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위드 햄릿

- 대학로 연우 소극장

by 지안

제목에는 세 가지 의미가 중의적으로 걸려있는 것 같다. 첫째 ‘햄릿’과 함께 하는 ‘연극’이라는 것, 혹은 ‘햄릿’과 ‘놀자’는 것, 그리고 ‘플레이위드’라는 극단이 만들었다는 것. 극에는 4명의 햄릿만 나온다. 이런 햄릿, 저런 햄릿이 그야말로 노는 무대를 만날 수 있다. 만약 ‘플레이위드’라는 극단이 원하는 바가 그것이었다면,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문장으로 대표되는 ‘햄릿’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을 읽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햄릿이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고민을 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고민이 몰고 온 일파만파의 사건과 두 일가의 완벽한 몰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는 말이다. 이 연극은 그 지점을 현명하게 이용한다. 자세하고 무거운 것들은 빼 버려라. 당신이 알고 있는 것들만으로도 연극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만들어주겠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연극은 4명의 햄릿이 한통의 전화를 받으며 시작한다(블랙, 레드 이런 식으로 각자 색이 있는데, 몰라도 상관없다. 하나의 자아가 4개로 나뉜 상태로 보면 된다). 복수를 부탁하는 아버지의 말에 고민하는 햄릿. 이야기의 줄거리는 원작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대사는 지극히 현재 시점이다. 폴로니어스의 오지랖 때문에 햄릿 앞에 나타난 오필리어에게 ‘수녀원으로나 가 버리라’고 미친 사람처럼 퍼붓던 햄릿의 대사는 ‘그렇고 그런 결혼’에 대한 외침으로 비틀어 쏟아지는 식이다. 굳이 16세기 덴마크 왕자의 저주를 듣고 있을 이유는 뭔가? 이 시대 젊은이의 발칙한 독설을 듣는 것으로도 충분한 데 말이다.




4인의 햄릿은 모두 햄릿이었다가, 햄릿과 그를 찾은 친구였다가, 여자 친구였다가 어머니, 혹은 복수의 대상이 된다. 대사를 주고받다, 독백을 하다, 관객에게 말을 걸다, 노래를 한다. 그야말로 연극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며 ‘논다’.


오히려 놀지 못하고, 즐기지 못하는 쪽은 관객이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배우들이 있어 웃기가 미안한 것인지, 코로나 시국이라 마스크 밖으로는 웃음소리가 나오지는 않는 것인지, 의도된 불협화음의 노래 앞에서도 극장 안에는 시종 진지한 분위기가 넘쳤다. 오, 이러지 맙시다. 배우들이 즐기라고 하잖아요.




마지막 햄릿과 레어티스와의 검술 시합 장면은 압권이다. 연극 전부를 놓치더라도 마지막 장면만은 따로 뽑아 저장해 놓고 싶을 정도로 박력 넘치는 장면이다. 작은 무대를 130퍼센트 활용하는 센스와 열정 가득한 배우들이 있어 가능한 연극이다. 혹은 젊음이, 그 나약하지만 활기 넘치는 청춘이 있기에 가능한 연극이었다. 가끔씩 이런 연극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보는 것이 좋겠다.


덧말... 블랙 햄릿분 목에 깁스하고 나오셨던데, 그렇게 열심히 하시면 곤란합니다. 살살해 주세요(교통사고가 나셨다고 하던데......). 아프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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