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망각의 본질> 정도가 될 것 같다. 우리 인생에서 ‘망각’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경우는 유아기 때를 제외하고는 한 시기뿐이다. 여러 가지 원인으로 발병하는 ‘치매’ 혹은 ‘알츠하이머’. 그 ‘망각의 본질’에 다다르지 않은 누구도 쉽사리 ‘나와는 아무 상관없어.’라고 흔쾌히 말할 수 없는 그 시기, 그래서 두려움이 앞서는 그때 말이다.
2021년 극장에서 본 앤서니 홉킨스 주연의 ‘더 파더’는 그 해 내가 본 가장 공포스러운 영화 중 하나였다. 피가 튀거나, 살인마가 나타나고, 좀비가 뛰어다니는 것은 무섭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나타날 때는 더욱 그렇다. 무섭고, 그러다 보니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만 불이 켜짐과 동시에 두려움은 끝이 난다. 현실에서 영화와 같은 사건이 벌어질 확률이 그리 높지 않으니, 오히려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치매’라면 경우가 다르다. '나는 그 미래를 피해 갈 것'이라고 자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실과 기억이 뒤섞여 무엇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진짜인지 구별할 수 없는 상황에 내가 처한다면 어떨까. 영화를 보던 내내 심장이 조여들 것 같던 공포의 근원은 ‘내가 앤서니처럼 된다면….’이었다. ‘치매’는 ‘기억이 퇴행’하거나(어린이로 돌아간다거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형제도,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는)라고 알려져 있지만, 어느 날 눈을 뜨니 그렇게 되어있을 리는 없다. 서서히, 조금씩, 어떤 과정을 거쳐, 의심을 더 해가며 그 상태에 도달할 것이다. 앤서니도 그랬고, 이 연극의 주인공 톰 역시 마찬가지다.
“남색 재킷은 행거 맨 끝에 걸려 있어요. 빨간색 넥타이는 주머니에 넣어 둘게요. 마이크 아저씨와 할머니가 케이크를 가지고 오실 거예요.”
55세 생일 파티를 앞두고, 딸 소피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톰에게 이야기한다. 그녀에게 ‘이사벨’이라고 부르는 톰. 딸이 사라지고 난 후, 준비해둔 옷을 찾으려 하지만 헷갈린다. 도무지 찾을 수 없다. 그러다 옷걸이에 걸린 재킷, 그 안에 걸린 빨간색 넥타이를 보고 몸에 걸치는 톰. 몇십 년 전에 입었던 학교 교복을 걸친 톰은 과거의 기억으로 빨려 들어간다.
톰의 기억은 앞뒤가 바뀌고, 멈췄다 늘어나며, 반복되거나 생략된다. 아마도 치매 환자들의 기억은 그런 과정을 거쳐 사그라들고 잦아들다 이윽고 사라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과정이 음악과 동작으로 표현된다.
‘피지컬 시어터’란 대사는 극도로 제한된 형태로,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연극 장르다. 이 연극을 통틀어 제대로 된 대사는 위의 “남색 재킷은…. 오실 거예요.” 뿐이다. 나머지 기억은 모두 동작으로,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마치 잘 구성된 무용극을 보는 느낌이다. 무용보다 더 구체적이고, 줄거리를 명료하게 보여준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영국의 배우이자, 연출가, 마술사이기도 한 기욤 피지(Guillaume pige)가 연출한 이 작품은 2017년 영국에서 초연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2019년 무대에 올려졌다. 이번 공연은 두 번째 무대다.
도대체 저 배우들이 몇 번이나 혹은 몇 백번이나 합을 맞췄을까 싶을 만큼 제대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좁은 무대와 가득한 소품, 그 사이를 가로질러야 하는 배우의 동작들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땀을 흘려가며 배우들은 제대로 된, 완벽한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게다가 음악! 긴장과 비정상적인 상태, 충돌과 어긋남이 신경을 자극한다. 기억이 순행하다 불현듯 방향을 잃고, 꼬이고,흐트러지다 어쨌든 결말로 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배우들의 몸으로 표현된다. 힘을 쥐어 짜내서라도 기억을 이어가려 노력하는 톰. 그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구현된다.
제대로 된 무용극 한 편을 본 것 같은 충만함과 그에 더해 스토리를 응축한 퍼포먼스를 본 것 같은 만족감이 느껴지는 무대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꽃 같은 시기는 학창 시기일까? 그리고 결혼했던 그 지점일까? 그것으로 행복을 표현할 수 있다고 느낀다면 너무 안일한 생각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마음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2017년이라면 조금 더 다른 행복의 잣대들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또 ‘학창 시절’이나 ‘결혼’ 같은 평이한 주제로 어려운 ‘치매’의 ‘기억’의 문제를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어려운 주제라면 쉬운 소재를 쓰는 편이 마음이 놓일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 평이하다.
한 편의 퍼포먼스로는 흠잡을 것이 없지만, 한 인생의 과정을 너무 평면적으로 다룬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으며 극장을 나왔다. 아마 호불호가 갈리는 분이 있다면, 이 지점이 아닐까 한다.
‘더 파더’에서 주인공 ‘앤서니’는 기억의 무너짐을 깨닫고 흐느낀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공포에 찼던 내 마음에 한 조각의 위안도 주지 않는 엔딩이었다. 적어도 이 연극의 엔딩은 그보다는 희망적이다. 그것으로 위안을 주기 위한 의도였을까? 기억이 사라지는 모든 분에게 평화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