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가

-예스 24 스테이지 3관

by 지안

불편한 표정의 볼로디아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연극은 시작된다. 무대는 볼로디아의 작업실이다. 옷은 제대로 옷걸이에, 책상 위에는 가지런히 정리된 대본들이 순서대로 열을 맞춰 놓여있다.


노트를 펴고 뭔가를 적으려 할 때, 노크소리가 들린다. 방금까지 볼로디아가 머물렀던 극장에서 대성공을 거둔, 무려 관객들에게 15분 동안이나 기립박수를 치게 만든 연극을 쓴 작가 스카르파가 불쑥 나타난다. 손에는 와인을 들고 있다. 자신의 성공을 함께 축하하자는 의미인가?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그리 친밀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당신의 지독한 혹평 때문에 직업을 바꿀 수도 있었다"라고 작가가 말한다.


블로디아는 스카르파에게 미안함 따위는 전혀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평론을 써도 아무도 읽어주지 않으니 나를 과대평가하지 말라"라고.


그랬다. 평론가 블로디아는 작가 스카르파의 작품에 지독한 혹평을 연이어해오고 있었다. 블로디아가 가장 최근 쓴 작품은 무려 10년 전에 쓴 것이다. 그러니까 10년 동안 스카르파는 한 작품도, 한 단어도 쓸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 10년 만에 완성한 극본으로 관객들의 엄청난 환호를 받은 스카르파는 블로디아를 찾아왔다. 당신이 내 작품에 관해 비평을 쓰는 모습을 한 번만 보고 싶다고 말한다. 물론 이후 완성된 비평에 분노를 터뜨린다. 애초에 그러려고 찾아온 것이니까.



이 연극에 나오는 인물은 둘이다. 비평가와 작가. 두 사람만이 오롯하게 100분을 채운다. 서로 주먹을 휘두르지 않을 뿐이지, 그들이 구사하는 문장에는 어퍼컷과 잽과 훅이 난무한다. 상대가 아파할 만한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비꼬고, 우습게 만든다. 하지만 한편으로, 볼로디아는 스스로에 관해, 자신의 과거에 대해 스카르파에게 고백한다. 그 고백은 볼로디아를 감싸는 갑옷이고, 자신이 남기는 혹평을 변호하는 방편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누군가에게 '자신'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상대방에게 어떤 식으로든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기초적인 시도이기도 하다. 이제 두 사람의 관계가 조금 모호해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극작가가 아니다. 알려지지 않은 어딘가에 사브작사브작 글을 쓰고 있긴 하지만 누군가 내 작품에 혹평을 가하거나, 내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힌 적은 없다.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내가 글 쓰는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할 만큼의 마음을 상처를 입은 적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굳이 비평가를 직접 찾아와 분노를 터트리는 작가에 대해 깊은 이해의 마음을 품을 수 없다. 게다가 굳이 일부러 혹평을 하는 비평가라니........

하지만 대화가 이어지면서 점점 그들의 감정에 이입하게 된다. 그래, 그럴 수 있겠어.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 작품은 스페인의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작품이다. 연극을 보는 내내 원작이 궁금해졌다. 원작이 잘못된 것인지, 번역의 문제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단지 연출의 잘못인지 매우 답답했다. 적어도 이 작품은 '너무 늦게' 정답을 내놓는다. 볼로디아는 왜 스카르파의 작품에 그런 비평을 남겼는지, 스카르파가 결국 볼로디아를 찾아온 이유는 뭔지 너무 늦게 알려준다.


타이밍만 제대로 맞췄다면 작품의 이해에, 또 몰입에 훨씬 도움이 됐겠지만, 떡밥조차 너무 늦게 알려준 데다, 그 회수도 한 템포 늦게 이뤄졌다. 성질 급한 관객들의 집중력이 다 흐트러진 다음이다.




사실 이 연극을 보러 간 이유는 송유택 배우 때문이다. 근래 그의 작품은 거의 다 본 듯하다. 송유택 배우, 나쁘지 않았다. 스카르파의 격정적인 심정을 표현할 때는 순간 다른 무대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스카르파는 볼로디아를 떠보고, 짐작하고, 에둘러 비난하기도 한다. 매우 낮고 작은 목소리로 말이다. 아마 뒷줄에서는 그의 작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소리를 지를 때면 듣는 내 머리털이 설만큼 쩌렁쩌렁했지만, 작은 목소리는 마이크 없이는 무리였다.


게다가 2명의 배우만 나오는 작품이다. 두 사람의 케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어쩐지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경기를 하는 선수처럼 보였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은 탁구를, 한 사람은 테니스를 하는 것처럼 흐름이 끊기고, 영 다른 무대에 선 것 같은 이질감을 줬다. 막 시작된 연극이라 그런 것이길 바란다.




"내가 노래할 줄 알면 살아남으련만."


연극을 관통하는 대사를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당연히 이 문장을 말해야 할 것이다. 나는 노래하는 사람인가? 당신은 노래하는 사람입니까? 그리고 연극의 본질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연극은 허구입니까? 아니면 사실적인 건가요? 이 모든 아름다운 질문들이 수면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한 것이 아쉬운, 그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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