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렁스” (스포 많습니다, 주의!)

-오늘의 질문

by 지안

만석이었다. 왼편에는 살집이 조금 있는 여성분, 오른쪽에는 거기에 근육도 더 있는 남성분이 앉아 있었는데, 둘 다 옆 사람(그러니까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몸을 웅크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연극의 두 주인공이 환경에 대해 의식하는 것처럼 말이다.




극은 쭉 뻗은 사각의 무대 위에서 남녀의 대사와 신발만으로 이루어진다. 이케아 판매대에 서서 환경에 대해 읊조리는 사람은 요즘 시대에 차고 넘친다. 생각 없이 넘기던 티브이 채널에서 눈물 흘리는 북극곰이나 플라스틱을 삼키는 고래의 영상을 만나게 되는 횟수만큼이나 흔하다. 나도 그렇고 아마 당신도 그럴 것이다. 실제 자신의 생활에 변화가 있는가? 별로인가? 그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 연극을 보는 중에는 말이다.


두 사람은 아이를 가지려고 한다. 이케아 판매대와 환경문제로 나뉘는 부분은 내 아이를 갖는 혹은 아이를 낳지 않거나 입양하는 문제로 바뀐다. 이제 이들의 딜레마를 이해했는가? 환경문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는 이 연극은 실은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들은 지구를 생각하고 환경을 고민하는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사랑에서도 그렇다. 환경에 있어 ‘좋은 사람’이란 재활용을 하고 장바구니를 사용하며 대형 프랜차이즈 대신 작은 카페에 가는 사람들이다. 사랑에 있어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사람?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는 사람? 시간을 주는 사람? 우리 사이에 어떤 문제가 생겨도 변하지 않는 사람?


여자는 환경 문제를 공부하는 대학원생이다. 남자는 무명의 음악가다. 점심을 먹다 말고 섹스를 하자며 남자를 끌고 갈 정도로 진취적(?)인 여자는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자 더 많은 돈을 벌어오라며 남자를 회사로 밀어 넣는다. 아이 하나를 키우자면 지구에 해로운 탄소를 에펠탑만큼 배출해야 하는 것이라고 화를 내던 여자는 임신을 알자마자 아이방을 만들기 위해 페인트칠을 한다. 환경이나 정치 같은 지적인 문제의 해결 방안을 남자에게 알려주던 여자는 자신에게 문제가 발생하자 말하지 않아도 답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남자를 밀어낸다. 새로운 것과 구닥다리의 세계관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지독하게 틀에 박힌 배신과 이별 후 또한 전형적으로 재회한다.


첫 장면인 여자의 대사가 끝나기 전, 이 연극을 쓴 작가는 30대 정도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2-30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거나 가정을 꾸밀 생각이 슬슬 드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봐도 좋을 연극이다. 잠든 여자 곁에서 하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남자의 독백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작가가 남자일 것이라고 1의 의심도 없이 믿어 버렸다. 그러니까 이 연극은 그 나이, 그 시절의 젊은이가 만나야 하는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들 사이의 괴리에 대해 말한다.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지만, 실은 그렇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반성이며 위로다.


위로를 하려니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로 끝내야 했을 것이다. 이 연극, 그렇게 끝난다(자, 최대의 스포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인생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혼을 기점으로 하강한다. ‘지랄 총량 법칙’처럼 사랑에도 그런 것이 있어서, 2-30대 겪지 않으면 언제라도 해버리게 된다는 일반론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비중은 줄어든다(‘강도’가 줄어든다고 하지는 않았다!) 자연의 법칙에 감사할 따름이다. 생각이나 가치관도 새롭게 바뀌고 변화하지만, 어느 만큼은 예전의 영역에 머물러 엉거주춤한 포즈로 서 있게 된다. 연극의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라떼는 말이야’를 질색하는 젊은이들도 사랑과 배신의 영역에서만큼은 촌스러운 짓을 잘도 한다. 이래서 여러 나이대가 대충 섞여 살 수 있는 모양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연극의 결말처럼 이들의 현실이 해피엔딩으로 끝났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실제의 인생들이 대개 그러하니까.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다면 어딘가 둘만 있는 곳으로 도망가 둘만 바라보고 살기를 권한다. 그래야 궁극의 해피엔딩을 만들 수 있다. 그 외에는 ‘새로운 자극’, ‘풋풋한 사람’, ‘설레는 관계’ 때문에 덜컹거리고 흔들리는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말 ‘오래가는 사랑’이란 없는 것일까? 두 사람이 헤어졌을 때 남자가 하는 대사 속에 살짝 답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너와 있을 때면 책을 읽어야 했고, 공부해야 했고, 토론해야 했는데, 지금은 책도 보지 않고 생각을 하지도 않아 너무 좋다고. 그러나 남자는 여자에게 돌아간다. 다시 책을 읽고 지긋지긋하게 대화하고 매번 생각해야 하는 삶으로 돌아간 것이다. 결국 남자는 그런 삶을 사랑했고, 이해했고, 그 시간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다시 선택할 수밖에.


누군가와 사랑을 오래 유지하려면 방법은 하나다. 상대에게 끊임없이 자극을 주고, 그렇게 만든 추억들을 단단하게 쌓아야 한다. 설혹 차체가 바람에, 날아온 돌덩이에, 그 밖에 모든 이유로 인해 흔들리더라도 결국 종착지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튼튼한 레일을 만들어 그 위를 달리게 하는 것뿐이다. 짐작하겠지만, 결코 쉽지 않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뭐, 그것이라고 쉽겠나? 극에 반복되는 대사처럼 ‘입은 닫고, 팔은 벌리고’ 안아주는 정도면 절반은 된 것이지 싶다.


피 에쓰… 이 연극, 우리나라에서는 초연이라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번역체 대사가 귀에 딱딱 걸렸습니다. 좀 더 문어체로 바꿔 주시면 가뜩이나 많은 대사를 소화하기 훨씬 쉬울 텐데 말입니다.


-오늘의 질문 : 당신의 사랑은 어떤 모습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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