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

- 대학로 아트원 씨어터 2관

by 지안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은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그의 책에서 사용한 말이다. 우리가 적정한 가격에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이유는 싸게 팔고자 하는 가게 주인들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돈을 벌려는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것이 애덤 스미스의 주장이다.


어떤 가게의 물건이 다른 상점의 것보다 질이 낮거나 비싸다면 당연히 팔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게 주인은 돈을 벌기 위해 좋은 물건을 싸게 공급하려 노력할 것이다. 이런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으로 시장은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니 가게 주인들이 자유롭게 이윤추구를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즉 국가는 시장의 흐름에 개입하지 말아야 하며,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 즉 가격에 의해 자동적으로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 “보이지 않는 손”은 오사마 빈 라덴의 최후 근거지이자 무슬림의 나라인 파키스탄에서 어떻게 작동할까?




불이 켜지면 두 남자가 보인다. 침대와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공간에는 창살로 막힌 창문이 위, 그리고 발치에 하나씩 있다. 굳게 닫힌 문으로는 거의 밖을 내다볼 수 없다. 황량한 벽에 0,1,2… 그리고 26의 숫자가 나타난다. 그들이 그곳에 있던 시간이다.


양복을 입은 남자 ‘닉 브라이트’는 손에 수갑을 차고 있고, 파키스탄 전통 옷을 입고 총을 차고 있는 ‘다르’와 대화를 나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역시 전통의상을 입은 ‘바시르’가 나타난다. 바시르는 지역 시민을 위해 일하려는 ‘이맘 살림’이 이끄는 조직의 이인자다. 전직 기자였던 이맘 살림은 부패한 관료들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현재는 오렌지 농장 같은 것을 운영하면서 시민들의 삶을 도우려 애쓰고 있다.




조직이 보기에 파키스탄은 썩었다. 이맘 살림의 말을 빌리면 그들은 “부패된 나라에 억류된 사람들”일뿐이다. 권력이 있는 놈들은 자기들의 배만 불리려 한다. 상황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폭력과 위협으로 돌아온다. 조직을 만들게 된 이유다.


그런데 조직이 지역 시민을 위해 일하자면 돈이 필요하다. 그것도 많이.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납치’를 택한다. 하지만 괜찮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권력자들과 붙어서 파키스탄의 부와 가치를 빼앗아 가고 있다. 그런 미국인 하나 납치한다고 해서 무슨 큰 잘못이겠는가!


원래 바시르와 그의 조직이 원했던 것은 씨티 은행 지점장을 납치는 것이었다. 파키스탄의 정재계와 커넥션이 있는 거물이다. 하지만 일이 꼬여서 엉뚱하게도 실무자인 닉 브라이트를 납치하고 말았다. 몸값을 받아내려는 계획은 실패했다.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하나? 하지만 닉 브라이트는 자신의 몸값을 벌어서 내겠다고 말한다. 금융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는 닉 브라이트는 정보와 인터넷만 사용할 수 있다면 천만 달러라는 거금을 1년 안에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지역 주민을 위하자면 필요한 돈, 그 엄청난 돈을 말이다.


닉 브라이트의 제안은 솔깃하다. 하지만 인질에게 ‘인터넷 접속’을 허락하기는 찜찜하다. 감시도 필요하다. 바사르는 닉은 함께 일을 하기로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닉에게는 고향과 같지만, 바사르에게는 낯선,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세계 속으로 발을 디딘다. ‘정보’는 ‘돈’이다. 정보를 얻을 수 없다면, 정보를 만들 수는 없나? 벽의 숫자는 61, 62… 점점 커진다. 그들이 함께 보낸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이제 바사르는 그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무엇을 보고, 얻을 수 있을까.




‘경제’는 어렵다. 주식이나 코인을 하는 ‘비전문가’도 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성공을 거뒀는지는 알 수 없다. 큰돈을 벌었다는 ‘소수의 사람’들과 상당한 금액을 잃었다는 다수가 모여 있는 곳이 그곳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소수의 사람’이 되기 위해 다수는 오늘도 경제 기사를 탐독하고, 각 기업의 재무상태를 조사하고, 국제 뉴스를 챙겨 보는 일에 여념이 없다. 말만 들어도 골치가 아프다.


그런데 그런 ‘경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든다고?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콜옵션과 풋옵션, 통화에 대해 떠들어댄다. 선뜻 마음이 당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전문 용어를 잠시 뒤로 물려 놓고, 그들의 남은 대화만 늘어놓아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빅쇼트> 같은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단박에 이해 가능하다. 말하자면 ‘누가’ 돈을 벌었으며, ‘누가’ 그것을 차지하려고 하는가를 눈여겨본다면 이 연극의 내용을 따라가기에 무리는 없다.




이 연극은 파키스탄계 미국인인 에이야드 악타(Ayad Akhta)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2011년 미국에서 초연되었으니 벌써 10년도 전에 만들어진 이야기지만 전혀 낡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경제 상황은 악화되었고, 이슬람과 관련된 나쁜 소식들도 여전하다. 모기지와 주식시장, 코인 등으로 돈을 잃는 사람의 숫자는 늘어 가고, 부의 불평등은 모든 나라에서 심각하다. 악화되었으면 됐지 나아진 상황이 없으니 이 이야기는 여전히 힘이 있다.


걱정 말아요. 당신 손에 피를 묻힌 것은 아니잖아요?


반복되는 이 대사는 작품을 관통하는 문장처럼 느껴진다. ‘당신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았지만 현실은 이미 피로 물들어 있다.




분명 인질과 납치범이 관계지만, 마음만 먹으면 어느 한쪽이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그들의 관계는 돈의 흐름에 따라 역전된다. 배우들은 그 관계를 미묘하고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 가운데서 증폭되는 갈등은 관객의 시선을 강렬하게 붙잡는다.


황량하고 답답한, 흡사 폐소 공포증이라도 불러올 것 같은 감옥의 풍경은 현실과 닮아 있다. 누구도 그 안에서 자유로울 수도, 빠져나갈 수도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닉이 갇힌 감옥 밖으로는 드론이 날아다니고 폭탄이 쏟아진다. 설혹 나갈 마음을 먹었다고 하더라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이유다.


이 연극은 파키스탄의 한 감옥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의 어느 곳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돈이 사람을 사로잡는”한 우리는 모두 같은 곳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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