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로폴리스에 가다

7. 흐린 아침에 감사하자

by 지안

오전 8시의 아크로폴리스 지하철 역은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신도림역과 비교한다면 작고 소박한 역이지만(전 세계적으로 신도림역보다 큰 역 찾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깨끗하고 밝았다. 밖으로 연결된 통로 옆에 누가 봐도 유물처럼 보이는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런 것이 지하철 역 안에도 흔하다니 놀랍군!

“해외로 약탈당한 그리스 유물을 되찾아 오는 활동에 대해 널리 알리기 위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즈음해서 설치되었습니다.”


튼튼해 보이는 운동화에 반팔 셔츠와 반바지, 햇빛 차단용 모자까지 착용한 완벽한 모습으로 약속시간보다 10분 먼저 나타난 현지 가이드가 설명해주었다.




해외로 약탈당한 문화재에 대해서라면 우리나라도 목에 핏대를 세울 정도는 된다. 임진왜란 같은 전쟁뿐 아니라 조선 후기 어지러운 시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우리 땅에서 사라진 문화재가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박물관에 전시가 됐다든지, 개인 소장품으로 모습을 드러낸 경우가 그렇다는 말이고, 알려지지 않은 숫자는 더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1993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조선왕실의궤’ 중 한 권을 들고 왔다. 그 책은 1866년 병인양요(같은 해 고종이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프랑스인 선교사 9명을 살해했다는 이유로 프랑스가 일으킨 전쟁이죠) 당시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중 일부였다.


당시 고속철을 수입하려는 한국이 다른 나라의 상품 대신 프랑스산 테제베(TGV)로 결정해준다면, 프랑스는 나머지 외규장각 도서뿐 아니라, 직지심경까지 모조리 반환할 수 있을 듯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기 위해서였다. 신문에는 그 문화재들을 당장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을 듯 희망에 부푼 기사로 가득 찼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직지심제요철(다른 이름, 직지심경!) - 나무위키 펌

문화재 때문이었는지 다른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한국이 테제베를 구입하기로 결정이 난 후 프랑스의 태도는 돌변했다. ‘반환' 대신 ‘대여’할 수 있다고 입장이 바뀐 것이다. 게다가 ‘조선의궤’는 ‘약탈품’이기 때문에 ‘대여’라도 고려할 수 있지만, 직지심경은 프랑스인이 ‘구매’ 한 것이기 때문에(조선말 프랑스 공사관이 저잣거리에서 구매했다고 합니다, 쩝), 불가하다는 입장을 당당하게 밝힌다. 당당한 태도로만 보자면 프랑스가 여태까지 이 문화재들을 애지중지해왔던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직지심경(원 제목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제요철’, 짧게는 '직지심제요철' )은 1972년 파리 국립도서관 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던 박병선 박사가 도서관 서고 보관서에 쌓인 중국 책 들 가운데에서 ‘찾아낸’ 것이다. 이후 박병선 박사는 학계의 도움 없이 혼자의 힘으로 연구해서 직지심경을 찍은 활자가 구텐베르크 활자보다 오래됐음을, 그러니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로 찍힌 책’ 임을 입증해냈다(그래서 박사님에게는 ‘직지 대모’라는 별명이 있다고 한다).


약탈된 외규장각 도서들을 찾아낸 것도 그녀였다. 병인양요 때 없어진 책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프랑스 내 해군 관련 도서관부터 있을 법한 모든 곳을 뒤진 끝에 1979년 자신이 근무하던 파리 국립 도서관 창고에서 찾아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온몸에 소름이 소슬 소슬 피어오른다.


고 박병선 박사 - 여성신문 펌

다음 해인 1980년, 박병선 박사는 ‘비밀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도서관에서 쫓겨난다. 그때는 제법 ‘비밀’의 축에는 낀 모양이다. 뭔지도 모르고 창고에 방치해 놨었으면서……흥! 이래 놓고 안 주는 것은 너무 하잖아요? 이제쯤은 반환해주면 안 되겠냐고요!!!


당한 입장인지라 입맛이 쓰긴 하지만, ‘모름지기 외교란 저렇게 냉혹한 것이다’를 눈앞에서 배웠다고나 할까. 자국의 이익 앞에서는 체면이고 뭐고 없는 것이 외교구나,라고 느꼈던 기억이 있다.




비슷한 일이 그리스에서도 벌어졌다. 영국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엘긴의 마블’을 반환받기 위해서였다. ‘엘긴의 마블’이란 오스만이 그리스를 지배하던 당시 영국 대사였던 엘긴 경이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 내어간 유물들을 말한다. 조각상부터 건축물 일부까지 다양해서, 전부를 전시하려면 박물관 하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엘긴의 마블 - 연합뉴스 펌


1962년 영국을 방문한 멜리나 메르쿠리(전 영화배우이자 1962년 당시 문화부 장관이던, 지금은 아크로폴리스 인근에 동상으로 남은 그녀)는 대영박물관에서 이 문화재들을 발견하고, 그리스로 반환하자는 운동을 시작한다. 정치권에서는 영국 정부에 정식으로 반환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영국은 ‘그리스가 ‘문화재를 보존할 수준’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줘도 가져도 놓을 곳이 없지 않느냐는 자존심에 상처 날 만한 이유였다.


‘그렇게 말한다면……’이라고 생각한 그리스 정부는 아크로폴리스 인근에 새로운 박물관을 짓기 시작한다. 예상보다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30년 정도……) 결국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2007년에 완성한 그리스가 반환을 요구하자, 이번에는 영국의 논조가 조금 바뀌었다. 물론 ‘줄 수 없다’는 입장은 같지만 ‘왜냐하면’이 바뀐 것이다.


이 양반도 엘긴의 마블 반환을 거부했다

2021년 영국의 보리스 총리는 이와 관련한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엘긴의 마블은 그리스의 재산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공동 재산’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응?). 게다가 그 기념물들은 엘긴 경이 정부로부터(물론 오스만 정부이지만) 허가를 받은 것이므로, 당연히 소유권은 영국에 있다고 주장했다(직지심경을 프랑스인이 ‘사간 것’이기 때문에 주지 않겠다는 말과 의미는 같다). 그리스 독립 200주년을 기념해 문화재 반환을 추진하던 그리스 입장에서는 화가 날 일이다. 영국이 EU를 탈퇴한 지금, 그리스는 EU의 힘까지 동원해서 ‘엘긴의 마블’을 돌려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결과를 두고 볼 일이다.




아테네 반나절 투어에 참여할 인원이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가이드가 아크로폴리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온 순간, 안개처럼 흩뿌리는 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날씨 정말 좋은데요?”


우산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가이드가 말했다. 그 정도로 가늘고 약한 비였다.


“비가 와서 바닥이 미끄럽긴 하겠지만, 해가 뜨지 않는 날이 훨씬 투어 하기가 좋습니다.”


결혼식 날에 비가 오면 ‘비 오는 날 결혼하면 잘 산대’ 같은 위로를 건네는 민족의 일원으로서, 가이드의 말이 '이것 참, 안됐군' 같은 마음을 애둘러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한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것은 4시간 후다. 작열하는 햇살 아래 잔뜩 달궈진 돌바닥 위에 서 있으면, 발아래에서부터 불이 붙는 느낌이 든다. 불판 위에 올라간 단백질 덩어리의 심정이 느껴진달까. 미래의 나는 그랬다. 아무튼.




아크로폴리스 입장권은 20유로. 인근의 다른 유적지와 함께 입장할 수 있는(예를 들어 제우스 신전이라든지 아테네 아고라 같은 곳) 입장권은 30유로로, 3일 안에 사용하면 된다. 아크로폴리스 문이 열리는 시간은 8시. 8시에 이 투어가 시작하는 이유는 문 여는 시간에 맞추기 위함이다. 하루 중 가장 관광객이 적고, 날씨가 괜찮은 시간이 이른 아침인 것이다. 게으른 관광객에게는 힘든 미션일 수도 있지만.


소매치기와 발 미끄러짐을 조심하라는 경고와 함께 투어가 시작되었다.


종합권 30유로!

‘아크로폴리스’란 특정 건물의 이름이 아니라,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을 지칭하는 말이다. 즉 입장료를 지불하고 내가 들어선 공간은 아테네의 가장 높은 곳으로써, 여러 개의 신전과 극장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놀이공원 같은 공간이라는 말이다. 물론 매우 오래된 유적지이다 보니, 여기저기 공사가 진행 중이고 들어갈 수 없다는 표시가 걸린 곳도 많았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디오니소스 극장’이다. 지붕 없는 반원형의 무대와 객석이 남아 있다. 한국에 있을 때 연극배우였다는 가이드는 뒤에 서 있는 사람에게도 똑똑히 들리는 맑은 발성으로 설명했다.


“그리스 극장의 무대는 기본적으로 원형입니다. 이 디오니소스 극장도 처음에는 원형이었습니다. 로마시대 때 개축하면서 지금 보시는 반원형의 극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수용인원은 만 오천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주일 축제 동안 매일 여러 번 연극이 상연되었으므로 거의 모든 아테네 시민들은 모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을 겁니다.”


배우가 무대로 등장하는 통로와 그들의 움직임, 코러스의 자리까지 눈에 보이는 듯 설명했다. ‘도르래’와 일종의 ‘기중기’도 사용되었단다. 아하, 그렇구나.

가이드의 말이 상상 속 배우로 바뀌어 반원의 돌바닥 위에 배치된다. 화려한 튜닉을 입고 샌들을 걸친 배우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화려한 아테나 여신이 날개를 휘날리며 하늘에서 무대까지 활강한다. 멋지다.


디오니소스 극장과 아테네 시내 전경

하지만 상상 속에서 깨어 나자. 돌로 된 객석이 눈에 들어 왔다. 흙에 파묻히거나 풀이 난 곳도 있어 일종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평평하게 늘어서 있는 관객석 중 몇자리는 돌로 된 등받이가 붙은 , 크고 제대로 된 ‘의자’처럼 보이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귀빈과 ‘코라고스(Choragus)’가 앉았던 좌석이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 소개와 함께 코라고스는 일어나서 시민들의 박수를 받는 영광을 누렸다. 코라고스란 그 연극을 책임진 일종의 후원자이자 스폰서를 의미한다.


아테네에서는 매년 일주일 정도 디오니소스 축제가 열렸고, 그때마다 연극이 공연됐다. 매일 몇 번씩 공연을 했다고 하니, 거의 모든 시민들이 연극을 관람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아테네는 철학가의 수만큼이나 극작가가 많은 나라였다. 플라톤도 원래는 극작가를 꿈꾸었으나 결국 철학가가 되었다고 했던가.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이나 ‘안티고네’ 같은, 지금까지도 무대에 올려지는 작품을 쓴 극작가이지만, 페리클레스와 함께 시민 대표로 뽑혀 정치를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안타깝게 다음 해에는 떨어지지만).

무너진 의자들 사이, 제대로 된 커다란 좌석이 보인다


축제 즈음하여 많은 극작가들의 작품이 접수된다. 그중 몇 편(비극 2편과 희극 1편이었다는 주장도 있고 5편이었다는 말도 있다. 못 봤으니 나는 모르겠다)을 골라 축제 기간 무대에 올린다. 가장 좋은 작품 1,2,3위가 선정된다.


글로 쓴 대본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배우도 구해야 하고, 의상도 장만해야 해야 한다. 실력있는 코러스는 기본이다. 즉 돈이 든다.


이 돈은 연극을 후원하는 부자들(1편당 1명의 코라고스가 배당되었다)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대본이 조금 부실해도 특수효과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두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있는 것처럼 당시에도 볼거리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1,2위가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인심 좋은 코라고스는 처음 시도되는 특수효과를 사용하기 위해 돈을 아낌없이 썼지만, 짠돌이 코라고스를 만나면 의상도 빌려 입어야 했다. 이래서는 배우도 기가 죽는다. 그리고 이런 사정들이 모두 소문이 되어 퍼져 나간다. '그 사람, 그렇게 안봤는데 아주 인색하다더군. 쯧쯧" 이런 평이 나서야 다음 번 선거에서 시민 대표가 되기는 틀린 일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1등이 된 작품은 시민들의 엄청난 찬사를 받았고, 덩달아 연극을 후원한 사람의 명망도 높아졌다. 배우도 존경의 대상이 됐다. 심지어 인기 있는 연기자는 군역도 면제되었다고 한다. 하긴 BTS의 군대 문제는 오늘날도 화두다(당신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아테네는 이런 방법을 통해 부자들이 재산의 일부라도 사회에 환원하도록 만들었다. 부자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후원’을 거부하면 더 큰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갤리선이다. 그리스는 페르시아를 무릎 꿇릴 정도의 해군력을 갖춘 나라였다. 그리고 그 해군의 주축선인 갤리선은 모두 부자들의 개인 돈으로 만들어졌다.


삼단 갤리선 1척을 띄우기 위해서는 일단 배를 만들어야 했고, 거기에 노를 저을 선원과 필요한 물품도 구비해야 했다. 이 모든 것(선원들의 임금을 포함해서)이 후원자가 부담할 몫이었다. 물론 그 갤리선의 선장이 되어 전쟁터 한가운데 서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진정한 의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할 만하다. 로마시대만 해도 전쟁에 나가지 않은 사람은 공직을 맡을 수 없었다. 과거에는 잘 지켜지던 규칙들이 왜 지금에는 사라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디오니소스. 위키피디아 펌


‘디오니소스’는 알려진 대로 “포도주”와 “연극”, “다산”과 “광기’의 신이다.


많은 제우스의 자식 중 한 명인데, 어머니는 세멜레라는 인간이다. 제우스 어지간히 세멜레에게 빠져 있었는지,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스틱스’에 걸고 맹세하게 된다.


눈 덮인 올림포스 산 정상에 살고 있는 신들 중 누군가가 이 물을 바치면서(스틱스에 걸고 맹세) 거짓 맹세를 하면 꼬박 일 년 동안 숨을 쉬지 못한 채, 암브로시아와 넥타르에도 손을 대지 못하고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침대를 펼쳐 놓고 누워 지내야 한다. 그러면 무거운 무력감이 그를 감싼다.

하지만 일 년 동안의 고통이 지난 후에는 더 힘든 고통이 그를 기다린다. 즉 그는 구 년 동안 불멸의 신들과 격리된 채 회의나 향연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그는 그렇게 꼬박 구 년을 보내고 십 년째 되는 해야 비로소 올림포스에 살고 잇는 신들의 무리로 다시 되돌아간다.

그런 맹세를 위해 신들은 바위 투성이인 절벽을 관통하여 흐르는 스틱스가 갖고 있는 불멸의 태고의 물을 만들었던 것이다.

– 신통기, 헤시오도스


제우스가 맹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헤라가 세멜레의 유모로 변신한 후 그녀에게 접근한다. 천상의 모습 그대로 자신에게 찾아오길 소원하라고 부추긴 것이다.


해맑은 세멜라는 제우스에게 소원을 말하고, 10년 동안 죽은 듯 살 수 없었던 제우스는 할 수 없이 수레를 타고 번개와 천둥을 던지며 그녀 앞에 나타난다. 세멜레는 벼락을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고, 제우스는 그녀가 잉태하고 있던 아이를 불 안에서 꺼내 자신의 넓적 다리에 넣어 키운다. 이렇게 달을 채워 낳은(혹은 꺼낸) 아이가 ‘디오니소스’이다.

루벤스 <세멜레의 죽음> 그녀가 벼락에 맞았다!

디오니소스가 성장하는 와중에도 위협은 계속된다. 제우스는 헤르메스에게 디오니소스를 맡긴다. 바빴던 헤르메스는 적당한 양부모를 골라 육아를 부탁한다. 양부모는 싫어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헤라는 기어이 그 양부모를 찾아내 미치게 만든다. 자신들의 친자식을 모두 죽이고 결국 자살하게 만든다. 디오니소스도 맨 정신으로는 이 꼴을 보며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성장한 디오니소스는 포도나무를 발견하고, 거기서 포도주를 추출하는 방법까지 만들어낸다. 하지만 곧 헤라의 저주로 미쳐 버린다. 미친 디오니소스는 세상을 떠돌며 그리스, 이탈리아 및 소아시아와 인도까지 직접 포도주를 전파했다는 말씀(신화란 늘 믿거나 말거나니까).


훗날 디오니소스는 하늘로 올라가 ‘신’이 된다. 인간의 몸에서 태어나서 유일하게 ‘올림푸스 12신’에 포함된 디오니소스 이야기다. 헤라가 나중에라도 디오니소스의 포도주를 마시고 화가 좀 풀렸기를 바란다.




이런 디오니소스는 어느 틈에 ‘연극’의 신이 되었을까? 그저 절름발이, 수공예의 신이었던 ‘헤파이토스’가 철기 보급 이후 ‘대장장이의 신’으로 새롭게 거듭났듯, 디오니소스도 기존의 ‘포도주 만들기’ 외에 다른 임무를 맡게 되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측한다. '포도주 만드는 기술'만으로는인간으로 태어나 올림푸스에 살게 된 유일한’ 신이 되기에 부족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무튼 디오니소스는 연극의 신으로 어느새 만들어져 그리스인의 정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디오니소스 극장을 뒤로하고 돌계단을 걷기 시작한다. 어느새 비는 그쳤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이 지역의 비는 공기 중에 습기조차 남겨놓지 못하는 듯하다. 끈적임 하나 없는, 걷기 상쾌한 날씨다.


조금 걷자 ‘아스클레피오스 성소’가 나타난다. 맞다.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잊지 말고 그분께 빚진 것을 꼭 갚도록 하게.”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고 플라톤은 그의 책 ‘파이돈’에서 말하고 있다. 그 아스클레피오스의 성소가 저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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