에 달콤하고 시원한 피나 콜라다를 한잔 넣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도 앨리처럼 ‘외계 지적 생명체’를 찾는 사람들은 존재합니다. 세티(SETI)라고 말하는 활동이고, 우리나라에도 조직이 있습니다. SETI, 그리고 그 이전의 오즈마 프로젝트(Ozma Project)는 영화 속 장면처럼 미국 정부의 후원을 받다가 지원이 중단됩니다. 현재는 개인 및 기업, 대학의 지원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맞다면, 그들이 찾는 외계인이 있다면 ‘ET’나 ‘콘택트’처럼 다가와주면 좋겠습니다. 오래된 TV시리즈인 ‘V’나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처럼은 거절합니다.



자, 시원한 피나 콜라다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1.     화이트 럼 1잔, 코코넛 밀크 1잔, 파인애플 주스 3잔에 얼음을 넣고 믹서기에 돌려주세요.  

2.     파인애플이 있다면 장식은 선택입니다!

이전 05화 라스트 키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