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시간이 멈춘다

- 소극장 산울림

by 지안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 시간은 멈춘다. 사진 속에는 대상이 느끼는 즐거움, 고통, 좌절, 환희 등이 응축되어 담긴다. 인간의 상상력이란 보잘것없어서, 말의 도움을 받아 떠올리는 인상보다 더 참혹하거나 잔인한 광경을 만나게 되면 충격에 빠진다. 느낀다. 공감한다. 이런 경우 사진 한 장은 긴 말보다 강한 힘을 발휘한다. 지금도 전쟁터에서, 테러 현장에서, 기아로 고통받는 난민들 속에서 사진을 찍는 이들이 존재하는 이유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도 결국 인간이다. 잔혹한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며, 상처받는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무대는 어느 거실이다. 오래 비워져 있던 듯 가구 위에 천이 덮어져 있다.


관객석 뒤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힘겹게 계단을 내려온다. 얼굴에는 커다란 화상 자국, 한 팔과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부축받고 있는 사람은 세라다. 그녀의 곁에서 도움을 주고 있는 제임스와는 7년이 넘게 사귀는 중이다. 세라는 전쟁, 분쟁, 난민, 기아와 같은 사건이 있으면 달려가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진 기자고 제임스는 글을 쓴다.


둘은 팀이 되어 참혹한, 위험한, 말도 안 되는 장소들을 누비고 있다. 그곳이 소말리아든 이라크든 상관없다.

어지러운 곳에는 그들이 도착하고,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참상을 세상에 알린다.


공황 발작이 일어나 집으로 먼저 돌아간 제임스와 떨어져 홀로 남은 세라는 폭탄 테러에 의해 큰 부상을 입는다. 오랜 시간 의식불명 상태였다 가까스로 깨어났다. 그날 곁에서 일을 도와주던 현지 조력자는 사망했다. 제임스는 독일까지 날아가 부상당한 세라를 집으로 데려왔다.


친구이자 편집자인 리처드가 어린 새 여자 친구 멘디와 함께 그들을 방문한다. 리처드는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새 여자 친구와 결혼하여 가정을 갖는 평온한 삶을 선택했다. 세라와 제임스는 자신들의 삶을 떠올린다. 그들도 리처드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지금이야 말로 다른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바로 그 타이밍일 수 있다.



"내 일은 삶을 찍는 것이지 바꾸는 것이 아니에요."


테러를 겪고 부상을 당했으면서도 세라는 한치의 흔들림이 없다. 제임스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선 상태다. 제임스는 더 이상 전쟁을, 피를, 죽음을 견딜 수 없다.


세라가 찍고 제임스가 쓴 잔인하고 불행한 기사들은 광고와 패션 화보로 가득한 잡지 어디쯤 놓인다. 혹은 신문의 연예면 뒤에 작게 자리 잡는다. 독자들은 그 기사를 얼굴을 찌푸린 채 읽거나, 그냥 건너뛰어 버린다.

세상에는 불행한 일이 넘친다. 그러니 너무 많은 양이 쏟아지면 곤란하다. 누군가에게는 목숨이 걸린 잔인한 사건이 세라와 제임스가 사는 세계에서는 '의식 있는 소비'의 한 형태일 뿐이다. 이것은 정당한가? 연극은 묻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직업적 특이함을 제외한다면 이 연극은 기본적으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인생을 함께 가던 연인이 문득 걸음을 멈췄을 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묻는다. 연인의 바람대로 인생이 경로를 바꿔야 할까? 이별을 감수하고 내가 원하는 길을 가야 할까? 인생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은 선택들 뿐이다. 그렇게 선택한 것들이 모여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든다.


우리가 지닌 많은 것은 주어진 것이다.. 태어난 나라도, 부모도, 재능도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골라잡은 것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어떤 인생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이 아닐까? 우리는 '어떤 인생밖에 살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이 연극은 '어른의 사랑'을 보여준다. 열정적이지도 정열적이지도 않다. 생활이 섞인 차분한 사랑은 어느 순간 치졸하고 옹졸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사랑이란 것이 늘 '환타스틱'하고 '로맨틱한'것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 사랑하고 있다면, 혹은 사랑의 열정이 조금씩 꺼져 가고 있다면 한 번쯤 그들이 사랑을 바라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어른의 사랑이란 조금은 스산하고 많이 재미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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