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로 밴드 멤버들이 자리를 잡는다. 연주를 시작하면 관객석 끝부터 박수가 터진다. 대형 스크린에는 당당하게 무대로 향하는 사람이 보인다. 짙은 화장, 긴 금발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헤드윅이 관객들의 환호에 응답하며 걸어 나와 무대에 올라 말한다.
"언니 왔다."
헤드윅은 동명의 영화를 감독하기도 한 '존 카메론 미첼'의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부터 공연되기 시작했는데, '뮤지컬 좀 한다'는 남자 배우들은 모두 거쳐갔다고 생각하면 되는 작품이다. 밴드가 무대 위에서 직접 연주를 하고 '이츠학'이라는 상대 배역도 존재하지만 헤드윅은 1인극에 가깝다. 밴드의 리더인 헤드윅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혼자 노래하거나, 이츠학과 함께 노래한다.
헤드윅, 본명 한셀 슈미트는 바보 같고 답답한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그러나 동베를린에 살던 남자다. 자유로운 세계로 데려가 준다는 미군과 결혼하기 위해 불법 성전환 수술을 감행한다. 수술이 잘못되는 바람에 생식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1인치 살덩이가 남아 버렸다. 미국 남자와 결혼해 자유의 나라로 건너오지만 꿈꾸던 미래는 없다. 이혼하던 날 마침 티브이를 틀었는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광경을 보게 된다. 조금만 일찍 무너질 것이지,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헤드윅은 어릴 적 엄마가 들려주던 이야기를 기억한다.
옛날 옛날,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살았다. 남자와 남자가 등을 맞댄 해의 아이, 남자와 여자가 등을 맞댄 땅의 아이, 여자와 여자가 등을 맞댄 달의 아이가 그것이다. 이들의 완전함을 두려워한 제우스가 이 아이들을 둘로 갈라놓는다. 그때부터 갈라진 아이들은 원래 짝을 찾기 시작했고, 그것이 '사랑'이라는 말이다. 당연히 헤드윅 역시 자신의 반쪽을 찾고 있다. 한때 그 반쪽을 찾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 그 반쪽은 곁에 없지만.....
이런 넋두리를 두런두런 관객과 나누며 헤드윅은 노래를 부른다. 화를 내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하면서......
뮤지컬 [헤드윅]을 지독하게 꼬여버린 인생을 사는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해도 좋다. 혹은 게이, 트랜스젠더, 드랙 퀸 같은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로 봐도 괜찮다.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남자와 여자, 장벽의 이쪽과 저쪽 그 어느 곳에도 설 수 없는, 세상에 자신의 자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의 말이라고 해도 맞다. 그러니까 이 작품 [헤드윅]은 화려한 의상과 무대, 신나는 노래로 감추고 있지만 실은 아프고 빼앗기고 작아져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무대는 흥겹지만 사연은 즐겁지 않다.
애드리브의 양도 만만치 않은 데다 혼자 오롯이 끌고 가는 연극이다 보니 같은 대사를 말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음에도 헤드윅을 맡은 배우에 따라 전혀 다른 뮤지컬처럼 느껴진다. 내 경우는 이 공연이 3번째 버전이었는데,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작품을 본 느낌이다.
이전 버전들에서 사랑 때문에 고통받는 헤드윅의 개인적이 슬픔이 주로 보였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트랜스젠더, 드랙퀸 같은 성 소수자들이 느끼는 묵직한 아픔까지 전해졌다. 확실히 배우의 개인기와 전달력이 중요하다.
헤드윅은 기본적으로 관객과 함께 달리는 뮤지컬이다. 헤드윅은 수시로 관객석으로 뛰어 내려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관객들은 그에 호응해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른다. 그런데 코로나 시국을 맞이해 그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안타깝다.
아무리 시국이 어렵지만 그래도 조드윅이라니...... 복권에 당첨된 것 같다. 내 통장은 텅장이 되어 가지만, 조승우인데 알 바 없다. 조드윅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