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신전으로 가는 길

8.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by 지안

아스클레피오스의 집 (The Sanctuary of Asklepios)은 넓은 의미의 ‘병원’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로,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스의 거의 모든 도시에 ‘아스클레피오스의 집’ 혹은 ‘아스클레피오스의 성소’라는 이름의 구역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이곳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떨어지거나 외곽지역에 만들어졌습니다. 대중탕 시설도 갖추고 있었고요. 신전을 찾는 사람들은 환자를 맡기면서, 혹은 질병을 낫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제물을 내놓습니다. 당시 질병 중 많은 부분은 전염병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단 사람들에게서 떨어지면 회복될 가능성이 높았겠죠. 물론 다른 사람들을 전염시킬 우려도 줄어들고요. 목욕을 하면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 우려도 줄어들겠죠. 물론 바쳐진 제물의 일부를 섭취할 수도 있었겠고요. 그리고 일단 쉬면 몸이 회복됩니다. 우리도 감기에 걸리면 일단 쉬라고 하지 않습니까?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면? 네, 큰 병이 아니면, 대부분은 회복됩니다. 당시 정확한 메커니즘은 몰랐겠지만, ‘아스클레피오스의 성소에 가면 낫는다’는 사람들의 믿음은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스클레피오스 성소. 남은 부분이 거의 없다. 상상력으로 나머지를 채워 보자.


가이드는 우리에게 ‘고대의 병원’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외과적인 수술도 특별한 약도 없던, 의사보다 예언자를 신뢰하던 시대. 그런 배경에서 인구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질병이 창궐하게 되었을 것이다.




기원전 430년, 권력의 정점에 있던 페리클레스를 무너트린 것도 전염병이었다. 당시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전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육군이 강력한 스파르타와 직접 맞붙기보다는 ‘청야 전술’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당시 아테네의 최고 사령관이던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인근의 주민들을 모두 성 안으로 불러들인다. 농장에서 올리브 나무와 포도를 키우던, 양 떼를 돌보던 농민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좁은 도시 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농장주와 그의 가족, 노예들이 모여들자 도시는 금방 사람으로 꽉 차 버렸다. 상하수도 시설도 훌륭하지 않던 시설, 급속한 인구 밀집은 전염병을 불러왔다. 전쟁이 아닌 전염병으로 아테네 인구의 1/4이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리클레스 역시 전염병으로 429년 사망한다.


먼 옛날이라 의학의 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전염병에 대응하는 소위 ‘역학’이란 학문을 만나기 위해서는 19세기 존 스노(John Snow)가 태어나길 기다려야 했다. 즉 전염병을 성공적으로 퇴치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그 성공도 상당히 부분적이어서 오늘도 Covid19으로 고통받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스클레피오스 동상. 위키백과 펌.

그렇다면 아스클레피오스는 누구일까? 누구이길래 그와 관계된 곳으로 환자들이 모여들었던 것일까?


아스클레피오스는 아폴론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아폴론은 태양의 신이자 음악과 시와 예술의 수호자였고, 치료의 신이며 델포이의 신전의 주인으로 예언의 신이기도 하다.


그런 아폴론이 인간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사료에 따라 상대는 ‘아르시노에’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고, 혹은 ‘코로니스’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여자의 아버지에게도 당당히 허락을 받고 함께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 흡족해진 아폴론은 흰 까마귀를 염탐꾼으로 붙여 놓은 후 올림포스 산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 여인은 다른 남자를 마음에 품고 있었고, 아폴론이 사라지자마자 그와 결혼해버린다. 까마귀는 지체 없이 아폴론에게 달려가 상황을 설명한다.


열받은 아폴론은 일단 까마귀에게 저주를 내린다. 상사에게 ‘일이 잘못되었음’을 보고하면, 일을 해결하기 이전에 ‘보고자’부터 깨지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 까마귀도 같은 일을 당한 것이지 싶다. 까마귀는 그 저주로 인해 까맣게 변해 지금껏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은 아폴론은 기어이 여자를 찾아가 죽여버린다. (올림포스 산에도 스토킹 처벌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녀의 시신이 장작더미 위에서 활활 타오를 때 아폴론은 그 안에서 자신의 아이를 꺼내 켄타우로스족인 케이론에게 데려간다.


아킬레스를 가르치는 케이톤, 조반니 바티스타 치프리아(Giovanni Battista Cipriani)

이 케이론이라는 반인 반마는 아킬레스에게 음악과 활쏘기를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니까 이 케이론은 올림포스 신들이 믿고 맡기는 ‘쓰앵님’이었던 모양이다. 케이론은 그 아이, 아스클레피오스를 양육해주고(그러니까 기숙사 학교 개념이었던 모양이다), 의술과 사냥의 기술도 가르쳐준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사가 된 후 기술을 연마하여 어떤 사람도 죽지 않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죽은 사람들도 일으켜 세우는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아테네에서 메두사의 혈관 속 피를 받아 왼쪽 혈관에서 나온 피는 사람을 죽이는데 쓰고, 오른쪽 혈관에서 흘러내린 피는 사람을 구하거나 죽은 사람을 살리는데 썼다고 한다.


이러다 모든 사람들이 불멸이 될 것을 두려워한 제우스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벼락을 쳐 죽여버린다. 아들의 죽음에 열받은 아폴론은 감히 제우스에게 덤비지는 못하고(쯧쯧~!), 제우스에게 벼락을 만들어 준 퀴클롭스들을 죽여 버린다(응?). 가만히 있으면 제우스가 아니다. 아들인 아폴론을 죽이기는 좀 그래서 지하 저 먼 타르타로스로 던져 버리려고 하지만, 아폴론의 엄마인 레토의 애원으로 마음을 돌린다. 대신 인간에게 1년 동안 종살이하는 것으로 대충 마무리 짓는다. 불쌍한 퀴클롭스, 불쌍한 까마귀……. 이 이야기의 교훈은 아마도 상사가 열받았을 때는 곁에 가지 말고, 더 센 상사가 있을 때는 괜히 불통이 튈 수도 있으니 더 멀리 도망가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왼쪽이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 오른쪽이 대한 의사협회의 로고. M자를 둘러싼 뱀이 보이시죠?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쳐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리스 사람들에게 ‘의학의 신’으로 추앙받는다. 그를 상징하는 것은 뱀으로 휘감긴 지팡이다. 현대에도 ‘의사’내지 ‘의학’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 혹은 그 속에 감긴 뱀을 사용한다.




뱀으로 휘감긴 지팡이가 어쩌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상징이 되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허물을 벗는 뱀의 속성상 ‘새롭게 태어남’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는 말도 있고, 미노스의 전설로 전해지는 다른 이야기도 있다.


미노스 왕과 파시파에의 자식 중에는 ‘글라우코스’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어린 시절 쥐를 쫓다가 꿀 독에 빠져 죽었다. 백방으로 아들을 찾다 실패한 미노스 왕은 아르고스의 예언자인 플뤼이도스가 아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신탁을 듣는다. 갑자기 불려 온 플뤼이도스는 처음엔 당황했지만, 어찌어찌 꿀 독에 빠져 있는 아들을 건져내 온다. 미노스 왕은 ‘살아있는 채로 돌려줘야 예언이지…….’라고 말한다.


"제가 아스클레피오스도 아닌데, 어찌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습니까?"


플뤼이도스는 이렇게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미노스 왕은 아들의 시신과 함께 그를 감옥에 가둬버린다. 의술로 살릴 수 없다면 기적이라도 만들라는 이야기다.


플뤼이도스가 매우 난감해하고 있을 때 뱀 한 마리가 시신을 향해 다가온다. 아들이 죽었다고 감옥에 가둔 것인데, 시신까지 훼손되면 무슨 짓을 당할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플뤼이도스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뱀을 죽여 버린다. 잠시 후 다른 뱀이 나타나 처음 뱀이 죽은 것을 확인한 후 사라졌다 약초 하나를 입에 물고 나타난다. 그리고 죽은 뱀 위에 문지르자 죽었던 뱀이 되살아난다. 놀라서 바라만 보고 있는 플뤼이도스 앞에서 두 뱀은 유유히 사라져 버린다. 플뤼이도스는 같은 약초를 글라우코스의 시신에 얹은 후 그를 되살려낸다.


자, 이제 아들도 살아 돌아온 미노스 왕은 플뤼이도스에게 큰 상을 내렸을 것 같지만……. 인간은 그리 선한 동물이 아니다. 미노스 왕은 폴뤼이도스의 예언술을 글라우코스에게 가르쳐주어야 하며, 그 전에는 절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못 박는다. 하나 있는 밥벌이 기술을 내놓으라니, 황망했지만 일단 살고 볼 일이었던 플뤼이도스는 글라우코스에게 자신의 기술을 전수한다.


모든 일이 끝난 후 흡족해진 미노스 왕은 마침내 플뤼이도스에게 고향으로 가도 좋다는 허락을 하게 된다. 스승이 먼 길을 가면 제자는 배웅하는 법. 배에 탄 플뤼이도스는 부두에서 손 흔드는 글라우코스에게 속삭인다.

“내 입에 침을 뱉어 봐.”


지저분한 부탁이긴 하지만 스승의 말인지라, 글라우코스는 성실히 명령을 따른다. 그리고 그렇게 하자마자 예언술을 잊어버린다.


일찌기 아폴론은 카산드라에게 예언할 수 있는 힘을 주고(예언할 수 있는 힘을 주면 '사귈 수 있다'고 카산드라가 말했기 때문에), 입맞춤 한번으로 '설득력'을 빼앗아 버린다(막상 능력을 받고 나서는 카산드라가 아폴론을 거부했기 때문에. 아폴론도 참 속이 좁다). 설득력 없는 예언은 그저 불길한 말일 뿐이다. 신은 입맞춤 한 번으로 가능했지만, 아무래도 플뤼이도스는 그보다는 직접적인 방법이 필요했나보다. 이 이야기는 남의 밥벌이를 쉽사리 뺏으려 들면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잊지말고 다른 사람에게 잘 하도록 하자.



니케의 신전 위로 맑은 하늘이 보였다. 언제 비가 왔나......


소크라테스는 왜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갚으라”라고 했던 것일까? 플라톤의 [파이돈]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에게 빚 청산 부탁을 받는 크리톤은 재산이 상당한 부자였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가 원한다면 필요한 사람을 전부 매수하고, 탈출하는 자금을 낼 수 있다고 한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소크라테스가 원한 것은 겨우 닭 한 마리였다. 이미 70대였던 소크라테스가 건강상의 이유로 아스클레피오스 성소를 찾고도 재물을 바치지 못한 채 감옥에 갇혔던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아직 어린 자식을 위해(70이 넘은 소크라트스의 감옥으로 크산티페는 아이를 안고 찾아온다. 크산티페가 악처니 뭐니 해도, 소크라테스 부부 사이는 몹시 좋았던 것일까?) 의술의 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유언에 대한 정확한 해석은 아직 나와 있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그는 무슨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돌길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비는 이미 그쳤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구름 한 점 없는 먼 하늘이 보이기도 한다. 멈춰 서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사이 우리를 스쳐 지나간 관광객의 숫자는 꽤 되어서, 이제 앞사람의 등을 보며 걸음을 옮겨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점점 움직임이 둔해지고, 길의 절반쯤 사람이 멈춰 선 곳이 있었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이다.


분지처럼 파진 지형에 넓은 극장이 자리 잡고 있다. 멀리 떨어진 곳에 필라파포스 언덕이 보일 뿐 소리가 막힐 법한 지형지물은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가 아닌 나 같은 사람의 눈에도 극장에서 나는 소리가 반향이나 막힘없이 또렷할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지금도 공연이 열리는 헤로데스 아트쿠스 음악당

이 극장은 반원의 무대가 자리한 로마식 건축 양식이다. 그리스계 로마의 정치인으로 집정관까지 지낸 헤로데스 아티쿠스(Herodes Atticus)가 AD161년에 기증했다고 한다. 보존상태가 상당히 좋아서 놀라웠는데, 다 파괴되었던 것을 1951년 보수작업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음악회가 열리는, 한국인으로서는 조수미 씨도 공연했던 극장이라고 한다. 시원한 여름밤 야외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여정이 너무 짧다.




잠시 숨을 돌리고 길로 들어서자, 조금 전과 비교할 수 없이 관광객이 늘어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마주 내려오는 사람에 주의를 함과 동시에 앞사람의 걸음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 일행과 함께 걷는 것은 사치다. 드디어 해가 고개를 내밀었다. 선글라스를 찾아 걸친다. 이곳에서 선글라스는 장식품이 아니다. 눈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기 전에 반드시 장착해야 할 필수품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전부 공사 중이라고 보면 된다.

줄은 한숨이 나올 정도로 서서히 움직였다. 중간중간 관리하는 분들이 매서운 눈초리로 관광객들을 감시한다. 석조 기둥 근처에만 가도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눈치껏 계단을 오르자 거대한 신전의 뒤태가 보였다. 공사 중이라 철골로 뒤덮인 모습이지만, 확실히다. 파르테논 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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