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연장에 가는 이유

- 공연의 매력

by 지안

장면 하나.


뮤지컬 무대 위 신나는 음악과 화려한 조명, 관객의 환호 속으로 주인공이 뛰어 들어온다. 열기는 고스란히 객석으로 전달되고 관객들은 무대, 그리고 배우와 하나가 된다. 첫 곡이 끝날 무렵, 시간에 늦은 관객 두 명이 객석 사이를 비집고 지나간다. 집중력을 빼앗긴 관객들의 얼굴 위로 짜증의 기색이 떠오를 때 상황을 눈치챈 주인공이 객석을 바라보며 말한다.

“아이, 공연장을 못 찾아서 헤맸구나? 여기가 좀 그렇긴 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우리 다시 갈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첫 음악이 다시 시작된다. 관객들은 조금 전보다 더 환호하며 공연에 몰입한다.


장면 둘.


무대 가운데 커다란 마이크가 걸려 있고, 이어지는 선이 보인다. 극장 측은 이 무대가 ‘라이브로 녹음될 것’이며, 혹시라도 마이크로 인해 시야가 방해될 수 있음을 사과한다. 음악과 음악 사이 더욱 뜨거워진 박수가 터지고, 마침내 연주의 클라이맥스. 오케스트라와 관객 모두 숨을 멈춘 절정의 순간, 힘찬 코골이 소리가 객석 가운데서 울려 퍼진다. 오케스트라가 마지막 부분을 연주하고 아름다운 음악은 마침내 끝이 나지만, 귓가에는 좀 전의 코골이 소리가 간 밤의 악몽처럼 생생하다.


장면 셋


TV 드라마에서 깊이 있는 연기로 인상을 준 노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무대를 바라본다. 젊은 상대와 격렬한 말싸움을 벌이던 주인공이 갑자기 책상 모서리를 붙잡는다. 머뭇거린다. 웅얼거린다. 기어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상대 배역이 주인공에게 다가가 좀 전의 대사를 조금 바꿔 반복해본다. 노배우는 그만하라는 듯 손을 뻗으며 고개를 휘젓는다. 정적이 지나간다. 젊은 배우의 얼굴 위로도 당황의 그림자가 내려앉는다. 극의 흐름이 끊긴다. 상대 배역이 주저하며 다시 대사를 반복한다. 마침내 주인공은 대사 비슷한 것을 내뱉는다. 젊은 배우의 표정에는 안심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관객의 마음은 이미 식어버렸다.




케이블 방송이 늘어나면서 TV에 어떤 채널들이 숨어 있는지 아직도 다 모른다. 거기에 더해 OTT 서비스도 있다. 하나만 이용할 수도 혹은 몇 개를 동시에 구독할 수도 있다. 집 근처 영화관에는 서너 편 이상의 새로운 영화가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나의,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다. 이렇게나 볼 것이 많은데 또 공연을 보러 간다고? 왜? 그런 것을 볼 시간이 있어? 이런 의문이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 TV 드라마나 영화와 다른 매력이 공연 안에는 존재한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의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같은 대본에 의해 동일한 극이 반복되지만 결과물은 항상 다르다.


TV나 영화와 달리 공연의 배우는 관객과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 배우는 지금 벌어지는 객석의 상황을 염두에 둔 채 연기를 펼친다. 노련한 배우일수록 객석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살아있는 관객 앞에서 그야말로 날것의 연기를 보여준다. 노래가 몇 번 반복될 수도 있고, 예정에 없던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같은 대본을 연기하지만 배우에 따라 표현되는 인물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같은 작품이 무대에 오르지만 출연하는 배우에 따라, 그날의 날씨에 따라, 관객의 반응에 따라 결과물은 다르다. 완벽하게 동일한 공연은 없다.


이 점이 공연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TV나 영화처럼 관객을 위한 오락이며 예술인 것은 분명하지만 언제나 최고의 상태로 유지되지는 않는다. 배우는 대사를 잊기도 하고, 무대가 덜컥거리거나, 음향이 삐끗할 때도 있다. 어둠 속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작은 문제에도 쉽게 집중이 흩어지며, 이런 관객의 반응 역시 고스란히 배우에게 전해진다. 미처 꺼지지 않은 핸드폰, 소곤대는 잡담 소리, 의자의 삐걱거림 등 신경을 거스르는 것들은 참으로 많다. 하지만 그 모든 역경을 견디며 작품은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갑자기 시작된 폭풍 같은 소나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묵묵히 걸어가는 퇴근길 직장인의 등처럼 가엽고 처량하다.


공연은 중간에 멈출 수도, ‘컷’을 외칠 수도 없다. 편집의 묘미를 발휘해 실수를 만회할 방법은 아예 없다. 영화나 드라마의 감독은 자신의 의도를 특정한 기법을 사용해 화면에 구현할 수 있다. 주인공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거나 배경을 강조하는 식이다. 클로즈업된 배우의 맞은편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객은 알 방법이 없다. 감독이 의식적으로 가리키는 방향으로 관객은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대 위 배우에게 그런 기교는 통하지 않는다. 자신의 얼굴에 관객의 시선을 모으고 싶다면 올곧게 스스로의 역량으로 해내야 한다. 관객은 굳이 주인공의 얼굴에 집중하려 하지 않는다. 대사를 뱉는 주인공의 맞은편 배우에게 이미 감정을 이입했을 수도 있다. 아름다운 무대 배경에 압도됐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관객이 어디에 집중할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관객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연은 ‘관객의 예술’이기도 하다.




2020년 10월 기준, 무대에 올라간 연극이 311편이나 된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같은 기간 뮤지컬은 210편이 만들어져 관객을 기다렸다. COVID 19이 시작되기 전인 2019년 10월에 비하면 뮤지컬 편 수는 절반으로 줄었지만(2019년 10월 기준 405편) 그래도 적지 않은 숫자다. 2021년은 그 전해에 비해 공연작이 조금 늘었다고 한다(아직 정확한 집계가 나오지 않았다). 혹시 당신은 이 중 몇 편을 관람했는가? TV와 영화, OTT의 홍수 속에서도 끊임없이 공연이 제작되는 이유는 뭘까? 또 그 공연들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은 마음은 무엇일까?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재’를 보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다.


어떤 음악가의, 가수의 노래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우리는 그들이 녹음한 음반을 찾아 듣기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그들이 연주하는 곳까지 가게 된다. 같은 시간에 동일한 공기 속에서 그들의 음악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연주와 기계와 엔지니어들의 도움까지 받은 ‘완벽한 음악’인 CD나 파일을 두고 공연장으로 향하는 이유는 '생생함' 때문이다. 그렇게 함께 공유한 시간과 공간, 기억들은 한 곳에서 뭉쳐지면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사랑에 빠진다. 물론 라이브에 실망해 그 음악가나 가수의 노래에 영영 등을 돌릴 때도 있다. 세상에는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공연장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일단 돈이 든다. 전기료와 한 달 만원 안팎의 구독료면 충분한 OTT와 비교한다면 몇만 원을 훌쩍 넘는 관람료는 부담된다. 시간도 문제다. 이불속에서 리모컨을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TV나 OTT와 달리 직접 몸을 움직여 극장까지 오가야 한다. 바쁜 일상에서 보통 품이 드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뚫고 공연장으로 향할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나는 믿는다. 공연장에서 전해지는 생생함과 활력, 아름다움은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공연의 프리뷰 티켓을 사기 위해 알람을 맞추거나 갑자기 뜰 수 있는 할인 티켓을 노리며 공연 예약 사이트를 기웃거리는 이유다. 운이 좋을 때는 오픈 마켓에서 절반 정도의 가격에 표를 구할 수도 있다. 쉽지는 않지만 또 아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이렇게 도착한 공연장에서 우리는 하나의 작품을 만난다. 배우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늦게 입장한 관객의 무안함과 다른 관객의 짜증을 한 소절의 음악으로 날려 버려 준 배우에게 나는 완전히 빠졌다. 그 배우의 공연이라면 내 경제력으로는 조금 버거운 제일 비싼 좌석을 클릭한다. 통장의 비명이 들리지만 어쩔 수가 없다.


라이브 실황 음반까지 살 마음은 없었는데, 나는 문제의 코골이 소리가 난 공연의 실황 음반을 사버렸다. 그 거대한 코골이 소리가 어떻게 됐는지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실로 기적 같은 기술력으로 코골이 소리는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역시 ‘완벽한 음악’을 원한다면 녹음된 음반 쪽을 권한다. 하지만 그 완벽한 음악 안에 어떤 비밀이 담겨 있는지 아는 사람은 그 공연장에 함께 있던 사람들뿐이다.


마지막으로 신인배우나 감독, 극작가의 작품도 선입견 없이 표를 산다. 기대를 안고 객석에서 기다린다. 알려진 명성, 드러난 이름만이 전부는 아니다. 노력하고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만이 완벽한 무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무대에 나는 언제나 박수를 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을 찾는 일이 주저될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가. 과자 하나를 사 먹을 때도 다른 이의 리뷰를 참고하는 이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공연에 대해서는 참고할 자료가 너무 극단적이다. 가까스로 찾은 전문가의 평론은 어려운 개념과 알 수 없는 지식들로 가득하다. 어렵다. ‘좋았다’로 끝이나는 관람기를 보고 작품을 선택하기에는 뭔가 찜찜함이 남는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좋았는지 나는 그것이 알고 싶지만 메아리는 없다. 공허하다. 나 역시 그런 과정을 거치고, 몇 번이고 실패를 반복하며 내 나름의 리 스트를 꾸려가고 있다.


지금부터 쓰는 ‘나의 공연 감상문’은 그 두 극단적 리뷰 중간 어디쯤에 속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전문가는 절대 아니고, 연극과 뮤지컬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감상을 적은 글들이다. 공연을 선택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연 제작 비용이 상승함에 따라 '장기 공연'과 ‘재공연’이 늘어나는 경향이 짙어졌다. 일단 성공했던 연극이나 뮤지컬을 잠시 휴지기를 둔 후 약간의 각색을 거쳐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새로운 작품을 만나기 어렵다는 단점도 분명히 있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는 ‘언젠가 다시 무대에 올려질 작품’을 미리 예측해 보는 장점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말했다시피 공연은 각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무대와 의상, 배우와 관객의 완벽한 호흡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한 편의 공연이다.


자, 당신도 그 공연에 동참할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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