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인 베드 (스포 있습니다)

- 명동예술극장

by 지안

연극을 나누는 기준으로 몇십 혹은 몇 백 가지 – 희극이냐 비극이냐, 한 명의 배우가 출연하는가 다수의 연기자가 등장하는가 등등 – 를 나열할 수 있겠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재미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곧 이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란 무엇일까. 별생각 없이 무대 위를 바라보며 웃을 수 있는 것이 ‘재미’인지, 지적 자극이 되는 것이 ‘재미’인지 따져 묻는 경우가 있어서다. 100분 동안 배가 아프게 웃고 나온 연극이지만 ‘재미는 별로…..’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고, 시종일관 심각했지만 ‘재미있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그래서 생긴다. 단순하게 정리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로 ‘앨리스 인 베드’는 애매하다. 일단 이야기 구조가 약하다. ‘베드’에 ‘인’하고 있는 ‘엘리스’가 오빠를 만나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상상 속의 파티를 한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와 ‘현실에서 볼 것 같지 않은 사람’과 대면한다. 그게 전부다.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마음이 졸아들거나, 손에 땀이 쥐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 방향에서 말하자면, 이 연극은 재미없다.




하지만 아직 내 말이 끝나지 않았다. 일단 극본을 쓴 수전 손택(Susan Sontag)에 대해 생각해 보자. 수전 손택은 1933년에 태어나 2004년에 사망한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고 불린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번인가 사진전이 열리기도 했고, [은유로서의 질병] 같은 책은 필독 도서 중의 하나다. [은유로서의 질병]은 ‘질병’이 일종의 은유로 사용된다는 단순 명료한 주장을 담고 있다. 연극과는 상관없지만 잠깐 말해보자면 이런 내용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AIDS는 ‘난잡하고 추잡한’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AIDS는 선천적으로 유전될 수 있고, 수혈이나 기타 밀접 접촉으로 옮을 수 있는 질병임에도 환자들은 본인들의 상태보다 ‘난잡한 병’이라는 오명 앞에 숨을 죽인다. 1900년대 ‘결핵’은 ‘낭만적’이고, ‘있어 보이는’ 질병이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소설만 뒤져봐도 ‘지식인들이 걸리는’ 병이었다. ‘브나로드 운동’ 을 하거나 '동경 유학을 떠난' 지식인들이나 걸리는 병 말이다. 세균 감염이라는 생각 같은 것은 없었다. 말하자면 질병을 단순한 ‘병’으로 보지 않고 그 병에 의미를 부여(AIDS는 더럽다! 같은)하면서 환자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준다는 것이다. 예리한 진단이다.




이런 명민하고 예민한 수전 손택이 쓴 희곡이 [엘리스 인 베드]다. 이 연극의 주인공은 ‘엘리스 제임스’다. 1848년에 태어나서 1892년에 유방암으로 사망한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일기를 썼다. 너무 적나라하고 예리한 평가가 담긴 일기라, 사후에 겨우 출판이 될 정도였다는 설명이 위키피디아에 나온다.


‘엘리스’라는 이름이 갖는 또 다른 중의적인 의미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다. 앨리스 제임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했듯 티타임을 갖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상징인 토끼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아래는 이 연극의 스포를 잔뜩 담고 있습니다만 혹시 연극을 보시려는 분들도 읽으셔도 됩니다!)




엘리스는 침대에 누워있다. 신체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다. 간호사들은 자꾸 그녀에게 ‘일어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뇌’다. 엘리스는 침대에 누워있기를 고집한다. 앨리스의 병명은 ‘히스테리’ 혹은 ‘신경쇠약’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일까?


엘리스는 ‘빅토리아 여왕’이 다스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가족이 세상의 기준이며, 남편은 이끌고 아내와 아이들은 순종해야 하는 시대다. 남자는 사회적 활동을 하고, 여자는 집에만 있어야 하는 세상이다. 무릇 여자란 아플 때라도 외모를 가꾸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써야 하는 때다.


엘리스는 4남 1녀 중 막내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아들과 똑같이’ 키웠다고 주장한다. 근거는 ‘도서관에 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는 이유다. 그리고 엘리스에게 말한다. ‘네가 뭘 할 수 있을까. 노력을 해 봐’라고. “자살해도 괜찮”겠느냐는 딸의 질문에 “남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만만치 않은 반응이다.


앨리스는 날카로운 지성을 가졌지만 그것을 드러낼 수도, 표현할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앨리스가 선택한 방법이 침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뛸 수 없다면, 걷는 것조차 불가능한 세상이라면, 자신의 세계에 갇히겠다는 마음이다. 어느 날 4명의 손님이 모여들고 티파티가 열린다.




먼저 도착한 인물들은 ‘마가렛 풀러’와 ‘에밀리 디킨슨’이다. ‘마가렛 풀러’는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한 작가인 동시에 미국 최초의 해외 특파원을 한 사람이다. 이탈리아에 매혹되어 그곳에 살면서 혁명에도 참여했다가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선박사고로 죽었다. 에밀리 디킨슨은 사망 이후 유명해진 미국의 여류 시인이다. 이 두 사람은 실존 인물에서 따왔다.


쿤드리는 바그너의 오페라<파르시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악한 마법사의 주술에 걸려 성배를 찾는 기사들을 유혹해서 타락시키는 것이 쿤드리의 역할이다. 마법사는 그녀에게 주술을 걸어 잠들게 한 후 나쁜 일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녀는 늘 잠들어 있는 상태지만, 사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마법과 무관한, 제대로 된 ‘깊은 잠’ 일뿐이다. 그리고 미르타가 있다. 발레 [지젤] 속 등장하는 ‘결혼 전 죽은 처녀들’의 왕으로, 그녀들을 배신했던 남자들에게 복수하는 역할이다.


엘리스의 환상 속에서 4명의 여성과 모임을 갖는다. 그리고 자신의 환상 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간다. 이탈리아의 도시들을 여행한다.




그러니까 이 연극에는 한 여성의 ‘환상’이 끝없이 나열된다. ‘대사를 도대체 어떻게 외웠지?’라는 감탄과 의심을 연극 보는 내내 쥐고 있었다. 등장인물의 설명으로 짐작하겠지만, 주인공을 포함해 누구도 우리와 친근하지 않다. 사전에 공부하고 가지 않으면 등장인물들이 왜 저런 대사를 뱉는지조차 감잡을 수 없다. 이야기 구조가 약한데, 등장인물들도 이상한 소리를 한다면, 견딜 관객이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그걸 알고 바라보면 재미있다. 몇 년째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동생에게 문병 차 오빠가 찾아온다. 유명한 소설가인 오빠는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동생의 무릎에 파묻힌다. '마치 내가 너에게 위로를 받는 것 같다'는 말에 앨리스가 차갑게 대답한다. ‘여자는 자신이 아파도 상대를 위로하고, 위안을 줘야 하는 존재’라고. 이 말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연극은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극의 마지막, 의외의 손님이 찾아온다. 그 손님만이 우리가 듣기 쉬운 일상어로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그녀를 비난한다. 당연하다. 그리고 ‘그 손님’을 만난 후에야 앨리스는 침대 밖에서 다리를 딛고 일어선다. 그 손님이 말리는데도 걷기 시작한다. 상상으로 되는 일은 없다. 결국 현실을 만나야, 그것과 부딪혀야 인간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연극의 무대는 단순하고 담백하다. 복잡한 것은 지하에 감춰져 있다. 내면이 아무리 엉망이어도 겉으로 보이는 것은 평화로운 것처럼. 내려오고, 혹은 올라가는 무대가 이야기의 진행 상황에 맞게 연출된다. 두 개의 LED판에는 모든 대사가 지나간다. 모든 회차를 베이어 프리로 제작했다. 좋은 시도다.


이 작품의 원작 및 번역본은 보지 못했지만 누가 원작을 던져 줘도 해석은 못할 것 같다. 일단 양이 너무 많다. 한국어를 듣고 있는데도 힘들다. 대사가 귀 밖에서 맴도는 번역 투인데다가 길다. 틈틈이 LED 화면을 보면서 이해에 도움이 됐다. 고마운 일이다. 덜컥거리고 딱딱한 대사들을 열심히 삼키고 나면, 이따금 극장 안에 작은 웃음이 터지는 장면들도 지나간다.


원작을 보지 못해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 작품에서는 원작의 어떤 부분을 일부러 삭제했다는 느낌도 든다. 예를 들어 앨리스 제임스와 윌리엄 제임스의 관계, 에밀리 디킨슨과 수잔 디킨슨의 관계 같은 것 말이다. 덕분에 에밀리 디킨슨의 대사가 잘 납득되지 않는다. 내 이해력이 부족한 탓이라면 할 수 없지만.


다시 ‘재미’에 관한 문제로 돌아가자. 각자 그것을 느끼는 상황은 다를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는’것에 재미를 느끼는 분이라면 관람을 권한다. 가볍고 즐거운 마음이 되자고 이 극장을 찾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사전에 인물 공부를 하고, 관람의 마음을 다잡은 후 무대를 마주한다면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심지어 나름의 유머 코드도 있다! 하지만 이 연극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즐거운 관람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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