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와 리쿠르고스

10. 스파르타식 학원은 싫어요

by 지안

별안간 신발 타령이다. 가이드가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어, 오늘은 나이키 신고 오신 분이 한 분도 안 계시네요?”


“여기 있어요.”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몇 발자국 떨어진 뒤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푸른색 나이키 로고가 들어간 베이지색 운동화를 신은 남자의 일행 같았다. 갑자기 자신에게 쏠린 시선이 머쓱했던지 카메라를 내리며 남자가 어색하게 웃었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나무 그늘에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아, 그렇네요. 일행 중 한 분이라도 꼭 나이키를 신은 분이 계셨었는데 이번엔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선생님은 거기서 계속 사진 찍으셔도 됩니다. 나머지 분들은 여기 앉아주세요. 좀 전에 지나온 ‘니케(Nikis)의 신전’, 그 ‘니케’에서 따온 것이 저기 선생님이 신고 계신 ‘나이키(Nike)’라는 신발 브랜드입니다.”




아크로폴리스에 들어와 극장과 음악당 같은 부속 건물을 지나고 나면, 길은 구부러지고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진다. 지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지며 주위를 돌아보게 된다. 돌바닥이 끝나고 이어지는 대리석 기둥과 바닥은 이전 세계와는 다른 차원의 어딘가로 향하는 느낌을 준다. 지금은 비록 부서져서 온전하게 남은 기둥도 별로 없지만 이 정도로도 그런 느낌을 주기 충분하다. 건물이 온전했을 과거에는 어땠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입구인 프로필라움을 지나면 먼저 파르테논 신전의 뒷부분이 먼저 눈에 들어 오지만, 뒤를 돌면 아담한 ‘니케의 신전’을 발견할 수 있다. 안쪽은 거의 부서진 잔해뿐이라, 바깥에서 보는 것이 거의 전부처럼 느껴진다.


1687년 당시 그리스를 점령 중이던 오스만 튀르크는 ‘니케의 신전’을 부수고, 그 돌로 성채를 쌓았다. 일부는 엘긴경의 손을 거쳐 영국으로 건너갔다. 1835년 다시 성채를 해체하고, 주의의 석재들을 끄러 모아 수습한 것이 지금의 모습인데, 예전의 내부 상태는 모형도 같은 걸 봐야 겨우 짐작할 수 있다. 하긴 이곳의 모든 신전의 상태가 다 비슷하긴 하지만......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니케의 신전이다.


나무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지나갔다. 해가 내리쬐는 공간과 비교하면 적어도 5도 이상은 기온 차이가 날 듯 했다.




“니케는 그리스 신화 상 ‘승리의 여신’입니다. 하지만 좀 전에 보신 ‘니케의 신전’은 그 승리의 여신을 기리는 신전은 아닙니다. 아테네 여신의 별명 중 하나가 ‘니케’입니다. 그러니까 니케의 신전도 결국 아테네 여신의 신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스파르타’라는 도시 국가를 아십니까?”


여기저기서 ‘스파르타’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속한 단체는 말하자면 연령대가 좀 높은 편인 것 같았다. 2006년 개봉한 영화 ‘300’, 그 안에서 가장 많이 들렸던 대사 ‘스파르타’를 아테네 한복판에서 소환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이드가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희 집은 일산에 있습니다. 저는 거기서 학교를 다녔는데, 고등학교 때 근처에 ‘스파르타 입시 학원’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제가 ‘스파르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그때입니다. 어느 날 엄마를 졸라서 그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점수를 많이 올려준다고 소문이 났거든요. 제가 한 달을 못 버텼습니다. 어우, 적응이 쉽지 않더라고요. 스파르타는 아테네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도시국가였습니다. ‘스파르타식’이라고 하면 다들 아시죠?”


그늘에 앉은 일행들 사이로 ‘킥킥’ 거리는 웃음이 지나갔다.


“니케의 신전은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의미로 짓기 시작했지만, 스파르타와의 전쟁, 그러니까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벌어지며 중단됩니다. 이후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염원하는 의미가 더해집니다. 니케의 신전은 결국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로 완성됩니다.”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남부 지역에 위치했다. 북쪽에 살던 도리아인들이 펠로폰네소스 지역으로 내려와 세운 도시국가다(헤로도토스는 도리아인들이 ‘이집트인’과 관련되어 있다고도 말합니다만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여기까지만!). 스파르타의 국민들은 세 계급으로 나누어졌는데, 당연히 도리아인들이 최상층인 1계급을 차지했다. 중간에는 ‘페리오이키’라는 2계급을 두었는데, 그들은 도시 외곽이나 산지에 자리한 마을에 사는 자유민으로 주로 제조업에 종사했다. 과세와 군역의 의무는 있었지만 정치에는 참여할 수 없었고, 1계급과의 결혼도 불가능했다.


붉은 선 안이 스파르타~!

그 아래에는 3계급인 헤일로타이가 있었다. 1계급들이 정복전쟁을 벌이며 노예화한 원주민이나 전쟁포로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1계급이 소유한 토지를 경작하는 일종의 ‘농노’였다. 토지와 묶여 매매되었으며, 수확량의 많은 부분을 국가에 바쳐야 했다. 군역은 없었지만, 1계급이 전쟁터에 나갈 때 동원되기도 했고, 전투 훈련에 사용되어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스파르타에는 헤일로타이를 감시하는 일종의 ‘특수 경찰’이 존재했는데, 감독, 감찰을 넘어 살해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들의 구성비였다. 1계급이 1이라면, 2계급은 4, 3계급은 8 정도의 비율로 구성이 된 사회였다. 즉 1명이 12명 정도를 지배해야 한다. 자연스럽지 않다. 잘 될 리가 없다. 덕분에 스파르타에서는 3계급, 혹은 2계급과 3계급이 연합하여 일으키는, 국가가 뒤집힐 만큼의 정변이 연이어 벌어졌다.


몇 년 동안 반란을 진압하지 못해 쩔쩔매기도 하고, 그것으로 모자라 아테네에 원군을 청하기도 한다. 이 무슨 동학혁명에 일본군 부르는 소리인가 싶기는 한데, 다행히 스파르타는 조선보다는 현명해서 아테네의 군대를 자국 영토에 들여놓지는 않았다. 아무튼 스파르타가 없어지는 순간까지 헤일로타이의 반란은 언제나 뇌관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인구의 자연감소가 있다. 1계급의 숫자는 전쟁이 거듭될수록 줄어든다. 이렇게 인구를 구성해서야 도저히 답이 없다.



아직도 눈에 선한 아크로폴리스

우리에게 가장 알려진 스파르타인이라면 당연히 ‘레오디나스 왕’(영화 300의 주인공 말이다)이겠지만, 플루타르코스는 가장 먼저 ‘리쿠르고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리쿠르고스는 기원전 8세기 사람으로 스파르타의 왕이자 처음으로 법을 만든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가 한 일을 알면, 스파르타의 사회구조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리쿠르고스는 스파르타의 왕 폴리덱테스의 동생이었다. 당시 스파르타는 혼란하고 무법 천지인 상황이었는데, 그런 가운데 형이 죽고 어린 조카가 왕위에 오른다. 왕위를 노린다고 모함을 받은 리쿠르고스는 고향을 떠나 크레테와 아시아, 이집트까지 넓은 세상을 돌아다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은 기원전 1750년경에 만들어졌다. 물론 그 이전 만들어진 ‘우르 법전’ 같은 것도 있으니, 함무라비보다 천 년 후에 태어난 리쿠르고스는 여러모로 참고할 것이 많았을 것이다.


세계를 둘러보고 스파르타로 돌아온 리쿠르고스는 개혁을 시작한다.




먼저 28명의 대표가 있는 원로원을 만들어 2명의 왕과 함께 중요한 의제나 법안을 결정하도록 했다. 원래 스파르타에도 30세가 된 남자 시민이 참여하는 ‘아펠라’라는 민회가 있었는데(물론 1계급에게만 해당되어서, 37만 정도의 인구 중 8000명 정도 참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민회는 원로원의 결정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만 있게 만들었다(이 권리마저 나중에는 없어진다). 아테네에 비한다면 말할 수 없이 허약한 형태의 민주주의다.


토지개혁과 화폐개혁을 실시했다.


리쿠르고스는 모든 금화와 은화의 유통을 중지시키고 오직 엽전만 쓰도록 칙령을 내렸다. 그런 다음 엽전을 엄청나게 무겁고 크게 만들면서도 가치는 떨어지게 함으로써, 10미나를 집에 두려면 커다란 창고가 필요했고 이를 옮기려면 한 쌍의 소가 끄는 수레가 필요할 정도였다.

-플루타크영웅전 중


신박한 방법이다. 화폐를 들고 다닐 수 없게 해서 아예 유통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다. 당연히 스파르타는 그리스의 상업 서클에서 튕겨져 나온다. 물건을 팔고 돈을 받을 수 없게 된 상인들이 스파르타를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식품과 수공예품을 만드는 장인들도 사라졌다. 대신 침대나 의자, 물 잔 같은 실용적인 물건들의 수준은 그리스에서 최고였다고 전해진다.


그다음 모든 시민이 공동 식당에 모여 식사하게 만들었다. 친족 개념을 없애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묶음으로써 ‘명문가’라든지, ‘씨족을 중심으로 모인다’는 개념 자체를 없애 버린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식당에 모여 같은 음식을 먹게 되었다. 주택의 크기나 형태도 제한했다. 이렇게 하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쓸 곳이 없어진다. 음식 가운데 최고로 친 것은 ‘검은 죽’이었다고 한다. 그리스에 관한 책 중 여러 곳에서 이 ‘검은 죽’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공통된 평가는 ‘대단히 맛이 없’ 다는 것이다.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의 왕 레오디나스 왕과 대화하던 페르시아의 밀사가 “남자들이 말하는 곳에 여자가 끼다니!”라고 말하며 왕비 고르고를 무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왕비도 지지않고 밀사에게 쏘아 붙인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분명히 외국인으로 보이는 어느 여성이 고르고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파르타의 여성들이야말로 남자들을 지배하는 유일한 여성입니다.”
그 말을 들은 고르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지요. 우리는 남자를 낳는 유일한 존재들이니까요.”


영화 300의 '고르고 왕비'. 실제로는 어떻게 생긴 분인지 알 수 없지만.......


스파르타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남자를 낳는 유일한 존재’로서 의미가 있었다. 이것은 남자들도 비슷해서 ‘독신남’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실제적인 불이익도 있었다. 결혼하여 자식을 낳지 않는 어른은 공공의 적이었다. 자신의 아내가 더 훌륭한 자식을 낳을 수 있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남편들은 그럴 기회가 찾아오면 흔쾌히 아내를 자신보다 나은 남자들에게 ‘빌려’ 주었다.


리쿠르고스는 자식을 그 아버지만의 소유로 보지 않고 나라의 재산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는 자식들이 아무에게서나 태어나기보다는 최상의 핏줄을 타고나도록 하려 했다…… 사람들은 개나 말을 교접시킬 때는 돈과 명성을 동원하여 훌륭한 씨를 받으려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내는 자물쇠로 채워 둔 채, 바보가 되건 약골이 되건 병자가 되건 자기 자식만 낳으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 플루타크영웅전 중




이렇게 결혼한 후 남자아이를 낳으면, 부족의 어른들이 살펴본 후 상태가 괜찮으면 키우도록 하고, 그렇지 않으면 타이게노스산 아래로 던져 버렸다. 여자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집에서 자랄 수는 있었지만 각종 경기나 무예로 몸을 단련해야 했다. 남자들이 모두 전쟁터에 나간 사이 헤일로타이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여자들이 그것을 진압했다는 기록도 있는 것을 보면, 어지간한 훈련은 소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1차 관문을 거친 아이들은 유모 손에 키워지게 되는데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만 먹이지 않았으며(도대체 스파르타에 ‘맛있는 것’이 있었는지가 의문이다. 어른도 ‘검은 죽’만 먹는 판에, 무슨……) 혼자 있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고, 짜증을 내거나 칭얼거리지 않도록 가르쳤다. 스파르타의 유모들은 전 그리스적으로 꽤 인기가 좋아서, 돈 많은 사람들은 그네들을 초빙해 가기도 했다. 아테네의 유명인 ‘알키비아데스’도 스파르타 유모 아래서 자랐다고 전해진다.


일곱 살이 되면 아이들은 집에서 나와 부대에 배치되어 훈련받고 공부하게 된다. 완벽한 집체교육이다. 옷은 일 년에 달랑 한 장을 보급받고, 먹을 것 없이 들판에 방치되어 타인의 것을 약탈하거나 사냥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굶주림을 극복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웃기는 건, 훔치는 것은 허용되었지만 발각되면 채찍형을 받았다는 점이다(뭐야, 이거!). 이 생활은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지고, 서른 살이 되기 전에는 시장조차 갈 수 없었다. 20세부터 60세까지의 모든 남자는 군에 복무해야 했고, 이들로 구성된 스파르타의 중무장 보병은 아테네 인들에게조차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영화 300에서 전쟁터로 떠나는 레오디나스 왕에게 고르고 왕비가 하는 말은 스파르타 모든 어머니와 아내들의 단골 대사였을 것이다.


“왕이시여, 꼭 돌아오세요. 시체가 되어서라도.”
여기서 말한다. 시체가 되어서라도 돌아오시라.....



민주주의의 혼란스러움에 지친 그리스 사상가들이 대부분 그랬듯, 플라톤 역시 자신의 이데아를 ‘스파르타’에서 찾았다. 사람들의 의견이 중구난방 펼쳐지고, 소란하고, 정신없는 ‘민주주의’, 일부 목소리 큰 정치가들에 의해 휘둘리는 멍청한 중우정치를 보며 치가 떨렸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존경하는 스승 소크라테스를 시민들이 내린 사형선고로 잃은 플라톤이었으니 이해는 한다. 하지만 스파르타가 답은 아니다.


규율과 힘, 육체적인 활력이 스파르타를 궤도에 오르게 했을지 모르지만, 그와 동시에 조각이나 건축, 문학 같은 예술은 자취를 감추었다. 스파르타는 완벽한 '병영국가'였다.


천하를 손에 넣었던 알렉산더도 육체적 훈련과 병법만 배워 성공한 것은 아니다. 알렉산더의 스승은 무려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이성의 고삐가 없는 군대는 뛰지 말아야 할 방향으로 달리게 되어 있다. 힘과 무력에 대한 맹목적 찬탄은 군국주의로 가는 지름길이다.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승리 후, 그리스 국가들 사이에서 2차 델로스 동맹이 결성되려는 움직임을 포착하자 페르시아 왕에게 붙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인다. 나 살자고 나라 팔아먹는 인간들과 다를 것이 없다.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한다. 그것도 제대로.



영원히 번영할 것 같던 스파르타는 리쿠르고스 사후 400년도 되지 않아(기원전 371년 스파르타와 테베의 레욱트라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빛을 잃는다. 1계급의 인구는 점점 줄어 한 명씩 셀 수 있는 정도까지 소멸한다. 아테네 사회의 폐쇄성도 문제가 있었지만, 스파르타는 그보다 훨씬 심했다. 문화적 다양성은 어쩔 수 없이 선택하고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이 두 나라를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파르테논 신전이 완성되기 전 다행히 스파르타가 속한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조약을 맺습니다. 전쟁이 끝나는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전쟁이 시작됩니다. 무려 27년이나 이어졌습니다.”


가이드의 이야기가 끊겼다.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커다란 파일을 꺼냈다. 우리에게 보여줄 적당한 사진을 찾고 있는 듯했다.




가이드가 말한 27년간의 전쟁으로 아테네 사람들은 지쳐간다. 아리스토파네스는 [뤼시스트라테]라는 희곡에서 그 이야기를 한다. ‘뤼시스트라테’는 ‘군대를 해산하는 여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줄거리는 이렇다.


이런 야외무대에서 [뤼시스트라테] 대사가 울려 퍼졌을거잖아..와...(한국일보 펌)


남자들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을 계속하자 여자들이 나서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아테네 여인들은 스파르타와 테베의 여인들을 불러 모은다. 아무리 전쟁터에서 마주칠 일 없는 여자들이지만, 그래도 적국의 사람들이 맞닥뜨렸으니 의견 조율이 쉽지는 않다. 그래도 어찌어찌 마음을 모아 ‘평화조약’을 체결하게 만들자는 것에 합의를 본다.


스파르타와 테베의 여인들이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간 뒤 아테네 여인들이 행동에 나선다. 파르테논 신전을 점거해 ‘델로스 동맹 기금’을 전쟁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기로 한다. 물론 그전에 먼저 할 일이 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신전 점거보다 먼저 행한,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첫 번째 조치, ‘성 파업’이다.


뤼시스트라테 : 모두 술잔을 잡고 나를 따라 해요. ‘애인이든 남편이든 남자는 어느 누구도……’
칼로니케 : ‘애인이든 남편이든 남자는 어는 누구도……’
뤼시스트라테 : ‘꼿꼿이 세우고 내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따라 해요!
칼로니케 : ‘꼿꼿이 세우고 내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맙소사! 난 무릎이 꺾일 것만 같아요, 뤼시스트라테!
뤼시스트라테 : ‘집에서 나는 숫처녀처럼 지내겠습니다.'
칼로니케 : ‘집에서 나는 숫처녀처럼 지내겠습니다.'
뤼시스트라테 : ‘내가 싫다는 대로 그이가 완력으로 강요한다면……’
칼로니케 : ‘내가 싫다는 대로 그이가 완력으로 강요한다면……’
뤼시스트라테 : ‘나는 재미없게 해 주고 움직이지도 않겠습니다. 나는 천장을 향해 다리도 들지 않겠습니다.”
칼로니케 : ‘나는 재미없게 해 주고 움직이지도 않겠습니다. 나는 천장을 향해 다리도 들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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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노을이 내려앉는 디오니소스 극장의 꽉 찬 관객 앞에서 이런 대사가 코러스와 함께 울려 퍼졌을 것을 상상한다. 대단했을 것이다.


이 연극의 끝? 물론 해피엔딩이다.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평화 협정을 맺고 같이 노래를 부르며 끝이 난다.




파일을 펼칠 준비를 마친 가이드가 물었다.


“여기서 잠깐 퀴즈를 내겠습니다. 맞추신 분들께는 ‘프라페’를 한잔 사드릴게요. 아테네 인들은 매년 이곳에서 ‘판아테나이아 축제’를 열었습니다. 아테네 북서쪽에서 출발해서 여기까지 퍼레이드를 벌였다고 하는데요, 뭔가를 아테네 여신에게 바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게 뭐였을까요?”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가이드의 입으로 향했다. 아테네 여신에게 바칠 것이 뭐가 있지? 뭘까? 답이 저 페이지 안에 있는 것 같은데, 도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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