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판을 준, 흰머리가 듬성듬성 섞인 웨이터와 몇 번 눈이 마주쳤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을 받고 있는 동료를 가리키며, ‘기다려!’라는 몸짓을 해 보였다. 아하 그렇군, 역시 바디랭귀지가 최고다. 거의 만석인 레스토랑 안에서 네댓 명의 웨이터는 고개를 숙인 채 각자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 우리 차례가 아니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커플이 스파게티를 받아 그릇을 완전히 비울 때쯤 주문을 받는 웨이터가 다가왔다. 그가 반갑게 인사한 후 종이와 펜을 든 채 우리를 바라보았다. 피곤해 보였지만 표정은 밝다.
아테네 노동 인구 중 70퍼센트가 관광업에 종사한다던 가이드의 말이 떠올랐다. 기형적인 구조다. 평소에는 괜찮았을 것이다. 해가 뜨면 외국인들이 들어오고, 여러 나라 말이 들리고, 정신없지만, 경제는 굴러간다. 어쩌면 그 상황이 너무 피곤해서 ‘이제는 관광객 따위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COVID 19 이후 세계인의 이동이 뚝 끊기며 이들의 생계에 문제가 생겼다. 이전에 시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염병으로 인한 거리 두기와 봉쇄 중에도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관광업 대신 다른 산업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한때 세계 1위였던 ‘해운업’도 예전 같지 않다. 그리스는 한때 굉장히 암울한 시간을 보냈고, 이제 조금씩, 서서히 회복해가는 중이다.
“양고기 런치 세트 주세요.”
메뉴판 위에는 ‘그날의 런치세트’가 세 개 적혀 있었는데, 우리의 선택은 ‘양고기’였다.
“놉.”
웨이터는 단호하게 말한 후 그 위에 적혀 있는 돼지고기 세트를 먹으라고 말했다. 너희가 고른 것을 줄 수는 있지만, 오늘 양고기 상태가 좋지 않은 데다 시간도 엄청나게 걸릴 것이다, 그는 커다란 손짓과 평온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좋아요, 웨이터님.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다 해드리죠. 돼지고기를 먹으라면 먹지요. 대신 우리 요구도 좀 들어주세요.
“맥주 먼저. 빨리. 오케이?”
이 음식, 그리스 여행 중 먹은 음식으로는 최고였다!
순식간에 배달된 맥주로 인내심을 단련시키는 사이 접시들이 속속 도착했다. 바삭한 껍질 아래로 육즙이 가득한 돼지고기는 더위로 인해 잠시 모습을 감췄던 식욕까지 폭발시켰다. 말이 필요 없다.
“저건 뭘까? 무슨 유적지 같지 않니? 아테네나 로마 아고라 중 하나 아닐까?”
한참 정신없이 식사를 하던 일행이 흥건한 국물을 빵으로 찍어 먹으며 물었다. 좁은 도로 반대 편에는 액세서리나 작은 조각상 같은 것들을 파는 노점상이 줄지어 있었고, 그 뒤로 돌과 대리석이 들어있는 커다란 유적지가 보였다.
“돌 옆에 돌덩이. 사방이 돌무더기인데 뭐 특별한게 있겠나. 그냥 돌이야.”
일행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와 눈도 마주쳐 주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한낮의 해 아래로 다시 들어섰다. 선글라스는 최고의 무기다. 맨 눈을 떴다가는 눈알에 화상을 입을 것만 같다.
가이드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믿을 것은 스마트폰 밖에 없다는 것을 플라카 거리가 거의 끝날 무렵 깨달았다. 우리는 아테네 아고라와 로마 아고라를 본 후 숙소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우리의 남은 부분이 다 익어버리지 않는다면 그럴 생각이었다.
플라카 거리가 끝나고, 모나스티라키 벼룩시장의 표지를 봤을 때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왔다. 우리는 아테네 아고라를 이미 지나쳐 와 버린 것이다.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마침내 우리가 점심을 먹었던 레스토랑까지 되돌아온 후, 맞은편에 있던 유적지가 ‘아테네 아고라’였음을 확인하고 일행에게 사과했다. 그래, 나 때문이야. 당신이 물어볼 때 내가 좀 더 제정신으로 반응만 했어도……미안해, 흑흑..
아테네 아고라 입구에서 딱 만난 조각품
아테네 시민들의 생활공간이었을 ‘아테네 아고라’는 거대한 공원처럼 보였다. 입구는 ‘석공의 그리스’ 답게 부서진 대리석 조각들이 서 있고, 그늘을 드리운 나무 아래로는 벤치들도 놓여 있어 괜찮아 보였지만, 딱 절반만 그랬다. 나머지 절반은 역시 뙤약볕이다.
왼쪽에 아크로폴리스, 정면에 프닉스 언덕이 보인다
가까이 아크로폴리스와 프닉스 언덕이 보인다. 오르막길이라 썩 내키지는 않지만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갈 수 있을 거리다. 각종 관공서와 시장, 상가와 체육관들이 있었다는 아고라는 지금의 시각에서는 돌무더기이고, 돌덩이일 뿐이었다. 설명을 읽지 않으면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다.
그나마 보존이 잘 된 것이 아고라 북쪽에 있는 헤파이스토스 신전이다. 잠깐 계단을 올라야 신전을 만날 수 있다.
헤파이스토스 신전
헤파이스토스는 ‘헤라’가 혼자 낳은 아들이다. 헤파이스토스는 다리를 절었는데, 그 이유가 안타깝다. 헤라가 아이를 만들고 보니 외모가 너무 추해서 올림포스 산에서 던져 버렸기 때문에 그랬다는 설과 클 때까지는 멀쩡했는데 제우스와 헤라가 싸우는 것을 말리다 제우스가 던져 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설이 있다. 이것도 저것도 슬프다.
아무튼 던져진 헤파이스토스는 9일 동안 추락해서 램노스 섬에 떨어진다. 그리고 이 아이를 거둬 상처를 치료하고 돌봐 준 신이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였다. 헤파이스토스가 훗날 아킬레우스의 방패와 갑옷 등 각종 무기를 공급한 것은 이때의 보답이었다.
청동기 시대의 헤파이스토스는 이런 이미지 아니었을까?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그 난롯불처럼!
청동기 시대의 헤파이스토스의 이미지는 금속과 수공예, 기껏해야 청동 무기와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귀족 계급(아킬레우스도 따지고 보면 왕족이다)은 그를 좋아했겠지만, 시민들을 사로잡을 매력은 부족하다. 외모가 떨어지고, 심지어 다리까지 불편한 신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어차피 나와 별로 상관없는 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기 보급 이후 그의 이미지는 크게 변한다. 시민들의 삶과 직결된 제품들이 쏟아지자 헤파이스토스의 위상도 덩달아 올라간다. 그리스인들은 화산 아래 그의 대장간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마침내 헤파이스토스의 신전도 생긴다.
해파이스토스 신전은 보존 상태가 좋다. 작아서 그런가......
헤파이토스의 신전은 만만하다. 일을 마친 시민들이 ‘심심한데 한번 올라가 볼까?’라고 생각하고 찾을 수 있을 만큼 단아하고 아담하다(아테네 여신의 신전과 비교가 안된다). 위엄과 근엄으로 점철된 신전이 아니라, 시내에서 가깝고 그냥 찾기에도 어렵지 않은 친근한 장소다. 얼마나 시민들이 헤파이스토스라는 신을 가깝게 느꼈는지 알 수 있다.
신전을 내려와 다시 아고라를 걷는다. 표지판을 눈여겨봐야 하지만, 그리스어와 영어뿐이라 한눈에 내용이 들어오지도 않는다. 당시의 배수로를 복원해 놓은 것과 소크라테스의 감옥이 있던 자리 표시도 있다. 아하, 그리스 인들도 필로파포스 언덕 아래 감옥이 가짜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설명서를 읽고 봐도 관공서 터로는 안 보이지 않습니까? 네, 저만 그렇군요.
프닉스 언덕이 바라보이는 길에 무척 튀는 동상이 서 있었다. 중세 시대극에 나온 크롭티를 입은 등장인물처럼 생뚱맞다.
“소크라테스 선생님을 나타내고 싶었던 걸까?”
굳이 다가갈 마음이 들지 않는 눈에 띄는 ‘인형’이다. 내 물음에 일행이 대답했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야. 저건 누구지? 와이프인가?”
느린 걸음으로 다가가자 ‘공자’와 마주하고 서 있는 ‘소크라테스 인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중국에서 기증한 동상이라는 설명판이 붙어 있다. 우뚝 걸음을 멈춘 내가 말했다.
“흠, 중국의 굴기를 그리스에서 만나고 싶지는 않군.”
“사진 안 찍어?”
“저것도 저것이지만 더워서 이제 아무것도 못 찍겠어. 오늘 사진 끝.”
나는 고개를 젓고 걷던 방향을 바꿨다. 기온이 최고조에 다다른 낮 3시. 아고라에 관광객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싶었는데, 그 사람들은 전부 ‘고대 아고라 박물관’ 앞에 있었다. 건물 밖 지붕 아래 회랑에는 나처럼 지친 여행자들이 바닥에 주저앉아있다. 돌바닥이라 소파보다 시원하고 반갑다. 이런 날씨라면 굳이 소장품을 보고 싶지 않더라도 박물관에 들어가야 한다. 분명 바깥보다 시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테네 아고라 박물관. 금강일보 펌. 진짜 더워서 사진 찍을 정신이 사라졌어요.
전시품은 생각처럼 소박했다. 작은 공예품(아마도 복제품일 것이 분명한), ‘도편 추방’ 때 사용되었다는 도기 파펀들이 있다. 하지만 좁은 데다 우리처럼 더위를 피해 도망쳐 들어온 관광객으로 내부가 번잡하다.
카이사르가 낸 돈으로 만들었다는 로마 아고라 입구 문. 대부분의 관광객이 여기서 돌아가더라.
‘마지막이다’를 외치며 ‘로마 아고라’를 찾았다. 로마 아고라 앞에는 카이사르가 아테네 여신에게 헌정했다는 ‘로마식 문’이 버티고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 문 앞에서 돌아간다. 밖에서 보이는 공간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로마 초기 아테네 아고라가 여러 이유로 축소되면서 그곳에 있던 상업 시설을 옮겨와 만든 것이 이곳이라고 한다. 아테네 아고라에 비하면 많은 것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이해하기 쉽지는 않다.
로마 아고라. 아테네 아고라보다는 남은 것이 많지만, 어떤 흔적인지 모르는 건 마찬가지.
시간은 오후 4시. 더 이상 뭔가를 할 기운은 남아있지 않다. 몸의 9/10은 익은 것 같다. 전투에 패배한 보병들처럼 우리는 일단 숙소로 철수하기로 했다.
로마 아고라 내 해시계, 물시계, 풍향계로 활용되었던 구조물. 이건 잘 남아았다.
7시가 됐지만 밖은 낮처럼 환했다. 제대로 된 슈퍼에서 뭔가를 사보자며 길을 나섰는데, 아뿔싸. 슈퍼마켓은 6시에 닫는다고 쓰여 있다. 열린 것은 레스토랑과 술집, 일요일에도 문 열었던 작은 상점뿐이다. 생수와 맥주를 산 후 근처 치킨집으로 향했다. 가게 앞 테이블에는 치킨과 맥주를 놓고 이야기하고 있는 중년 남녀가 앉아 있었다.
문을 열자 세 명의 남자가 일하는 오픈 주방이 보였다. 흰 가운을 입은 남자는 기름이 쏙 빠진 전기구이 통닭을 만지고 있고, 검은 앞치마를 한 남자는 튀김기 앞에 서 있다. 입으로는 손님과 이야기하며 손으로는 포장하고 있던 붉은 티셔츠의 남자가 우리를 바라봤다.
“응?”
“1번 두 개랑 4번 1개 포장해줘.”
남자는 포장하고 있던 치킨을 손님에게 건네주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몹시 고민하는 얼굴이 되더니 카운터 밖으로 고개를 빼고, 우리가 바라보고 있던 사진판을 노려보고 ‘아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사진을 보고 음식을 고르는 사람은 우리뿐인가 보다.
그리스에도 치킨배달은 있더라
남자는 그리스 말로 주문을 반복한 후 우리를 보고 웃었다. 우리는? 그냥 웃었다. 흰 가운을 입은 직원이 이쪽을 향해 뭔가를 말했지만, 붉은 티셔츠의 직원은 대답 대신 남자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흰 가운의 직원은 뭐라고 중얼거린 후 직접 전기구이 통닭을 들고 카운터로 와서 포장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치킨집 포장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붉은 티셔츠의 직원이 천천히 우리의 주문을 영어로 반복했다. 맞아, 그거야. 그는 포스기의 금액을 손으로 가리킨 후 웃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사랑에 빠졌겠다 싶을 만큼 친절한 웃음이다. 붉은 티셔츠의 직원은 덥지만 조금만 참아, 대충 이런 의미의 말(나는 그렇게 알아 들었다. 아, 물론 그리스말이었다)을 한 후 주방쪽으로 향했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사이(한 20분쯤?) 세 명의 오토바이 배달원이 들어와 포장된 음식을 받아갔다. 어디선가 포장 주문을 요청하는 콜이 계속 울렸고, 미처 배달원을 만나지 못한 치킨 상자가 쌓여갔다. 그리스에도 배달이 대세인 모양이다.
“깔리 오렉시(맛있게 먹어)”
붉은 티셔츠의 남자가 종이 봉투를 건네주며 말했다.
치킨을 받아 들고 숙소로 걸어가는 내내 배달 라이더들이 옆으로 지나갔다. COVID 19은 우리의 생활을 얼마나 변화시킨 것일까? 우리는 언제쯤 그 모든 것을 한눈에 이해하게 될까?
다음날 델피와 메테오라를 둘러보는 1박 2일 투어를 위해 집을 나섰다.
델피는 고대 그리스의 ‘신경정신과’ 같은 곳이다. 파르나노스 산자락에 자리 잡은 ‘델피 신전’은 그리스 여러 도시국가가 묻는 질문에 ‘이상하고 난해하고 아리송한’ 답을 내놓는 곳으로 유명했다. 아폴로도스는 델피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아폴론은 제우스와 휘브리스의 아들 판에게서 예언술을 배운 뒤 델포이로 갔다. 당시 그곳에서는 테미스가 신탁을 내리고 있었다. 신탁소를 지키고 있던 퓌톤(Python)이라는 뱀이 잘라진 틈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자 아폴론은 뱀을 죽이고 신탁소를 차지했다.
델피 신전은 산 중간에 있습니다
즉 델피가 모시는 신은 ‘아폴론’이다. 델피는 워낙 유명해서 그리스 인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인이나 로마 인들도 신탁을 구했다. 하지만 ‘델피 신전’ 자체는 자신의 운명에 무심했는지, 화재와 지진 등으로 인해 몇 번이고 망가졌다 복구되기를 반복한다.
도시 국가 중에는 스파르타가 ‘델피의 신탁’을 맹신했다. 페이시스트라토스 사후, 쫓겨났던 알크마이온 가문은 스파르타의 환심을 사기 위해 화재로 소실되었던 신전을 복구했다는 기록이 있다. 비슷한 일이 기원전 514년 클레이스테네스 시대에도 일어났다. 그리스 도시국가의 흥망성쇠와 함께 숨 쉬던 델피 신전은 기원후 AD 4세기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폐쇄된다.
투어를 위해 가이드를 만날 장소는 멜리나 메르쿠리 조각상 앞이다. 아크로폴리스 지하철 역과 매우 가깝다. 어쩐지 하루 만에 아테네에 대한 친근감이 부쩍 늘었다. 버스 운전석 위 안내판 글자의 모양에 집중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1박 2일의 여정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