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by 지안

뮤지컬이나 연극 혹은 음악 공연을 볼때, 일단 티켓을 구하는게 결승점인 경우가 있다. 줄거리가 무엇인지, 공연장은 어딘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VIP석인지 R석인지 B석인지도 상관없다. 가격도 속이 많이 쓰리지만 납득한다. 그런 공연이 아주 가끔 생긴다. 그런데 뮤지컬이 그 중 하나다. 박효신 배우의 그웬 플랜을 만날 표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성공이다.



17세기 영국, 아이들을 납치해 귀족들의 놀잇감으로 팔던 콤프라치코스 일당의 배가 침몰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기이하게 입이 찢겨져 늘 웃는 얼굴이 되어 버린 어린 그윈 플렌은 콤프라치코스 일당에게 버려진 후 눈보라 속에 헤매다 얼어죽은 여자의 품에 안겨있던 아기 데아를 구한다. 그러다 우르수스를 만난 둘. 우르수스는 투덜대며 불평하지만 두 아기를 거둬 기르고, 이들은 그웬 플랜의 기괴한 얼굴을 앞세워 흥행하는 유랑극단을 만든다.

나름 행복한 이 가족 앞에 조시아나 여공작과 더리모어 경의 사생아인 데이빗이 나타난다. 그웬 플랜의 괴물같지만 알 수 없는 매력에 조시아나 여공작은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데....


줄거리다. 그렇다고 한다. 선, 악 이분법은 딱 정해졌고, 착한 사람과 나쁜 놈도 구별된다. 헷갈리는 인물도 성격이 변하는 배역도 없다. 그냥 마음을 푹 놓고 뮤지컬을 즐기면 된다.




대극장이라 무대 디자인팀이 작정하고 만든 것 같은 화려하고 밀도있는 세트와 조명이 시작부터 관객을 압도한다. 은하수와 별 같은 조명 뿐 아니라 천을 사용하여 표현한 눈보라나 하늘은 깜짝 놀랄만큼 아름답다.


하지만 이 뮤지컬의 압권은 노래다. 아, 그래도 박효신 배우를 보는데 성공했다. 장하다, 나 자신! 사람이 이렇게 압도적으로 재능이 있어 버리면, 사생활이 어떻든 무슨 문제가 있었든 눈을 돌리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재능이란, 인생이란 모름지기 불공평한 것이다. 하아...

우르수스 역의 양준모 배우와 조시아나 여공작 역의 신영숙 배우도 멋졌다. 양준모 배우의 감정연기.... 눈물나올 뻔 했다. 이래서 자식 키워야 아무 소용없다(뮤지컬 보신 분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아실테지요 ㅋ)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다"는 문구가 무대에 떠 있기도 하고, 대사로 되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어렵다는 조시아나 여공작의 노랫말이 더 가슴에 남는다. 우리는 하나의 삶을 얻으려면 다른 삶의 방식은 놓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으면서도 말이다.


폭우에 광화문 곳곳도 자박자박 물이 차 있었다. 다들 무탈하시기를. 그리고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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