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닉스 언덕에 오르자

15. 솔론을 기억하며

by 지안

프닉스 언덕은 코 앞이었다. 그곳에서도 아크로폴리스가 손에 잡힐 듯 보였다. 돌로 된 계단과 역시 돌로 된 넓은, 구릉 같은 공간이 펼쳐져 있다. 평평하고 널찍한 공간이라 많은 사람이 모였던 장소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먼저 ‘상상’해보라고 말한 뒤, 설명을 이어갔다.


“이곳은 그리스 시민들의 민회가 열렸던 장소입니다. 자유민 성인 남성만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만 그때는 그런 때였으니까요. 이곳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상상해보십시오. 이곳에서 페리클레스 같은 사람들이 연설하면, 자유민 들은 그것을 듣고 그 정책을 받아들일지 거부할 것인지 결정했습니다. 이곳에 참석하면 일정한 수수료도 받았다고 합니다. 사실 지금으로 말하면 ‘반차’ 같은 것을 써야 참석할 수 있잖아요? 가난해서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은 올 수가 없죠. 그래서 이곳에 참석해도 끼니는 거르지 않도록 ‘약간의 돈’을 지불했다는 겁니다. 저기 아고라에서 보면 이곳에 바로 보입니다. 저녁때라면 횃불 같은 것을 환하게 켜 놨겠죠? 아고라에 있던 사람들도 ‘앗, 오늘 민회가 있구나’하고 뛰어올라올 수 있었던 겁니다. 물론 돈만 받고 싶어 하는 약삭빠른 사람도 있었겠죠? 그래서 저 뒤쪽으로 칠을 한 선을 묶어 두었다고 합니다. 늦게 오면 자연히 뒤에 설 수밖에 없으니까 옷에 색이 묻겠죠? 그 사람들은 돈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늦게 왔으니, 연설도 듣지 못했을 테고, 그럼 소용이 없잖아요?”


‘아하’ 일행 중 누군가 박수를 쳤다. 좋은 의미로 만든 제도라고 해도 누군가 악용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생긴다. 그렇다고 그 제도를 없애야 할까? 우리 선조들은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라는 멋진 속담으로 그런 마음을 다독였다. 악용하려는 사람을 잡아내며 제도를 운영하는 묘미를 살려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해도 악용하려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틈을 뚫겠지만.


위에서 연설하면 민회 참석자들은 이야기를 경청했을 것이다.


기원전 7세기가 지날 때쯤 아테네의 상황은 침울했다. 귀족 정치의 폐해가 심해지고 있었고, 대토지를 소유한 부자들이 나타나면서 시민층들이 몰락하고 있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플루타르코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각 지역마다 파벌이 만들어져 산간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민주 정치를, 평지에서는 과두 정치를, 해안에 사는 사람들은 혼합 정치를 주장하면서 제각기 세력을 다투게 되었다.

게다가 빈부의 차이가 너무 심해져서 아테네는 아주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자들에게 진 빚 때문에 경작한 수확물의 6분의 1을 바치고 있었고, 자기 몸을 저당 잡힌 사람들은 노예가 되거나 팔려가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도망을 가거나 자식을 파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소크라테스 사후(기원전 399년에 돌아가심)에 펼쳐졌던 상황이 이미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빈부 격차는 심해지고, 먹고 살기는 힘들어졌다. 외국으로 사람이 유출된다면 곧바로 국방력의 손실로 나타난다. 뭔가 방법을 찾지 않으면 이 사회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한다. 이 시기가 아테네 말의 상황과 다른 점은 페르시아나 마케도니아 같은 위험한 적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솔론’의 등장이다.




솔론의 집안은 아테네의 귀족 혈통이었으나 부유하게 성장하지는 못했다. 그의 아버지가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재산을 나눠 줘서 집 형편이 점점 궁해졌다고 한다. 이런 아버지를 둔 아이들은 대개 두 가지 중 하나의 모습으로 어른이 된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어!’와 ‘아버지처럼 살아야지.’ 이렇게.


솔론은 후자였던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살고 싶어도, 아버지가 재산을 다 까먹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장사를 시작한다. 꽤 돈을 번다. 능력자였나 보다. 아버지처럼 살 수 있게 되자 정말 그렇게 한다. 그의 명성이 높아간다.


부자들은 솔론의 부유함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그의 정의감 때문에 다 같이 자기들의 편이라고 믿고 있었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기원전 594년. 그가 44세 혹은 45세 되던 해에 중산층 대표들이 표결로 그를 ‘에포니모스 아르콘’으로 선택한다. 명목상으로는 아르콘 즉 집정관 중 하나였지만, 실은 솔론에게 독재권력을 준 것이다. 부자들은 이 결정을 마지못해 찬성한다. 자기편이기도 한데 뭐 크게 나쁠 것이 있겠나 싶었을 것이다.

이 분이 솔론이다. 위키 펌

솔론이 먼저 실시한 것은 경제개혁이었다. 솔론은 먼저 ‘세이사크테이아(Seisachtheia) – 무거운 짐 내려놓기’라는 정책을 시행한다. ‘개인에 대해서든 국가에 대해서든 모든 채무를 말소’시키는 방법이었다. 솔론은 아테네 시민들이 지고 있던 모든 저당권을 한 번에 말소시켰다. 채무로 인해 노예가 되었던 사람을 구제하고, 돈 때문에 노예로 팔려 해외로 나간 사람들을 데려왔다. 이후 채무로 인한 노예화는 금지되었다. 상당한 부자이자 채권자였던 솔론 자신도 엄청난 손해를 보았지만, 아무튼 그는 이 정책을 도입했다.


그 다음, 시민들의 재산을 조사하여 계급을 새로 부여했다.


1년에 500되의 수입이 있는 자를 펜타코시메딤니라 하여 제1계급에 두었으며, 말 한 필을 가지고 있거나 300되의 수확이 있는 자를 히파다텔룬테스라고 하여 제2계급으로 했으며, 200되를 거두는 자인 제우기타이는 제3계급으로 두었다. 그리고 그 밖의 평범한 자들은 테테스라 하여 관직에 오를 수는 없으나 공동 집회에 출석하고 배심원의 자격을 가지게 했다.

– 플루코르타스 영웅전 중


돈으로 계급을 정한다니 마음에 들지 않지만, ‘태어나보니 귀족이었다’보다는 조금 진전된 형태인 것은 맞다. 역사는 이렇게 아주 조금씩 변화한다. 납득 가는 점은 1계급은 1년에 12번, 2계급은 10번, 3계급은 5번 과세를 했다는 것이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 권한도 누릴 수 없다. ‘부자 감세’를 논하는 요즘의 풍조를 비교해 보면 거울로 삼을 만하다.


이렇게 해 놓으니 자연스럽게 군대 제도도 변화했다. 1계급만 군 지휘관의 자격이 주어졌다. 2 계급은 기병, 3계급은 중장비 보병에 종사할 수 있었고, 나머지 4 계급은 일반 병으로 근무했다 군 지휘관은 군대 동원 시에 필요한 돈을 내야 한다. 당연히 돈이 많이 든다. 1계급만 감당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인정!




솔론은 ‘드라콘 법’도 손을 봤다. 살인죄를 제외한 나머지 가혹한 법들은 모두 폐지했다. 예를 들어, 드라콘 법에 의하면 ‘게으름’도 사형의 대상이었다. 드라콘 법이 적용되는 아테네에 살고 있었다면, 나 같은 사람도 사형을 피할 방법이 없다(응, 나도. 야, 너도? 추르르…ㅠ.ㅠ). 아무튼 그런 무서운 법은 사라졌다. 모든 분쟁도 아레오파고스 대신 ‘시민 법정’에서 처리하도록 했다. 시민 법정은 6000명의 재심원이 재판을 심리하는 제도였는데, 말하자면 1계급의 1표와 4계급의 1표는 원칙상 동일했다.


대신 집정관 출신과 부족에서 뽑은 100명의 사람을 더 해 아레오파고스 회의를 강화했다. 이 회의를 거치지 못하면 민회에 상정할 수 없다. 이것은 혹시 모를 민회의 세력화를 견제하기 위한 보조 장치였다.

프닉스 언덕, 멀리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그리고 그때까지 아레오파고스를 거쳐 임명하던 아르콘을 ‘민회’를 거쳐 선출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민회는 언제든 이들을 심의하고 탄핵하며 처벌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을 뽑아놓은 후 심의, 탄핵, 처벌하는 법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 제도, 우리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이 ‘프닉스 언덕’에 사람들이 모여 ‘민회’를 열게 한 인물이 솔론이다. 시민 계층이 두터워지자 사회는 저절로 안정을 찾았다. 군대의 질도 좋아졌다. 솔론은 이 법을 100년 동안 시행하라고 명령했다. 관리들은 그의 명령을 지키기로 맹세했으며, 이를 어길 때에는 자신의 몸 크기만 한 황금을 델포이 신전에 바치겠노라 선언했다(오호!). 솔론은 평생 절대 권력자로 도시를 다스려 달라는 요청도 받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왕’으로 추대된 것이다. 그는 “매우 매력적인 자리이긴 하지만 거기서 내려올 길이 없다”는 말로 거절한다.


이제 솔론은 통 크게 ‘10년 휴가’를 떠난다. 그는 이집트와 키프로스, 아시아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법안을 지지하는 솔론, 노엘 쿠아펠 Noël Coypel, 위키 펌


하지만 그가 떠나고 나자 아테네는 다시 부글거리기 시작한다. 솔론에 의해 권력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부자나 지주를 중심으로 한 ‘평야파’, 솔론의 개혁 정도로는 미흡하다고 생각하는 농민, 노동자 연합의 ‘산악파’, 이 정도면 살 만해진 것이 아니냐는 상인,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해안파’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왜 역사는 언제나 반복되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지금 우리의 상황처럼 아테네도 그랬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그 자신은 귀족 출신이면서도 ‘산악파’를 지지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들의 숫자가 많았던 것이다.


휴가를 마친 솔론이 돌아온다. 이제 제법 나이 든 늙은 현자는 정치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정계의 원로 자격으로만 살게 된다. 어느 날 페이시스트라토스는 민회에 나타나 습격을 당해 부상당했다며, 자신을 경호할 50인의 경호원 대동하고 다닐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고 말한다.


솔론은 그의 말을 들어주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낸다.


빈민들이 그(솔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페이시스트라토스에게 지지를 보내자, 솔론은 자기는 어느 누구보다 현명하고 용감했다고 말한 후 그 자리를 떠났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위해 행동하는지 모르는 사람들보다는 현명하고, 왜인지는 알지만 두려워 꼼짝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용기가 있다는 것이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중

결국 페이시스트라토스는 50명이 아니라 400명을 모아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한 후 참주정을 선언했다. 놀란 시민들이 상황을 바꿔보려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솔론은 “나라와 법을 지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라고 써서 문 앞에 붙였다. 상당히 화가 나신 거다. 그걸로 부족해서 정치에 손을 뗀다는 표시로 무기와 방패를 자기 집 문 밖에 둔 채 독재를 비판하는 시를 쓰며 말년을 보낸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참주에 의해 죽음을 당할 수도 있으니 몸을 피하라고 했지만, 그마저 듣지 않았다. 뭘 믿고 자꾸 대담한 행동을 하느냐는 말에 “내 늙은 나이를 믿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덤빌테면 덤벼라’다. 할아버님, 파이팅!




이후 벌어진 특이한 점은 페이시스라토스가 ‘솔론의 법’을 잘 따랐다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는 온건하게 통치해 참주라기보다는 정치가처럼 보였다”라고 페이시스트라토스에 대해 평가하고 있다.


페이시스트라토스, 위키 펌


페이시스트라토스는 민회를 없애지도 않았고, 시민 법정, 평의회, 아레오파고스를 솔론의 시대처럼 운영했다. 덧붙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국가 소유지와 추방된 귀족들의 토지를 나눠주는 정책을 펴기도 했다. 덕분에 아무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던 수천 명의 아테네 인들이 농지에 정착했다. 공공사업을 벌이고, 빈곤 계층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했다.


폐이시스트라토스의 통치 하 아테네는 교역이 번창하고 부가 더 평등하게 나눠졌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가난한 자들은 덜 빈곤해졌고 부자들은 덜 부유해졌다. ‘대공황’ 이후의 미국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믿기 힘든 독재자의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다. 아무래도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잘 생기고(앞에서 잠깐 이야기했지요?), 유능하고, 지혜로운 인물이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이 남자가 갖지 못한 한 가지는 ‘그 능력을 아들들에게 물려주는' 재능이었다.




기원전 527년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죽자 그의 아들 ‘히피아스’와 ‘히파르코스’는 2대 참주이자 공동 통치자가 된다. 이런 경우라면 보면 둘 사이가 벌어지며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 형제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대신 히파르코스가 사랑에 빠진다.


히파르코스의 죽음, 위기 펌

당시 아테네에 ‘아리스토게이톤’이라는 중년 남자가 있었다. 그는 ‘하르모디오스’라는 청년에 푹 빠져 있었고, 둘 사이의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히파르코스가 이 하르모디오스라는 청년을 흘끔 대기 시작한 것이다.


기원전 514년, 판아테나이아 축제에 히피아스와 히파르코스가 등장하자(앞에서 말씀드린, 아테네 여신의 옷을 갈아입혀 드리는 그 전국 축제 말이죠) 아리스토게이톤과 몇몇 주동자가 칼을 휘두른다. 히파르코스는 그 자리에서 죽었고, 히피아스도 부상을 입었지만 어쨌거나 자객들을 잡는데 성공한다.


무려 ‘참주’를 죽이려 했던 이유는 알고 보니 결국 ‘치정’이었다. 히피아스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화도 났을 것이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것이 왔을지도 모른다.


이 일이 있은 후 히피아스는 완전히 변한다. 공포와 탄압이 버무려진 노선을 취하기 시작한다. “아테네 인들은 그 뒤 4년에 걸려서 전에 못지않은 또는 그 이상으로 독재자의 압제를 견뎌내야만 했다”라고 헤로도토스는 그의 책에서 쓰고 있다.




그리고 “알크마이온가의 일족이 델포이 체류 중에 무녀를 매수해, 스파르타인이 사용이건 공무이건 신의 계시를 물으러 왔을 때에는 반드시 아테네를 해방시키라는 계시를 주도록 종용했다”고 헤로도토스는 전한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해외로 쫓겨났던 유력 가문인 알크마이온의 후손들은 군대를 일으켜 아테네로 침공해온다. 히피아스는 이들을 막아냈지만, 이후 스파르타의 군대가 합류하자 퇴각해 페르시아로 망명한다. 아테네는 민주정치로 복귀한다



프닉스 언덕을 내려오자 어딘가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 작은 수공예품을 파는 사람들이 보였다. 잘 정비된 길 양편으로 호텔과 상가, 레스토랑과 카페가 이어져 있었다.


“이곳은 플라카 거리입니다. 이곳이 오늘 투어의 마지막입니다. 혹시 프라페와 프라도 에스프레소를 드셨나요?”


프라페는 들어봤지만, 프라도 에스프레소는 처음 듣는다. 먹어 봤다는 사람도 몇몇 있었다.


왼쪽이 프라페, 오른쪽이 프라도 에스프레소


“프라페는 인스턴트 커피와 물, 우유를 넣어 만드는 그리스 커피입니다. 메뉴판에 보통 ‘네스카페’라고 적혀 있기도 합니다. 프라도 에스프레소는 에스프레소에 얼음을 넣고 믹서기를 돌려서 만드는 커피입니다. 설탕을 넣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요. 대부분 그리스 사람들은 설탕을 넣고 먹긴 합니다. 그런데 이 커피 둘 다 상당히 맛있습니다. 한번 드셔 보기를 권합니다.”


이 날씨에 얼음이 들어 있는 커피라면 언제든, 무엇이든 괜찮을 것 같았다.


“자, 여기서 헤어지기로 하고요. 필요하신 분은 말씀하시면 아테네에 제가 가 본 괜찮은 레스토랑이나 카페의 리스트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여기저기서 핸드폰을 든 일행들의 손이 튀어나왔다. 나도 빠질 수 없다. 잠시 후 당황한 가이드가 다시 말했다.


“앗, 제 핸드폰 배터리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잠시 후 보내 드려도 될까요? “


된다. 안될 것이 뭔가. 유적지 옆으로 레스토랑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가는 수관을 천막에 연결해 길 쪽으로 물을 분무하고 있었다. 옆으로 가기만 해도 시원하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가면 죽을 것 같아.”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붉은 얼굴로 일행이 말했다. 맞다. 나도 덥고, 힘들다. 얕지만 산도 탔다. 8시부터 시작한 투어인데 벌써 1시다. 배고프다. 벌써 몸이 절반쯤 익은 느낌이다.


그 길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는 양해를 구하고 적당한 레스토랑으로 먼저 들어가버렸다. 빈 자리가 거의 없는 노천 음식점이다. 천천히 사라지는 일행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근엄하게 생긴 웨이터가 전해 준 메뉴판을 막 펼쳤을 때 잘 정리된 가이드의 문자가 도착했다. 일행들도 벌써 어딘가로 흩어진 모양이다. 그래, 이 날씨에 돌아다니는 것은 무리야, 우리는 주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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