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꼰대 감별법
‘전세자금 대출’에 관해 이야기했다. 후배는 이따금 한숨을 쉬었다. 계산기 앱을 몇 번 켜고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를 모으고, 결국 후배의 월급계좌가 속해 있는 주거래은행과 다른 은행 한 곳을 방문해 상담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난 가끔 빨리 늙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이런 거 다 알고 있을 것 아냐?”
눈 아래로 못 보던 다크 서클이 생긴 후배가 뒷목을 잡으며 물었다.
“금수저면 평생 이런 거 몰라. 나이 들면 다 알 거라는 생각은 왜 하게 되는 거냐? 아무것도 모르는 똥 멍청이로 늙는 수도 많아.”
“그러게…. 대출 때문에 여기저기 물어보니 아는 척하는 사람이랑 아는 사람이 다르더라고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꼰대’라는 호칭으로 넘어갔다. 선배는 없고 꼰대만 가득하다는 것이 후배의 주장이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이미 ‘꼰대’의 반열에 든 나로서는 딱히 딴지를 걸 마음은 없었다. 다만 ‘꼰대’라는 호칭을 ‘나이 든 사람’ 중 일부에게 부여해야 한다는 그의 선입견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꼰대란 말이야….” 하면서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연설은 꼰대의 전문분야이니 이 아니 좋을 소냐…….
꼰대들은 감정 표현이 서투르다.
윗사람(그들에게는 나이 많은 사람 말고 계급이 높은 사람이 윗사람이다)을 향해서든 아랫사람을 향해서든 제대로 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덕분에 윗사람이 구사하는 모든 유머는 진지한 웃음으로 답할 수 있고, 아랫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시간은 시끄러움이라는 명목으로 단죄의 칼을 날릴 수 있다. 이들은 독특한 자신만의 ‘사람 분류표’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본인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것이므로 나이와는 상관없다.
꼰대들은 기억력이 좋지 않다.
어지간한 사람은 한번 한 이야기는 두 번 이상 하지 않는다(‘아, 내가 이 얘기했었지? 하하하~’ 하는 어색한 웃음을 날리는 것이 어지간한 사람의 행동양식이다). 그러나 이들은 했던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그리고 늘 처음처럼 느낀다. 그들의 기억력이 나쁜 것을 탓해야 하는 것이니 이 또한 나이와는 상관없다.
꼰대들은 경험이 많지 않다.
‘예전에 말이야, 내가 화성에서 혼자 남아 감자를 기르는데 말이야…..’ 로 시작되는 이야기라면 30년 전 스토리라도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꼰대들의 경험치는 작다. 학교 이야기거나 회사 이야기거나 가족 이야기다. 즉, 너도 있고 나도 아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이야기로 좌중의 시선을 끌기는 유재석이라도 쉽지 않다. 이 또한 나이와는 상관없다.
꼰대들은 부끄러움이 많다.
노래방 테이블 위에 올라 골반을 흔드는 것에도, 취한 김에 ‘형’이라고 한번 잘못 나온 호칭에도 그들은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감정 표현이 서툰 그들은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까맣게 타들어 가는 마음을 굳은 얼굴과 “요즘 아이들은…”과 같은 멘트로 표현한다. 심지어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아랫사람들에게 분위기를 띄울 것을 강권한다. 이 또한 나이와는 상관없다.
꼰대들은 일단 지르고 시작한다.
“내 방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언제라도 들어와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류의 말이 그들의 대표 멘트다. 일단 질러 본 것이므로, 막상 누군가 그 말대로 해주면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을 표현하지 못하고 굳은 얼굴이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 또한 나이와는 상관없다.
꼰대들은 대답을 잘한다.
“.. 때문에 열 받아” 라던지 “… 때문에 힘들어.”라는 말을 들으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런… 어쩐다니..’ 라던가 ‘미친 거 아니냐?’라는, 대답으로는 보기 힘든 감정 동조 발언을 내놓는다. 하지만 대답을 잘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꼰대들은 “음.. 내가 해봐서 아는데 말이야..” 라던가 “그럴 때는 ….. 해야 해.”같은 말도 안 되는 조언이라도 일단 던지고 본다. 이것은 획일적인 교육문화를 탓할 일이지 나이와는 상관없다.
내 연설을 다 들어준 후배는 조용히 일어서 외투를 집었다.
“듣느라 고생했으니 기초 시급이라도 챙겨줘요. 500 한잔이면 되겠다.”
그리고는 샤베트처럼 얼어붙은 회사 언덕길을 조심조심 함께 걸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