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도 ‘삼국지’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이 있다. 400년 동안 중국을 다스린 한나라, 위진 남북조, AD 2-3세기 같은 것들은 몰라도, ‘삼국지’의 주인공들인 제갈공명, 조조, 유비, 관우, 장비의 이름은 친숙하다.
이런 ‘삼국지’ 사랑은 현대에 불쑥 생긴 것이 아니고 줄곧 이어져 온 것이라, 조선시대에는 판소리로 만들어져 소비되었다. 즉 고수가 북을 치며 추임새를 넣고, 명창이 시원하게 소리를 하며 엄청난 수의 청중들을 쥐락펴락 하던 ‘검증된’ 작품이란 소리다. 그런 ‘적벽가’가 뮤지컬로 만들어졌다니, 궁금했다.
적벽가는 소설 ‘삼국지(삼국지연의)’중에서 벌어지는 숱한 전투 가운데 ‘적벽대전’을 따로 떼어내 만들었다. 적벽대전은 엄청난 수의 군대(조조가 동원한 군사만 백만 명이라고 했으니까)가 맞붙어 거대한 강 위에서 싸운 전투다. 이런 ‘큰 싸움’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먼저 적벽가의 줄거리를 짧게 적어보겠다. 자칫 ‘스포’가 될 수도 있는 줄거리를 술술 불어버리는 이유는 워낙 알려진 이야기라 ‘스포’에 끼지도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줄거리가 ‘스포’로 느껴지는 분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워낙 유명한 것들은 이름만 그럴 뿐, 내용은 오히려 생소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걸 또 내놓고 물어보기는 민망하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이 뮤지컬을 즐기기 위해서는 줄거리를 미리 알고 가셔야 한다. 판소리의 특성상 단어가 귀에서 바로 이해되지 않는다. 한자가 뒤죽박죽 섞인 옛 문구가 뇌를 한번 거쳐가야 이해된다. 그러다 보니 줄거리를 모르면 따라가기 힘들다. 그러니 줄거리 시작.
유비, 관우, 장비가 의형제가 된 후, 자신들의 무리에 ‘브레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침 믿을 만한 사람아 은둔 중인 제갈공명을 추천한다. 세 사람은 제갈공명의 집을 세 번이나 찾은 끝에 겨우 모셔온다.
제갈공명은 신야에서 조조 군을 이기지만, 뒤이어 벌어진 장판교 싸움에서는 유비의 아내가 죽고, 겨우 갓난 자식만 살아 돌아올 만큼 위기를 겪는다. 조자룡이 유비의 아기를 품에 안은 채 뒤쫓아오는 적을 피해 달리는 장면은 유명하다.
강남을 평정하기 윈하는 조조는 적벽에서 손권(그리고 작은 병력의 유비의 군대)의 군대와 마주한다. 조조는 엄청난 수의 배를 강 위에 묶어서 띄워 놓았다. 나무로 만든 배라 불을 사용하는 공격에는 취약하지만, 때는 바야흐로 조조의 진영으로 바람이 불지 않는(동남풍이 불지 않는) 그런 시기였기 때문이다.
제갈공명은 동남풍이 불도록 ‘천운’을 유도해서 손권(그리고 그의 장수인 주유)이 이길 수 있도록 만든다.
크게 패한 후 도망치던 조조가 화용도에서 관우와 마주친다. 예전 관우가 유비와 소식이 끊겼을 때, 유비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조조에게 투항한 적이 있었다. 그때 조조는 관우를 자기 부하로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관우는 유비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떠나버린다. 아무튼 관우 및 유비 가족의 목숨을 살려준 것이다. 화용도에서 만난 관우는 조조를 죽이려 하지만, 조조는 과거의 일을 거론하며 목숨을 구걸한다. 마음 약해진 관우는 조조를 살려준다.
자, 여기까지가 뮤지컬의 전체 줄거리다. 판소리 ‘적벽가’중 중요 부분을 편집해 만든 이 작품은 자막이 함께 제공된다. 무대 밖에 배우의 판소리가 한글과 영어로 지나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초당에 춘수 깊어 계시나이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찾아갔을 때, 시종이 전해준 말이다.
“군량 실은 배량이면 선체가 온중헐디 둥덜실 높이 떠 요요하고 범류허니……”
조조의 부하인 정욱이 적의 배를 보며 하는 말이다. 한글이지만 한글이 아니다. 어떤 문장은 영어를 읽는 편이 이해하기 쉽다. 즉 한글이지만 워낙 옛 문체라 이해가 쉽지 않다. 사자성어도 후두두둑 지나간다. 대충 줄거리를 알고 가야 한다는 이유다.
크지 않은 무대는 두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양 편에는 경사진 출입구가 만들어져 있다. 뮤지컬이 시작되면, 이 작품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 몇 겹의 그림들과 조명의 아름다움 속에 펼쳐진다. 레이저 쇼도 이따금 거든다.
무대는 단순하게 구성되었지만,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확실하게 구현된다. 단락의 구분은 자막이 도움을 준다. ‘도원결의’, ‘삼고초려’ 뭐 이런 식이다. 부채 하나만 들고 추는 군무로 칼싸움과 추격전까지 표현한다. 아름답고 귀엽다. 무엇보다 의상이 아름답다.
극의 9할은 판소리다. 판소리로 줄거리를 설명하고, 코러스 역시 그렇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자막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지만, 줄거리만 대충 알고 있어도 극을 따라가는 것에는 무리가 없다. 아무리 판소리의 언어가 낯설지만, 그래도 판소리다. 조상들이 즐겼었고, 당연히 우리 귀에도 리듬이나 감성이 익숙하다.
전쟁에 대패하고 난 뒤 조조가 보여주는 모습은 해학적이고 우습다. 아마 우리 조상님들은 조조를 꽤 싫어하셨나 보다. 조조가 활약하는 부분은 굳이 자막이 필요 없다. 남 놀리는 일에는 판소리가 최고다. 오단해 배우의 조조는 그야말로 맛이 잘 살아 있었다. 대책 없이 실실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연주. 아쟁의 소리가 깊고 새롭다. 타악과 드럼이 제대로 흥을 살린다. 흥이 최고조에 오른 소리판이다.
판소리는 거의 잊혀 가는 장르지만, 잊어버리기에는 또 아까운 장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대사를 현대어로 옮겨 이해를 도와야 할까? 아니면 듣는 이들이 열심히 가사를 되뇌며 내용을 음미해야 할까? 어떤 방법이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극의 마지막 부분처럼 느닷없이 ‘대중적 뮤지컬 곡’으로 대동 단결하는 방법이 좋은 길은 아닌 듯하다. 어깨가 들썩들썩, 다리가 훔칫훔칫 하던 기분이 엔딩곡에서 ‘이건.. 도대체…’로 바뀌어 버렸다. 낱개의 극을 섞어놓은 이질감이 느껴지는 마지막이다.
하지만 엔딩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완벽한 공연이다. 아직도 어깨춤이 절로 나는 신명 난 놀이판을 다녀온 느낌이 드는 그런 뮤지컬이다. 잘 놀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