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마우스피스> (스포 많습니다)

-오늘의 질문

by 지안

이야기를 보고 읽는다.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


파도와 전함들로 가득한 거친 바다 위에서 전쟁을 지휘하는 모습은 빠질 수가 없다. 그것이 과연 ‘인간 이순신’과 얼마나 유사할까? 혹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그 모습이 전부일까?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은 진실에 얼마나 가까울까? 관객의 감동을 위해 이순신의 생애 중 어느 정도쯤 각색해도 좋은 것일까?


이 연극이 묻고 있는 중요 질문 중의 하나는 그것이다. 각색할 권리가 있다면 누구에게 있나. 난폭하고 위험하며 잔인하기 짝이 없는 전쟁을 ‘구경’하는 관객은 제대로 된 진실을 짐작할 수 있을까? 자신들만 공유할 수 있는 공간에서 다른 감정들을 소비하는 것은 아닐까.



연극 ‘마우스 피스’는 사십 중반의 여자 리비와 십 대 후반의 남자 데클란의 이야기이다. 둘 다 싱싱함이나 풋풋함 같은 매끄럽고 아름다운 느낌과는 거리가 있다. 리비는 한때 성공했던 극작가이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쓰지 못해서 스스로 ‘작가’라는 호칭을 붙이기를 주저할 정도다. 단순하게 ‘먹고사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데클란에게서 젊음이나 가능성 같은 것을 찾기는 힘들다. 행복한 사람들의 사연은 다들 비슷하지만 불행한 사람들의 사연은 다 제각각인 법이라고, 안나 카레리나의 한 대목을 슬쩍 빌려와 말해주고 싶을 정도다.


흘려 그린 그림 한 장으로 리비를 푹 빠지게 만드는 재능을 지닌 데클란은 소중하고 특별했다. 리비에게는 한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삶의 낭떠러지 중간에 불쑥 삐져나온 나뭇가지처럼 의외의 장소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기회였다. 그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리비의 감각을 일깨운다.


리비는 데클란에게 ‘누구에게나 자기 이야기가 있으니, 너도 너의 이야기를 하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냥 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데클란은 대답한다. 리비는 데클란에게 ‘그냥 사는 것’과는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그의 이야기를 옮기는 ‘마우스 피스’가 되어 주겠다고 결심한다. 처음에는 그랬다.



이제 그들은 만난다. 이야기한다. 본다. 쓴다.


함께 감상한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스스로에 대해 떠들고 상대방에 관한 질문을 하고 행복해진다. 말하자면 데클란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었다. 그보다 많은 것이다. 돈이 없어도 미술관에 갈 수 있다는 정보를 알아야 했고, 데클란이 원하는 것이 미술관에 있다는 것을 알아챌 안목 있는 어른이 필요했다. 그가 느낀 것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대화해 줄 상대가 필요했다. 전부 데클란이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이다.


데클란의 삶은 리비의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고 리비의 이야기가 데클란의 삶과 같은 것은 아니다. 이야기에는 형식이라는 것이 있고 리비는 일기를 쓰는 것이 아니다. 대중이 원하는 것이 있고 팔리는 이야기여야 한다. 과연 이야기의 결말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데클란일까, 리비일까?


이제 그들의 관계는 변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데클란을(리비가 원한 것이 그것이면서도) 리비는 견디지 못한다. 자신을 이해해준다고 믿었던 리비가 결국 원한 것은 세련된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안 데클란 역시 폭주를 시작한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사랑’ 혹은 ‘연대’의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만만하지 않은 이 세상에서는 힘을 모아야 겨우 조금 견뎌낼 수 있다. 하지만 ‘어는 정도’까지 타인을 돌볼 수 있을까? 내 경제력이 허락하는 정도? 나의 정신력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 적어도 리비에게는 선택이 가능했다. 하지만 데클란에게 그것은 다른 문제였다. 리비의 선택으로 데클란이 잃은 것은 ‘전부’였다.


결핍을 자각하는 순간은 아무것도 없는 때가 아니다. ‘없어진 것이 있을 때’ 우리는 부족함을 느끼고, 결여된 것을 채우기 위해 애쓴다. 그것이 사랑이던, 예술이던, 돈이던 상관없다. 여행을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떠나는 것을 꿈꾸지 않는다. 겪어 본 사람, 경험해 본 인간만이 피곤하고 고생스럽고 귀찮은 모든 것을 ‘무릅쓰고’ 여행을 떠난다. 파국으로 치닫는 데클란이 가엽고 안타까운 이유다.




100분 동안 두 배우만 출연하는 연극이지만 단 한 번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완벽한 이야기 사이로 주제를 녹여 넣은 솜씨가 한숨을 짓게 만든다. 분명한 주제의식을 가지고도 이렇게 재미있게 만들 수 있구나, 하는 멍한 느낌마저 준다. 당연히 대사 분량도 엄청난데 단지 몇 마디만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만드는 배우들의 솜씨도 대단하다. ‘하층민의 삶을 대변했다’는 영화나 책의 흔한 선전문구를 다시 한번 곱씹게 만드는 작품이다. 예술은 힘을 지녔다. 그러나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힘일까. 몇 번이고 되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연극이다.


- 오늘의 질문 : 타인에게 어느 정도까지 도움을 준 적이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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