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분

-아트원씨어터 3관

by 지안
개인적 7분, 우리의 7분. 이건 개인이 아니라 200명 모두를 대표해서 생각해야 해.

이따금 뉴스를 듣는다. 평택의 공장에서, 태안의 화력 발전소에서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돈의 흐름을 따라 사람들의 계약이 어지럽게 이어지다 불쑥 잘못 매듭지어진 지점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동료들은 ‘누군가 그렇게 될 줄 알았다’고 말한다. 남은 사람들은 ‘더 이상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들겠다고 눈물을 흘리지만, 나는 예감한다. 내일도, 그다음 날도 불행한 뉴스를 듣게 될 것이다. 내가 그 주인공이 될 확률도 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 ‘자본’은 늘 그렇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극장에 들어서면 이미 무대에 나와 있는 배우들이 보인다. 그들은 앉거나, 핸드폰을 바라보거나, 서성거린다. 담배를 피운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다 그러하듯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들은 모두 프랑스에 있는 섬유회사 Ricard&Roche의 직원들이다. 어려움을 겪던 회사는 다국적 기업에 매각되었다. 노조 대표인 그들은 사용자 측과 벌이는 협상장에 들어간 노조 대변인을 4시간째 기다리는 중이다. 공장이 문을 닫거나, 노동자들을 해고했다는 끔찍한 소식이 들려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은 같지만, 인종문제나 세대 갈등으로 인해 그 작은 모임조차 곧 터질 폭탄처럼 아슬아슬하다.


마침내 대변인 블랑세가 사측의 제안서를 가지고 돌아온다. 제안은 간단하다. 기존 15분의 휴게 시간 중 7분을 줄인다. 찬성하면 고용이 유지되지만, 반대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 해고될 수도, 공장이 폐쇄될 수도 있다. 블랑세가 말한다.


의문을 가져야 해. 달콤한 액면 뒤에 감춰진 이면을 봐야 하는 거야.


해고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다음 달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에 사람들은 환호한다. 그래 봐야 15분 휴게 시간이 8분으로 줄었을 뿐이다. 별 것 아니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블랑세에게 ‘고작 7분’을 가지고 왜 그러느냐며 오히려 화를 낸다. 하지만 그들은 200명의 대표다. 200명의 7분을 모두 합하면 얼마의 시간이 되는지 생각해 봤나? ‘고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인가?




이 연극은 이탈리아 작가인 스테파노 마시니의 작품으로, 2012년 프랑스 이상고(Yssingeaux) 지역에 있는 르자비(Lejaby) 공장에서 벌어진 투쟁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르자비는 1960년대에는 프랑스 속옷 회사 랭킹 2위였을 정도로 견실한 기업이었으나, 2011월 말 법정 파산 상태에 이르게 된다. 2012년 이 회사를 인수한 기업은 450명의 직원 중 195명 만을 고용승계하겠다고 밝힌다. 마지막 남은 이상고 공장은 폐쇄하고 생산 기지를 튀니지로 이전할 것이라는 소식도 함께 발표한다. 생산의 외주화다.


이상고 공장에 근무하던 93명의 노동자들은 회사의 결과를 그냥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들의 상황을 언론을 통해 부각한다. 고용불안과 실업 등으로 불안해하던 여론이 들끓기 시작한다. 마침 2012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당시 대통령이던 사르코지는 TV 토론에서 르자비 근로자들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다. 선거가 아니었다면 얻을 수 없는 결과였을지 모르지만, 르자비의 노동자들은 ‘인수합병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실업’이라는 선례를 남기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이긴 것이다. 이 실화의 조각들이 연극 안에 녹아 있다.




무대는 휴게실이다. 작은 사물함들과 낡은 책상, 의자가 놓여 있다. 10명의 배우는 200명의 노동자를 대표해 모인 사람들이다. 그들의 투표 하나가 200명의 미래가 되는 것이다. 비록 그들은 한 사람의 노동자일 뿐이지만,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 명의 노동자’ 일뿐이지만, 200명을 생각하고, 더 큰 의미로는 모든 노동자의 권익을 고려해야 한다. 욕망을 떨치고, 연대와 노동의 존엄성에 대해 기꺼이 생각해야 한다. 만만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인종문제도 있다. 프랑스는 이미 아랍인들이 벌인 수차례의 테러를 경험했다. EU로 묶여 자유롭게 유입되는 동유럽 이주자들 때문에 자신들의 취업시장이 열악해졌다는 인식도 많다. 꼬일 대로 꼬여서 연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이 연극에는 총 11명의 노동자가 나온다. 이집트와 폴란드, 터키에서 온 이주자와 30년 동안 회사를 다녔던 직원, 채 1년도 근무하지 못한 직원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한다. 잘 될 리가 없다. 말은 날카로운 칼처럼 사이를 누비다가 급기야 폭력적인 상황까지 벌어진다. 토론이란 귀를 막고 목소리를 크게 해야 제 맛이다. ‘해고’와 ‘실업’의 위기에 놓인 사람들은 상대의 상처를 후벼 파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목소리를 높인다. 불꽃이 튄다. 급기야 서로를 의심한다.


10명의 배우들은 이 긴장감과 불안, 날카로움을 훌륭하게 표현한다. 싸울 상대가 회사라는 것은 알지만 그러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하다. 싸우다가 내가 잃어버리게 될 것들이 너무 많다. 두렵다. 나쁜 기분을 끌어 모아 당장 눈앞에 보이는 동료에게 화풀이를 한다. 안 보이는 줄에 묶인 것처럼 상대방을 잡아당기고, 공격한다.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혈투를 보는 기분이다. 블랑세 역의 전국향 배우는 그 모든 소란을 정리하며 무게 중심을 잡는다. 언제나 1인분 이상을 해내는 든든한 배우다.




자본은 이익을 추구한다. 더 많은 자원을 사용하고, 인건비를 줄여 높은 생산을 유지하려 한다. 지구의 자원은 고갈되어 가고, 노동자들은 지치고 가난해지는 중이다. 그렇다면 그 ‘이익’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 ‘이익’을 누리고 있는 자들은 누굴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도 당장 다음 달 집세와 고지서가 떠오르면 더는 복잡한 고민을 할 틈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7분쯤 들어 드는 휴게 시간에 감사하게 된다.


원래 그 휴게 시간은 45분이었고, 그다음에는 30분으로 줄어들었으며, 나는 15분으로 줄어든 시간만 누리고 있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제 '고작 8분'의 휴식만 내 몸에 허락할 수 있지만 일만 할 수 있다면 그것도 감지덕지다. 그렇게 우리는 가지고 있던 권리를 빼앗기면서도 감사한, 내 노동의 존엄을 스스로 무너트리는 노동자가 되어간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래서 이 연극을 보는 내내 눈이 시큰거렸다.


장면이 전환되지도, 음악이 나오지도 않는다. 90분의 시간 동안 말이 쏟아지고, 그야말로 말로 된 전투가 치러진다. 우리는 언제까지 ‘작은 것에 감사’하며 ‘더 큰 무엇’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포기해야 할까? 도무지 남의 일 같지 않은 한 편의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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