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칭 더 보이드

-대학로 아트원시어터 2관

by 지안

생각해보면 게을렀다. ‘공연정보’라도 챙겨보고 갔어야 했다. <시울라 그란데 등반 중 조난을 당한 동생 ‘조’의 경야에 참석한 ‘세라’가 그때 함께 등반했던 ‘사이먼’을 만나는 이야기>이며, <장르를 뛰어넘는 실화의 묵직한 감동>이라는 광고 문구를 보고 갔어야 했다. 그런데 그냥 갔다. 나는 ‘연극열전’의 유료 회원이고, 새 작품이 올라오면 당연하다는 듯 극장을 찾는다(연극열전의 레퍼토리 중에 아직 실망한 작품은 없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좌석에 앉아 객석의 불이 꺼지기를 기다렸다.


‘경야’란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기 전에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들이 관 옆에서 밤을 새워 지키는 일을 말한다(낯선 단어지만, 이것 역시 광고 문구에 적혀 있었다).




무대의 불이 켜지면 클라이머들이 모이는 카페에서 술병을 든 채 서성거리는 ‘세라’가 보인다. 슬픈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듯 보이기도 한다. 지금 그녀는 등반 중 사망한 동생 ‘조’의 ‘경야’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는 세라를 위로하는 말을 하고, 또 누군가는 그녀를 말없이 안아준다. 그 모든 것 때문에 세라는 지금 미칠 것만 같다.


그곳에 ‘사이먼’이 찾아온다. ‘시울라 그란데’에 조와 함께 올라갔지만, 결국 혼자 살아 돌아온 사람이다. 곧이어 ‘리처드’도 도착한다. 조와 사이먼이 ‘시울라 그란데’에 오르는 동안 베이스캠프를 지키고 있던 남자다.


세라가 묻는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꼭 대답해 줘요. 내 동생, 정말 죽었어요?”


사이먼과 리처드가 대답한다. 조가 어떻게 죽었는지. 다시 세라가 묻는다.


“왜 그런 짓을 해요? 왜 산에 가냐고. 애초에 구조되는 게 불가능한 곳을 왜 올라가냐고!”


이제는 보여줄 차례다. 사이먼은 세라를 데리고 암벽을 오른다. 작은 공원의 연습용 암벽을 지나 조금 높은 산, 드디어 시울라 그란데까지.




두 사람이 서면 적당할 정도의 작은 무대 위에 암벽을 형상화한 구조물을 설치했다. 두 사람이면 딱 적당하다. 그런데 등장인물이 넷이다. 무대 디자이너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무대가 배만 컸다면, 아니 1.5배만이라도 됐다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 연기로는 다 커버할 수 없는, 좁은 무대여서 어쩔 수 없는 ‘북적임’이 있다. 그것이 산의 고요함, 고독함, 적막함을 느끼는데 태클을 건다.




산을 형상화한 경사진 구조물 앞으로 굵은 밧줄이 내려와 있다. 등산할 때 쓰는 로프 같기도 하고, 어쩌면 목을 매다는 줄처럼 보이기도 한다. 검은 옷을 입고 술을 마시는 세라가 있어 어쩌면 더 ‘목을 매다는 줄’처럼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으로 사이먼이 세라를 이끈다. 나무로 만든 구조물을 비스듬히 오르고, 피켈을 찍고, 발을 바꾸고, 로프를 당기고 다시 오른다. 기껏해야 허벅지 높이의 경사지만, 대사와 함께 오르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에베레스트라도 등반하는 느낌이 든다. 그들의 앞으로 거대한 눈보라가 휘날리는 영상과 소리가 들린다. 미끄럽고, 위험한 산이다. 나무판자 위에, 의자 다리에 기댄 채 하는 대사는 정말 암벽 옆에서 외치는 소리처럼 들린다.


어느 순간, 연극은 ‘세라’의 시점이었다가 ‘조’의 시점으로 바뀐다. 암벽 등반처럼 위험한 일을 왜 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세라에게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조’의 시점으로 하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다. 그렇게 관객은 세라의 마음을, 사이먼의 슬픔을, 리처드의 안타까움을, 조의 좌절을 이해하게 된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인생이 다 그렇듯이…….




이 연극은 ‘조 심슨’이라는, 1985년 사이먼 에이츠라는 인물과 함께 ‘시울라 그란데’의 서쪽 빙벽을 최초로 등반한 산악가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스코틀랜드의 작가 ‘데이비드 그레이그’가 쓴 작품이다. 2003년 연극과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못 봤으니 할 말이 없지만). 하지만 아마도 이 연극은 원작과는 꽤 다른 줄거리를 가졌을 것이다. 이 연극은 조난당한 사람의 생존 스토리이지만 그 과정에서 생긴 어떤 상황을 설명하기보다는 시종일관 ‘삶의 자세’에 관해 말하고 있다.


난 계속 생각하고 결정할 거야. 이건 내 선택이니까!


연극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대사는 이것이다. 조는 산에 가기로 결정했고, 사이먼과 함께 오르기로 결정했다.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며 몸을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살아있기 때문에 생각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정한다. 한 인간의 인생은 이런 작은 움직임이 모여 만들어진다.




‘터칭 더 보이드’를 우리말로 바꾸면 ‘공허에 닿다’ 정도로 할 수 있겠다. 아무도 없는 설산, 높고, 거칠고, 얼어붙은 곳에서 울리는 산의 소리. 산이 흐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외치는 것 같기도 한, 어쩌면 공포심마저 들게 하는 그 고독한 소리. 산에 오르는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그 소리를 ‘터칭 더 보이드’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산을 오른다. 인생이 끝없이 이어지듯, 눈을 맞으며 계속 이어지는 암벽을 기어오른다.


세라 역의 이진희 배우는 ‘혼신을 다해’ 연기했다. 정말 혈육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관객석까지 전해졌다. 혈육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조의 인생에 마지막 한 방울의 도움이라도 주려는 아름다운 모습에 가슴 시렸다. 세 명의 등산가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밥 딜런과 보니 엠의 음악에도.


‘두렵지 않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냐’는 극 중 대사처럼,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어 두렵다. 하지만 두렵지 않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나? 그리고 그 두려움 앞에서 내가 한 선택들이 나의 인생을 만든다. 이 연극은 그런 것들에 관한 우화다. 눈물이 날만큼 멋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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