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여신을 만나다

11. 오, 놀라워라. 아테네 여신이여.

by 지안

“올리브.”


누군가 말했다. 그럴듯하다. 하지만 가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밀? 아니면 술?”


“뭐, 밀도, 술도 바칠 수 있었겠지만 아닙니다.”


가이드는 다른 대답을 한 일행에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몇 가지 후보가 더 나왔으나 계속 고개를 젓던 가이드가 말했다.


“옷을 바쳤습니다. 자, 이 사진이 저 파르테논 신전 안에 있던 아테네 여신상입니다.”


가이드는 파일을 펼쳐 사진 한 장을 우리를 향해 들어 보였다. 눈부신 황금빛 옷을 입은 거대한 아테나 여신의 모습이 있었다. 희고 단조로운 대리석 신전으로 꽉 차 있던 내 머릿속으로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아테네 여신의 모습이 불쑥 들어왔다. 그렇지, 이 신전이 처음부터 대리석 빛깔이었던 것은 아니다. 채색의 흔적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다양한 색으로 칠해진 거대한 신전 안이라면, 금빛의 아테네가 어울렸을지도 모른다.

미국 네슈빌에 있는 아테나 페르테노스 (Athena Parthenos)신전 재현을 위해 앨런 르퀴어(Alan Lequire)가 1990년 만든 아테네 여신상

“아크로폴리스 안에는 총 3개의 아테네 여신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아테나 래무니아’입니다. 페이디아스가 제작한 아테네 여신상 중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는데, 지금 남아있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아테네 프로마코스’로 저 앞 쪽, 프로필라이아와 에렉테이온 사이에 세워진, 20미터가 넘는 청동 거상이었습니다. ‘아테네 프로마코스’는 이후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가 없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이 지금 보시는 ‘아테나 파르테노스’입니다. 저 파르테논 신전 내부에 11미터 높이로 서 있었습니다. 페이디아스는 이 아테네 상을 대리석으로 단순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금으로 덮기를 원해서 이런 모양으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화려하죠? 그런데 1년에 한 번, 판아테네이아 축제 때 옷을 갈아입힌 여신상은 따로 있습니다. 지금의 파르테논 신전이 있기 전에도 이곳에는 아테네 여신의 신전이 있었고, 그 안에 여신상이 있었습니다. 그 여신상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고 해요. 역시 지금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아마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가이드가 몇 장의 사진을 빠르게 넘기며 설명했다. 우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페리클레스의 추도 연설> 필립 폰 폴츠. 그림 죄측 멀리 '아테네 프로마코스'의 모습이 보인다

페리클레스에 의해 파르테논 신전이 건립되기 전에도 당연히 이곳에는 아테네 여신의 사원이 있었다. 누가 뭐래도 이곳은 아테네 여신이 지켜주는 도시가 아닌가. 당연히 여신을 모실 신전 하나쯤은 있었다. ‘헤카톰페톤’이라고 불린 이 신전은 ‘디오니소스 극장’ 옆에 있었다고 하는데, 페르시아와의 전쟁 때 파괴되었다. 재건 시도는 있었지만 이어진 사건과 전쟁으로 중단되었다.


이후 페리클레스가 지금의 자리에 파르테논 신전을 지으려고 하자, ‘페르시아인들이 파괴한 사원 자리에 아테네 여신의 거처를 짓지 않으면 불길하다’는 이유를 들어(응? 왜? 누가 그래?) 반대하는 여론이 많았다고 한다. 페리클레스는 이런 말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시끄러운 제사장들의 중얼거림도 물리친 후 지금의 자리에 파르테논을 지었다. 지도자가 법사나 술사, 제사장의 말에 휘둘려서는 곤란하다. 옛 헤카톰페톤 자리에는 ‘오데이온’이란 극장을 지었다. 아테네 여신도 거기서 펼쳐지는 향연을 즐기지 않았을까?




그런데 아테네 여신에게 ‘옷을 갈아입히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신’이라면 인간이 만든 옷 따위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신이라면 인간이 만든 옷보다 훌륭한 의복이 얼마나 많겠는가. 하다못해 아라크네(그리스 신화에서 배 짜는 기술로 아테네 여신에게 베틀을 붙었다가 거미가 된 그 여인 말입니다)가 짠 옷감도 인간이 만든 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네 인들은 여신을 위해 의상을 제작했다. 적어도 ‘신’도 인간처럼 ‘옷을 입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귀엽다. 언제부터였을까? 신화에는 에렉테우스가 ‘판아테나이아 축제’를 기획했다고 전해진다. 에렉테우스라면 신화 상 아테네의 왕이요, 에렉테이온 신전의 주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뭐가 되었든 엄청 오래전부터 판아테나이아 축제가 있었다는 거다.


거대한 동상에 입힐 의상이라면 비용도, 정성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오랜 노력 끝에 옷을 만들어 계단을 줄지어 오르는, 튜닉을 입은 그리스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판아테네이나 축제는 여인들만의 축제가 아니었다. 온 아테네, 더 나아가 온 그리스가 즐기는 축제였다. 한껏 치장을 한 젊은이들,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나온 여인들, 전쟁터에서 돌아온 장군들과 나이 든 노인들이 이곳에 모여들었을 것이다. 오래된 옷을 벗겨내고 그들의 정성을 입힌다. 아름다운 새 옷을 입은 여인을 바라보는 것처럼 환호성을 지른다. 그러니까 아테네 인들은 아마 여신을 자신과 그리 다르지 않은 존재로 인식했던 것은 아닐까?


캐나다 온타리오박물관의 아테네 페르테노스. 좀 순박해 보이신다. 위키 펌.

아시아의 신들은 인간의 확장판이 아니다. 이집트의 신만 해도 인간과는 다른 존재다. 2족 보행이 가능한 하체를 가지고 있더라도, 상체에는 자칼이나 소나 하여튼 인간과는 많이 다른 얼굴이 달려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일부 신전에는 신상조차 없었다. ‘신’이란 모름지기 ‘인간’과는 다른 존재여서 상상 가능한 영역 안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를 쓴 ‘조르주 루’는 조금 미심쩍은 어투로 이렇게 쓰고 있다.


이 지구라트는 분명 거대한 건축물로서 측면이 91미터이고 아마 높이도 그 정도 되었을 것이며 층의 개수는 다섯에서 일곱 정도였다. 그 꼭대기에는 “빛나는 푸른 유약”을 입힌 벽들을 사용해 높이 올린 신당이 있었고 그 안에 금으로 만든 판과 큰 침대가 있었다.

“어떤 신상도 이곳에 없었고 어떤 인간도 이곳에서 밤을 지내지 않았다. 신의 사제였던 칼데아인들의 말에 따르면, 모든 여자 가운데서 신이 선택한 단 한 명의 여자는 예외였다. 이 칼데아 사람들은(나는 그들이 하는 말이 믿기 어렵지만) 신이 사람의 몸을 입고 신전에 내려와 그 침대 위에 눕는다고 한다.”



아시아의 신들과 달리 그리스의 신들은 인간에서 좀 더 확장한, 더 능력 있고, 더 아름다운 어떤 존재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페이시스트라토스가 한 이상한 가장행렬이 사람들에게 먹힌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기원전 6세기 사람으로, 페리클레스보다 100년 정도 앞서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솔론’의 개혁으로 아테네에 민주주의가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할 때 나타나 그 과실을 홀랑 가로채 ‘독재자’ 혹은 ‘참주’ 혹은 ‘왕’이 되었던 인물이다. 솔론은 페이시스트라토스를 경계하라고 말했지만, 시민들은 아마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외모는 출중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시민들이 말을 안 들었던 것일까. 솔론과는 오촌 사이라고 하는데, 둘 사이에는 혈육의 정을 넘은 뭔가 더 끈끈한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에 관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이렇게 쓰고 있다.


페이시스트라토스와 솔론은 어렸을 때부터 가까운 사이였으며 솔론이 그의 뛰어난 재능과 미모를 지극히 사랑했다고 한다. 솔론은 뒤에 정치적으로 의견이 달랐을 때도 서로 적대시하지 않았으며, 어렸을 때의 우정을 생각하여 “타다 남은 재 속에 아직도 강한 불꽃이 타고 있다”라고 서로의 애정을 말하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솔론은 각종 개혁을 통해 아테네를 민주주의의 출발점에 가져다 놓는다. 귀족들의 힘을 누르고, 자유민들의 권리를 찾아 주기 위한 여러 제도를 만든 후, 본인의 일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외국으로 떠나버린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정신이 그때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솔론이 사라지자마자 등장한 것이 페이시스트라토스다. 그는 무력으로 아크로폴리스를 장악한 후 자신을 ‘참주’라 칭하며 독재 정치를 시작한다.


1838년 MA Barth의 삽화. 분장한 아테네 여신이 보이는가?


몇 년 후 반대파에 의해 해외로 쫓겨났던 페이시스트라토스는 다시 아테네로 돌아올 기회를 엿본다. 그때 사용한 것이 바로 아테네 여신의 행진이다. 기원전 550년에 일어난 일이다.


먼저 선발대가 아테네로 들어와 다음과 같이 알렸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페이시스트라토스를 환영하시오. 황공하옵게도 아테네 여신께서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이분을 소중히 여기셔서 손수 당신께서 살고 계시는 아크로폴리스로 데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페이시스트라토스와 그 일파는 ‘피에라’라는 키 크고 아름다운 여자를 골라 아테네 여신과 같은 의상을 입히고 무장을 시켜 아테네로 들어가게 했다.


도대체 이런 일을 누가 믿겠나 싶지만, 이게 먹혔다. 헤로도토스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선발대가 이렇게 알리고 다니자 아테네 여신이 페이시스타라토스를 데리고 왔다는 소문이 이내 시골까지 퍼졌다. 시민들은 그 여자가 진짜 여신이라고 믿고, 실은 인간에 지나지 않는 그 여자에게 예를 올렸다. 이렇게 시민들은 페이시스트라토스를 받아들였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은 아테네 여신의 모습을 보았을 터이니, 아마도 피에라라는 여자는 목상과 상당히 유사한 외모를 가졌던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찍이 솔론은 “그대들 각자는 여우처럼 영리하지만 서로 모이면 모래처럼 뭉치지 못하는구려.”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인간 한 명은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머리를 굴리고, 계산을 한다. 영리하기가 여우 못지않다. 그러나 모두 모이면, 이상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페이시스트라토스, 트럼프, 에…. 또……




아테네 여신상을 만든 페이디아스가 고소당한 일도 이상한 결과 중 하나다. 문제의 발단은 조각상 제작을 위해 페이디아스에게 맡겨진 금과 상아의 일부가 작업실에서 사라진 일이었다. 모든 일을 페이디아스 혼자서 한 것도 아니고, 벽의 부조부터 조각을 만드는 일까지 함께 일한 조수들의 숫자는 많았지만 고발이 들어온 이상 어쨌든 그에게 책임이 있었다. 이제 페이디아스는 끝난 것 같았다. 일단 페이디다스를 잡은 후, 페리클레스와도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페리클래스를 최고의 지위에서 끌어내릴 수도 있다. 아마 이런 생각들로 반대파들의 마음은 들떴을 것이다.


그런데 올림피아 사람들이 페이디아스를 위해 중재를 선다. 아테네보다 훌륭한 신상을 갖고 싶었던 올림피아 사람들이 아테네 법정에 보석금을 지불하고 페이디아스를 자신들의 나라로 데려간 것이다.


그는 올림피아에서 무려 18미터 높이의 제우스 신상을 제작했다고 한다. 제우스 상을 본 사람들이 ‘신이 일어서려면 지붕을 부수고 말 것’이라고 불평했을 정도로 거대했다. 페이디아스는 제우스 신상 옆에 작은 니케 상을 세우고, 제우스 신상의 아랫단에 아폴론 신, 아르테미스 여신 등을 새겨 넣었다. 아무렴, 제우스인데……그가 작품을 완성하고 하늘의 허락을 구했을 때 번개가 조각상 근처의 포장된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다.


올림피아 제우스 신상 상상도. 위키백과 펌.

이 신상은 적어도 로마시대까지는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동상을 보고 놀란 여러 사람의 기록이 남아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이름도 얻었다(이런 것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글에 적힌 것으로 대강의 모습을 추리할 뿐이다.


아테네는 훌륭한 미술가 하나를 올림피아에 뺏겼다. 페이디아스의 말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적다. 아테네로 돌아와 감옥에서 죽었다는 말도 있고, 어딘가로 사라졌다는 말도 있다. 내가 페이디아스였다면 아테네로 돌아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정확한 것은 그의 많은 제자들이 훌륭한 작품으로 스승의 이름을 빛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럼 된 거지, 뭐.



에렉테이온 신전의 '카리아의 여인상'

파르테논 신전 내부 조감도를 보여주던 가이드가 다른 여성의 조각상을 펼쳤다.


“카리아의 여인상입니다. 이거 오시다가 보셨죠? 저기 에렉테이온 신전에서요. 여섯 명의 여인이 머리로 지붕을 받치고 있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보신 것은 다 모조품이고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과 대영박물관에 진품이 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카리아(Karya)는 원래 아테네의 우방이었는데, 페르시아 전쟁 때 배신을 합니다. 아마 카리아는 페르시아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겠죠. 하지만 전쟁은 아테네의 승리로 끝납니다. 이후 아테네는 복수를 합니다. 카리아를 침공해 남자들을 다 죽이고, 여자들은 노예로 만들어버립니다. 그것만으로는 분이 안 풀려서 카리아의 여인들이 에렉테이온 신전을 받치고 있게 만들었던 겁니다. 보시면 머리를 다 묶고 있죠? 카리아 여인들의 헤어 스타일이 이랬다기 보다는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이렇게 설계했습니다. 이 사진, 보이시니요? 묶은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이 부분은 목과 함께 기둥을 지탱합니다. 멋지죠?”


에렉테이온 신전. 신전 기둥을 받치고 서 있는 카리아디테스가 보인다.

카리아 여인의 확대된 머리 모양에서 가이드의 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머리 타래처럼 뒤로 넘긴 이유는 목처럼 보이는 부분과 합해서 지붕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서였다. 안타까운 카리아의 여인들.


하지만 내가 읽은 책들에서는 관련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이 정도로 유명하다면 어디든 한 마디라도 써 있을텐데….. 없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도 ‘카리아’라는 나라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아마 전설과 신화의 중간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에렉테이온 신전은 에렉테우스와 아테네, 포세이돈에게 봉헌된 신전이다. 약간 만신전 같은 느낌이다.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테네와 포세이돈은 아테네 시의 얼굴이자 수호신이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자리는 하나뿐. 아테네 인들은 두 신에게 선물을 요구했다. 뭘 가져오는지 봐서 결정하겠다는 수작이다. 포세이돈은 바다의 신으로서 응당 물을 가져왔다! 들고 있던 삼지창으로 옆에 보이는 바위를 푹 찔러 물이 콸콸 넘치도록 한 것이다. 오, 언빌리버블. 아테네는 건조하고 덥다. 그런데 물이라니……. 아테네 인들은 포세이돈의 행동에 열광한다. 하지만 물을 맛본 아테네 인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렇다. 짰다. 바다의 신이니 어쩔 수 없지.


이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고 있던 아테네가 올리브 나무를 내놓는다. 건조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그리스의 특산품으로 지금껏 전해지는 올리브 나무는 이렇게 아테네 인들에게 주어졌다. 시민들은 아테네 여신을 그들의 수호신으로 받아들인다. 신전도 짓고, 봉헌도 한다. 아테네 여신도 전에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던 그 도시를 ‘아테네’라는 이름으로 바꿔 부르게 한다. 힘껏 도시를 지켜준다. 모두에게 해피엔딩이다.


파르테논 신전 내부의 아테네 신상 상상도. 위키 펌


아테네 여신이 심은 그 나무가 지금도 에렉테이온 신전 앞에 있다……면 믿을 수가 없다. 올리브 나무가 한 그루 있긴 한데, “설마 그 전설을 믿으시는 건 아니죠?”라는 가이드의 농담 반 진담 반의 타박을 들었다. 하긴 나는 케크롭스가 아니다. ‘케크롭스’는 ‘아테네 최초의 왕’이라는 전설의 인물이다. 에렉테이온 신전 앞 올리브 나무의 주인이 아테네 여신인 것을 증언한 사람이 바로 ‘케크롭스’다. 이 케크롭스는 사람과 뱀이 하나로 결합된 몸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상상하기 싫다.




아테네에는 뱀이 흔했던 것인지, 또 뱀과 함께 엮인 왕이 있다. 바로 에렉테우스다. 아폴로도로스의 그리스 신화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일설에 따르면 에렉테우스는 헤파이스토스와 앗티스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설에 따르면 헤파이스토스와 아테네의 아들이라고도 하는데 그 경위는 다음과 같다.

아테네가 무구를 만들려고 헤파이스토스를 찾아갔는데 아프로디테에게 버림받은 헤파이스토스가 그녀에게 애욕을 품고 뒤쫓기 시작했다. 여신은 달아나고 절름발이인 그는 어렵사리 여신을 따라잡아 교합을 시도했다. 그러나 여신은 순결한 처녀인지라 이를 용납하지 않았고 그는 여신의 다리에다 사정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여신은 역겨워하며 양모 조각으로 정액을 닦아낸 다음 땅에 던져 버렸다.

땅에 떨어진 정액에서는 에렉테우스가 태어났다.

아테네는 그를 신들 몰래 길렀고 불사의 존재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여신은 그를 상자 안에 넣어 케크롭스의 딸 판드로소스에게 맡기며 상자를 열어보지 말라고 일렀다. 그러나 판드로소스의 자매들이 호기심에 못 이겨 상자를 열자 뱀이 아이를 감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일설에 따르면 그 뱀에게 물려 죽었다고도 하고 아테네의 노여움으로 미쳐서 아크로폴리스에서 투신했다고도 한다.

에렉테우스는 아테네의 손에 양육된 후 암픽튀온을 축출하고 아테네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아크로폴리스에 아테네의 목조 신상을 세우고 판아테니이아 축제를 만들었다.

아버지인 케클롭스가 뱀과 인간이 합쳐진 몸이었다는데, 뱀이 아이를 좀 감고 있었다고 그 딸들은 왜 놀랐는지, 원.

그리스 신화에서 헤파이스토스는 절름발이에 외모가 흉하다고 딱 정해 놓았다. 똑같은 '신'인데, 헤파이스토스로서는 좀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술은 최고잖아,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것으로 모자라서(페이시스트라토스의 예를 보라지!) 신까지 외모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아테네와 헤파이스토스의 자식이 필요해 이런 신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이건 너무 하잖아! 헤파이스토스에게는 왜 이리 잔인한 것인지…….


아무튼 에렉테우스는 선정을 베푼 왕으로 알려져 있고, 그래서 아테네 시민들은 그를 기리는 신전을 짓기로 결정했다. 에렉테이온 신전의 깊숙한 곳에는 아테네 여신의 뱀이 있다는 전설도 있는 걸 보니, 에렉테우스를 키우던 상자 안의 뱀은 불멸의 존재인 모양이다.


에렉테이온도 파르테논도 가이드의 소개가 전부다. 내부를 봐도 남은 것이 거의 없다. 천정과 기둥에 부조가 남아 있다고는 하는데, 출입금지다. 하긴 지금 이 관광객을 그 안에 들였다가는 남은 것 하나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아크로폴리스는 그간 역사적으로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신화의 시대가 저물고, 종교의 시간이 찾아왔을 때에도 파르테논과 에렉테이온 신전 모두 그리스도 교회로 사용되면서 명맥을 유지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은 슬쩍 예수의 모친인 ‘마리아’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정교회 관사로도 사용되었다. 아마 그 시점쯤에는 아테네 여신상은 이미 모습을 감췄을 것이다. 여신상 앞에서 잠을 잘 수야 없었겠지. 이후로는 그림을 보관하는 창고로도 사용됐다고 한다. 좋은 그림들이었길 바란다.

1456년 투르크의 침공 이후, 신전은 다시 한번 모습을 바꾼다. 이번엔 이슬람 사원이 된 것이다. 첨탑도 달았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견딜 만했을 것이다. 신전의 입장에서는.


1698년 베네치아 공화국과 오스만 제국의 전쟁(‘모레아’ 전쟁) 당시 튀르키에인들은 이 신전에 화약을 잔뜩 가져다 놓았다. 화약 저장소로 사용한 것이다. 사실을 알게 된 베네치아 군대는 파르테논 신전에 포격을 퍼붓는다. 포탄이 지붕을 뚫고 쏟아졌으며 저장되어 있던 화약이 터지면서 신전의 절반이 날아갔다.


에렉테이온 신전도 기구한 운명을 비껴가지는 못했다. 오스만 지배 하에서 에렉테이온은 고급 관리의 하렘으로 사용된 적도 있다고 한다. 내가 신을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건 좀 신성 모독의 느낌이 있다.


이후 계속 언급되는 영국의 ‘엘긴경’이 신전의 쓸 만한 것들을 모조리 영국으로 싣고 간다. 이 행위는 잘한 일일까? 비난받아 마땅한 일일까? 왜냐하면 슬픈 일은 그 이후에도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스 독립전쟁(1821년에서 1829년까지 그리스가 오스만 튀르크에 대항하여 벌인 독립전쟁) 동안 아크로폴리스는 또 폭격당한다. 이번엔 에렉테이온의 많은 부분이 파괴된다.


아크로폴리스에 그리스 깃발이 펄럭인다. 아무렴, 그래야지.


“천천히 둘러보시면서 사진 찍으시고, 30분 후에 저 쪽에서 뵐게요.”


가이드가 이렇게 말한 후 천천히 멀어져 갔다. 그가 사라진 쪽으로 그리스 깃발이 펄럭인다. 오스만의 오랜 점령을 이겨내고 독립한 그리스는 2차 세계대전 중 다시 나치의 수중에 떨어진다. 하지만 그 악독한 나치도 아크로폴리스는 건드리지 않았다. 파르테논도, 에렉테이온 신전도 더 이상 다치지는 않았다. 나치는 그저 자신들의 깃발을 올렸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1941년 5월 30일. 두 명의 그리스 청년은 아크로폴리스 절벽을 기어올랐다. 그 나치 깃발을 끌어내리기 위해서였다. 그리스인들의 자유에 대한 투쟁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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