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오파고스를 내려와

12. 오~ 오~ 소크라테스

by 지안

아크로폴리스를 내려오는 일은 올라가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사람이 많아서 앞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달궈진 대리석 바닥에서는 열기가 피어올랐고, 햇빛은 정수리를 때릴 것처럼 쏟아졌다. 손에 든 물병이 바닥나 야속하고 슬픈 중에 가방은 조심해야 한다. 몹시 난처하다.


배치된 관리인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이따금 호루라기를 불었지만, 전반적으로 상황을 조정하지도, 조정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몇몇 약삭빠른 가이드들은 올라오는 사람이 적을 때를 노려 자신의 일행들을 길이 아닌 곳으로 빼 낸 후 사라졌다. 그럴 때마다 관리인들은 소리를 질렀지만, 다들 아는 처지인지라 빠른 그리스 말이 몇 마디 오가는 걸로 끝이 났다.


“저분들은 저렇게 길 아닌 곳으로 가지만, 우리는 질서를 지켜 내려가시죠.”


맨 앞에서 일행을 이끌던 가이드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의 가이드 버전 같았다. 네, 그럼요. 우린 품위 있는 관광객이니까요.

미셀 오바마가 말했다. "저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 연합뉴스 펌



“다음 갈 곳은 아레오파고스입니다. 신들의 재판소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멀지 않습니다.”


꽉 막혀 있던 인파를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위가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아레오파고스는 아크로폴리스 인근의 야트막한 언덕이었다. 지도를 펼칠 일도 없이 몇 걸음 따라 걷자 아레오파고스가 나왔다. 이 맛에 가이드 투어를 한다.


어설프게 보이는 돌계단을 오르자 제법 평평한 지역이 나왔다. 멀리 아테네 아고라가 굽어 보이는 장소였다.


“이 장소는 전쟁의 신 ‘아레스’가 재판을 받았던 장소라고 해서 ‘아레스의 언덕, 즉 아레오파고스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실제로 이 공간은 아테네의 최고 법정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처음으로 전도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즉 신화와 정치 그리고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품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까지 찾아오는 단체 관광객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테네의 아고라를 내려다볼 수 있는 멋진 곳입니다.”


가이드가 설명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근처에 ‘단체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없었다. 혼자, 혹은 둘, 셋 단위의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거나, 편하게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늘은 거의 없지만 바람이 불어 여유를 즐길 만했다.

아레오파고스에는 단체 관광객이 별로 없었다. 아, 내가 있었구나!

“저 쪽이 아테네 사람들이 거주하던 공간이고, 이쪽이 관공서들이 있던 곳입니다. 아크로폴리스 다녀오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여기서 잠깐 사진 찍으면서 쉬십시오.”


아테네의 아고라는 한눈에 들어올 만큼 작았다. 아테네는 거대한 국가는 아니었다. 노력하면 직접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그래도 ‘모두의 의견’을 모으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테네 아고라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시민들이 살았던 거주지 방향이다.



아폴로도로스는 아레오파고스에 관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전한다.


아그라울로스는 아레스와의 사이에 딸 알킵페를 낳았다. 포세이돈과 요정 에우뤼테의 아들 할리르로티오스가 알킵페를 겁탈하려다 아레스에게 붙잡혀 죽었다. 아레스는 포세이돈에게 고소되어 아레이오 파고스에서 열 두신들 앞에서 재판을 받고 풀려났다.


그리스 신화가 전체적으로 좀 막장이긴 하지만, 포세이돈과 아레스는 삼촌과 조카(아레스가 제우스 아들이니까) 사이다. 그 아들과 딸에게 있었던 일이니까, 친척끼리 ‘겁탈 어쩌고’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대단히 막장이다.


게다가 포세이돈의 아들은 현장에서 아레스에게 검거되었다. 아버지로서 눈이 뒤집힐 일이다. 재판정에 나온 신들은 아레스에게 ‘정당방위’였음을 인정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납득할 만 하다.




아테네가 처음부터 민주정을 도입했던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명문가나 땅 많고 돈 많은 지주와 같은 귀족들의 목소리가 컸다. 전쟁이 발생하거나 위기 상황이 닥치면 ‘왕’을 인정했지만, 평화가 찾아오면 귀족의 세상으로 바뀌었다.


전설에 의하면 코드로스 왕이 죽자 귀족들이 왕을 없앴다는 말도 있고, 테세우스가 왕권을 내놓았다는 설도 있지만, 하여튼 어느 순간에 왕 대신 ‘아르콘(집정관)’이라는 직을 도입한다. 기원전 8세기에 아르콘의 임기는 10년이었으나, 기원전 7세기가 되면 1년으로 축소된다. ‘왕’은 제사장 역할로 축소된 채 정치는 집정관에 의해 행해지게 된다. 이들은 솔론이 나타날 때까지 아테네 권력의 핵심이었다. 월 듀란트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귀족적 과두주의자, 즉 명문가 소수 지배층은 거의 5세기 동안 아테네를 지배했다. 이들의 통치 아래 정치적으로 국민은 세 계급으로 나뉘었다.

말을 보유한 히페스(hippes), 즉 기사 계급은 기병을, 한 쌍의 황소를 보유한 제우기타이(zeugitai), 즉 농민 계급은 중장비 보병을, 임금 노동자인 테테스(thetes), 즉 노동자 계급은 경장비 보병을 담당했다. 이 중 처음 두 계급만 시민으로 간주되었고, 그중에서도 기사 계급만 아르콘이나 판관,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 임기를 마친 아르콘은 물의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자동적으로 평생 불레(boule), 즉 원로원의 성원이 되었다.

이들은 아레오파고스, 즉 아레스의 언덕에서 시원한 저녁에 회동해 아르콘을 선출하고 국사를 의논했다. 군주정하에서도 이 아레오 파고스의 원로원은 왕권을 제한했고, 이제 과두정하에서는 로마의 원로원처럼 최고 권력 집단이 되었다.


그리스의 식민지가 개척되고 그에 따라 새 시장이 만들어지면서 전문인, 장인, 상인 계급이 급부상한다. 대신 약간의 토지를 경작하고 있던 농민 계급의 몰락이 가속화된다. 식민지의 값싼 수입품이 시장에 유통되자 농사를 지어도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가격이 형성된 것이다. 수많은 농민들이 토지를 정리하고 도시로 나와 상인이 되거나, 귀족들의 소작농으로 전락한다. 어느 시대 역사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이고, 지금도 유효한 줄거리다.


같은 책에서 월 듀란트는 이렇게 말한다.


아테네의 빈농 문제는 너무나 심각해져 전쟁이 축복으로 여겨지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커지고 있었지만 정치권에서는 심각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늘 그렇듯 말이다.


아테네 아고라의 관공서가 있던 방향.


기원전 621년 드라콘에 의해 아테네 최초의 성문법 ‘드라콘 법’이 제정된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내용의 법은 아니었다. 심하지 않은 사건에도 ‘사형’을 내릴 만큼 가혹하고, 잔인한 법이어서 ‘피로 쓰인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법에 의해 아레오파고스 원로원은 이제 모든 살인범의 재판에까지 관여하게 된다. 이 법은 채무자를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는 것에도 기여하지 못했고, 약자를 착취하는 일을 막아내지도 못했다. 그저 귀족이 정치를 좀 더 장악할 수 있게 만들었을 뿐이다.


이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똑같다면 사람답게 살다 죽자는 마음이 안 생길 수 없다. 아테네에 서서히 혁명의 기운이 싹튼다. 그 시기에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이 ‘솔론’이다.




“자, 이제 필로파포스 언덕으로 이동해 볼까요?”


가이드의 말에 사람들이 입구로 천천히 모여들었다. 벽을 짚어가며 계단을 내려오니 검은 석판이 보였다.


아레오 파고스 입구의 검은 석판. 바울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검은 것은 석판이고, 흰 것은 글씨라.......

“이 비문은 사도 바울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을 기록해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읽으실 수 있겠나요?”


가이드가 말했지만, 검은 것은 돌이고 흰 것은 글씨일 뿐 단 한 글자도 읽을 수 없다. 내가 뭐 그렇지......




사도 바울은 예수의 직계 제자는 아니다. 하지만 다마스쿠스 길 한가운데서 환한 빛 가운데 떠오른 예수를 만난 후, 가장 앞에 서서 전도하기 시작했다. 베냐민 지파에 속한 유대교 신자이자 유대인이었던 바울은 예수를 만나자마자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는데, 당연히 유대교 신자들로부터 박해를, 심지어 살해 위협까지 받게 된다.


다마스쿠스를 빠져나와 키프로스와 소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거쳐 그리스까지 오게 된 바울은 여기서 전도 활동을 펼치며 최초의 신약 성서를 써 나간다. 최초의 신약성서는 이렇게 그리스어로 쓰였다.




필로파포스 언덕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아레오파고스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아크로폴리스 전역을 관광지구처럼 정비하고 차량 통행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있어 걷기에 나쁘지 않은 길이 이어졌다. 도로를 벗어나 산길로 들어섰다. 필라파포스 언덕은 그냥 ‘언덕’은 아닌듯 했다. 아무래도 유사 ‘등반’을 해야 오를 수 있는 곳인 모양이다. 일행들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그것을 보던 가이드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여기서 잠깐 쉴까요? 이곳이 바로 소크라테스가 갇혀 있던 감옥입니다.”


불쑥 돌 사이로 구멍 세 개가 나오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벤치도 놓여 있다. 아, 이곳이 소크라테스의 감옥?


이 곳이 소크라테스 선생님의 감옥?

2002년 개봉한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에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이런 대사를 읊조리는 부분이 나온다. 자신의 딸과 결혼하겠다고 찾아온 미국 청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상대가 듣지 못하도록(그리고 딸은 제발 알아들으라고) 그리스어로 중얼거린다.


“우리 조상이 철학을 논할 때, 자네 조상은 나무를 타고 있었네.”


"나의 그리스식 웨딩" 아버지는 미국 청년이 싫다고 하셨어~

꼭 그 말이 맞다는 것은 아니지만, 기원전 470년경 태어났다는 소크라테스를 떠올리면 그리스인의 자긍심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된다.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 기록은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고, 우리보다 사정이 나은 중국도 춘추전국시대로 정신이 없던 때다. 딱히 철학을 논할 상황은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는 다 아시죠?”


가이드의 질문에 누군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다(나도 안다! 기아 타이거즈에도 ‘소크라테스’가 있다. 타이거즈~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워어어~ 소크라테스 훗). 가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훗~ 이 분도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브리토(Sócrates Orel Brito) 씨. 조선일보 펌


“맞습니다.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라고 전해지지만 사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입구에 적혀 있는 말이라고 하죠.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신탁을 받은 곳도 델포이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 화이트 헤드는 ‘서양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말했는데, 그 플라톤의 스승이 소크라테스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그 플라톤의 제자였고요.”


가이드가 가방에서 파일을 꺼낸다. 면으로 된 작은 가방은 온갖 정보의 창고인 모양이다. 정성스럽게 프린트 된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인다.


“이것이 소크라테스 동상입니다. 잘 생기진 않았죠?”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소크라테스는 석공이자 석조 공장을 운영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내에서 철학을 논할때 그의 아내가 운영했다는 말도 있구요. 그의 아내 크산티페는 악처로 이름이 높습니다만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둘 사이에는 아들이 셋이나 있었고, 심지어 소크라테스가 있는 감옥으로 아주 어린 애를 안고 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늦둥이 갖는 사이 나쁜 부부는 없잖아요?"

가이드의 말에 웃음소리가 조금 커졌다. 일행을 훑어본 후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역시 석공이었고, 어머니는 산파였다고 하죠.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산파술’이라고 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재미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여러 제자를 두었는데요, 결국 ‘청년들을 부패시키고 국가의 신을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소당해 감옥에 갇히고 결국 사형 당합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저곳이 소크라테스가 있던 감옥이라고 하는데, 사실 아무 근거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사람이 누구인지 혹시 아십니까?”


가이드가 파일을 넘기자 다른 조각상이 나타났다.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이 알키비아데스. 그래, 잘 생겼구나.....

“바로 알키비아데스입니다. 잘 생겼죠? 소크라테스가 부패시킨 청년으로 지목되었던 사람이 바로 이 알키비아데스입니다.”


오오, 감탄하는 소리가 난다. 역시 인간은 다른 사람을 외모로만 판단한다. 이래서야 세상 살기 너무 힘들다.


기왕 알키비아데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의 입을 통해 소크라테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플라톤의 [향연] 중에는 ‘알키비아데스’ 항목이 따로 있다. 그만큼 아테네의 셀럽이자 문제아이자 정치가였던 인물이 ‘알키비아데스’다. 알키비아데스와 데미스토클레스의 생애를 읽다 보면 ‘인간이란 무엇인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해 되돌아보게 된다.


하여튼 플라톤이 쓴 ‘알키비아데스’에는 그의 입을 빌려 말하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내 장담하건대, 이분은 조각가들의 작업장에 앉아 있는 실레노스들을 빼닮았네. 조각가들이 목적이나 피리를 들고 있도록 만들었는데, 열어보면 그 안에 작은 신상들이 들어 있는 실레노스들 말일세. 내 또 장담하건대, 이분은 사튀로스인 마르쉬아스도 닮았네. 소크라테스 선생님, 선생님 외모가 이들을 닮았다는 것은 선생님 자신도 부인하지 못하시겠지요…….


제일 왼쪽이 실레노스, 중간이 마르쉬아스, 그리고 오른쪽이 소크라테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제가 보기엔 닮은 것 같습니다만.


당시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와 연인 관계라 소문이 났었던 모양이다. 아테네에서는 흔했던 일이다. 나이 든 남자와 젊은 남자의 사랑. 문제는 알키비아데스의 가문과 인물이 너무 뛰어나서(특히 외모), 이 남자는 세상 남자 보기를 너무 우습게 알았다는 거다. 이런 일화도 있다.

어느 날 아니토스는 친구들을 집에 초대했다. 알키비아데스는 이 초대를 거절하고 자기 친구들과 집에서 술을 마신 다음 아니토스의 집으로 몰려갔다.

손님들이 있는 방에는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에 음식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알키비아데스는 하인들을 시켜 그 음식들을 반씩 덜어 자기 집으로 가져오라고 이르고, 자기는 방에 들어가지도 않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토스의 손님들은 그의 난폭한 태도를 보고 무척 화를 냈다. 그러나 아니토스는 그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화낼 것 없소. 다 가져갈 수 있는 데도 그는 반만 가져가지 않았소?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중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장소도 실은 ‘다른 남자의 술자리’ 다. 그는 술에 취한 채 남의 집에 쳐들어와서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하고, 욕도 먹지 않고 돌아갔다. 알키비아데스가 방문해준 것만 해도 황홀할 지경인 거다. 이런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가 앉아 있는 앞에서 좌중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이분을 만찬에 초대했지. 나는 마치 연인이고 이분은 내가 차지하려고 눈독을 들이는 연동인 것처럼 말일세. 이분은 내 초청에 선뜻 응하지 않더니 나중에서야 겨우 초청을 수락하셨네.
......

여보게들, 아무튼 등불이 꺼지고 노예들이 방에서 나가자 ...... 나는 일어나 이분에게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내 외투를 이분에게 덮어드리고 – 때는 겨울이었으니까 – 이분의 짧은 외투 밑으로 들어가 이 초인간적이고 놀라운 분을 두 팔로 껴안고는 밤새도록 누워 있었지.

.....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분은 나를 압도하며 내 청춘의 매력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모욕하셨다네. 바로 그 점에 관한 한 내가 대단할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신들과 여신들의 이름으로 맹세하건대, 내가 그날 밤 소크라테스 선생님과 함께 자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버지나 형과 잤을 때와 전혀 다를 것이 없었네.


이 정도 되면 거의 ‘고백’ 아닌가? 자, 그린 라이트 켜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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