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필로파포스

14. 아테네의 멸망을 떠올리다

by 지안

필로파포스 언덕으로 가는 길은 잘 다듬어져 있었다. 해가 뜨겁고, 날씨가 덥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 낮은 나무와 웃자란 풀을 피해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몇 분 오르자, 갑자기 시야가 열리며 필라파포스 언덕이 환하게 펼쳐졌다.


주위를 둘러보자, 가깝게는 아크로폴리스의 전경과, 조금 떨어진 리카비토스 언덕, 그리고 멀리 크레타 만이 보였다. 아크로폴리스로 오르는 길은 멀리서 봐도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움직임도 느리다. 이른 시각에 아크로폴리스를 다녀온 스스로를 칭찬하며 크레타 만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선글라스에 짧은 팬츠만 입고 언덕을 뛰어오르는 남자가 보였다. 지금은 주민들에게 가벼운 조깅이나 하이킹 코스로 사용되지만, 한때 이 언덕은 한때 전쟁터로 바뀌기도 했다.


필로파포스 언덕에서는 크레타 만까지 내려다 보인다.

아크로폴리스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에 관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이렇게 적고 있다.


아마존 족은 테세우스에게 만만치 않은 적수였다. 그들은 아테네 시내 서쪽의 프닉스 언덕과 남쪽의 무세움 언덕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며 근처 여러 지방을 점령하고 시내까지 침입해 들어왔다.


붉은 표시가 '프닉스 언덕'이다. 필로파포스 기념비가 있는 자리 바로 옆이다.


'테세우스'는 전설 속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와 트로이젠의 공주 ‘아이트라’의 아들이다. 신화에 따르면 '아이트라'와 ‘헤라클레스’는 복잡한 족보로 얽힌 '조카- 삼촌'의 관계가 된다.


이야기의 시작으로 가자. 아이게우스는 자식을 갖고 싶어 델포이에 신탁을 청했다(이런 건 부인에게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아무튼 아이게우스는 신녀에게 그것을 물었다). 델포이의 무녀는 ‘아테네에 도착하기 전에는 술 주머니를 풀지 마시오.’라는 야릇한 말을 해주고 사라져 버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탁의 의미를 알 수 없었던 아이게우스는 돌아오는 길에 트로이젠에 들러 그곳의 왕 ‘피테우스’를 만나 ‘이게 뭔 소리인 것 같나?’라고 묻는다. 왕 둘이 만났는데, 술이 빠질 수는 없다. ‘혹시 이런 뜻일까?’ 한 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다니, 벌주로 한 잔 받아’ 이렇게 한 잔.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의 술자리는 진행되었을 것이다.


일부러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피데우스는 아이게우스의 신탁을 전해 듣자마자 의미를 이해했다. 아이게우스에게 자꾸 술을 권해 정신을 잃게 만든다. 그리고 왕의 방으로 딸을 들여보낸다. 술 취한 아이게우스는 그냥 술 취해 할 만한 일을 한다.


아침이 되자 아이게우스는 자신이 동침했던 것이 왕의 딸임을 알고 한 번 놀라고, 그녀가 아이를 가졌음에 두 번 놀라게 된다. 과연 ‘술 주머니’를 풀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아이게우스는 아이트라에게 조용히 말한다.

“내가 저기 큰 돌 아래 칼이랑 신발을 숨겨뒀거든……. 아이를 낳았는데 아들이고, 그 아들이 저 돌을 들어 물건을 꺼낼 수 있게 되면 나에게 보내.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보내 봐.”


아버지의 검을 찾는 테세우스, 니콜라 푸생, 위키 펌


이렇게 말한 후 아이게우스는 아테네로 돌아가버린다. 아이트라는 아들을 낳고, 테세우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테세우스는 좋은 선생 밑에서 교육을 받는다. 어쨌거나 왕의 손자니까. 자신의 가문과 ‘헤라클레스’가 관련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를 롤 모델로 삼는다. 그리하여 언젠가 헤라클레스처럼 모험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꿈을 지닌 소년으로 자라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아버지에 관해 이야기를 해 준다. 고대 이야기가 다 그렇듯 테세우스도 숨겨 둔 칼과 신발을 꺼내 아버지를 찾아간다. 가슴속에는 ‘나도 헤라클레스처럼 될 거야’라는 ‘중2병의 욕망’도 숨어 있었다. 외할아버지 피테우스가 ‘그냥 안전하게 배 타고 가’라고 했지만, 굳이 도둑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육로로 여정을 짠다. 그 길에 전설을 한 무더기 만들어낸다. 마침내 헤라클레스도 만난다.


두 사람은 아마존 족이 다스리는 지역에 가서 싸움을 하다 여왕인 ‘안티오페’를 납치해온다. 그러니 아마존 사람들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아마존 전사들이 아테네의 턱 밑까지 공격해 들어온다. 프닉스까지 점령당했다면 아테네가 거의 망할 뻔했다는 소리다. 무려 넉 달이나 전투를 벌인 후 겨우 아마존과 아테네는 휴전하게 된다.




“자,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저기 보이는 바다가 크레타 만입니다. 크레타 만은 에게해의 남부, 그리스와 크레타 섬 사이의 바다를 이르는 말입니다. 크레타에 관해서는 알고 계십니까? 크레타는 미궁과 미노타우루스로 유명합니다. 크레타 섬에 미노스 왕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그에게는 ‘파시파에’라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미노스는 원래 에우로페가 제우스와 만나 낳은 자식입니다. 제우스가 떠난 뒤에 에우로페는 크레타의 왕 ‘아스테리오스’와 결혼합니다. 미노스는 왕이 될 때 경쟁자가 있었습니다. 사실 배다른 형제가 있었거든요. 크레타는 섬이죠? 당연히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숭배하고 있었고, 미노스도 그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미노스의 아버지가 제우스 신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삼촌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봐야죠. 뭐라고 했냐면, ‘자신을 왕으로 인정한다면 눈처럼 흰 소를 보내달라. 왕이 되면 그 소를 포세이돈에게 다시 바치겠다’고 말이죠. 포세이돈은 이 소원을 들어줍니다 정말 잘생기고 흰 황소가 물속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그렇게 미노스는 왕이 됩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황소가 너무 잘 생겼더란 말입니다. 미노스 왕은 그 황소를 자기가 갖고 싶었습니다.”


일행들은 해를 벗어날 곳을 찾아 우왕좌왕했지만, 언덕 위에는 그늘로 쓰일 법한 큰 나무는 없었다. 우뚝 선 돌 기념비가 하나 있었을 뿐. 할 수 없이 그냥 돌바닥에 앉아 가이드의 말을 들었다.


“결국 신에게는 다른 소를 바칩니다. 흰 소는 미노스 왕이 챙겼습니다. 포세이돈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죠. 포세이돈은 에로스를 파견합니다. 에로스는 왕비 파시파에에게 사랑의 화살을 쏩니다. 상대는? 눈처럼 흰, 포세이돈이 주었던 그 황소였습니다. 크레타에는 다이달로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다이달로스는 아테네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립니다. 그에게 조카가 있었는데, 아마 자기보다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카를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그게 들통나서 아테네에서 추방되어 크레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다이달로스가 얼마나 훌륭했냐면, 전설에 의하면 그가 만든 조각상은 모두 받침대에 묶어 두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어서서 걸어 나갈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런 다이달로스가 재주를 인정받아 미노스 왕의 궁전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만들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파시파에가 그에게 부탁을 하죠. 황소를 사랑하게 됐는데, 자기가 다가가면 소가 도망을 가니 방법을 좀 찾아달라고 말이죠. 다이달로스는 왕비를 위해 예쁜 암소 틀을 만들어 줍니다. 왕비는 그 속에 들어가 드디어 황소와 사랑을 나눕니다.”


‘어우’ 일행들 속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진저리를 치는 사람도 있다. 가이드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미노타우로스, George Frederic Watt, 위키 펌. 흠...반인반소

“이건 다 전설입니다. 신화. 옛이야기입니다. 하하. 파시파에는 황소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습니다. 그것이 ‘미노타우로스’입니다. 몸은 인간이지만, 머리와 꼬리는 황소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미노타우로스는 자라면서 점점 포악해집니다.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에게 ‘미궁’을 만들게 해서 그곳에 미노타우로스를 가둡니다. 그것이 유명한 크레타의 미궁입니다.”


미노스 왕은 아테네에서 젊은이들을 데려다 미노타우로스가 살고 있는 미궁에 집어넣는다. 먹이이거나 놀잇감이거나 그 둘 다 이거나. 그때 그 미궁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사람이 테세우스다. 아무튼




크레타 섬은 제주도보다 4.5배 정도 큰 섬이다. 작지 않다. 지금까지 연구된 바로, 인류의 문명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인도의 강 유역을 따라 발생했고 유럽의 경우, 크레타 섬을 거쳐 지중해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신화’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1893년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번서(Arthur Evans)가 크레타 섬에서 ‘크노소스 왕궁’터를 발견하면서(기원전 1900년 정도라고 하니, 에….. 단군의 나이 430세 정도?) 가이드가 설명했던 전설 혹은 신화는 역사의 영역으로 성큼 들어선다.


“저건 뭔가요?”


일행 중 한 사람이 언덕에 자리 잡은 비석을 가리킨다. 읽을 수 없는 글씨로 적혀 있고, 많이 훼손된 상태라 도무지 무슨 비석인 지 알 수가 없다.

필로파포스 기념비

“‘필로파포스 기념비’입니다. 아테네에 파견된 총독이었는데, 잘 다스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그를 ‘filo’ 사랑스러운 ‘’pappoús” 할아버지라는 뜻으로, 필로파포스로 불렀다고 합니다.”


여행이 끝난 후 찾아본 바에 의하면, 필로파포스 기념비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필로파포스 (Gaius Julius Antiochus Epiphanes Philopappos)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의 아버지 이름이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르켈라우스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인 것으로 보면, ‘필로파포스’는 가이드의 설명처럼 애칭으로 사용되다 결국 이름 중 하나로 정착된 것이 아닌가 한다.




‘총독’이란 호칭은 낯설지 않다. 우리도 일제 강점기 비슷한 인물들을 만난 적이 있다. 즉 그리스는 로마의 식민지가 된 것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평가받던 아테네는 어떻게 하다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을까? 한 걸음 더 나가보자면 로마의 총독을 ‘필로파포스’라는 사랑스러운 애칭을 붙여 기리게 되었을까(우리나라에서 누군가 일제 강점기 총독을 그런 식으로 부른다고 가정해 보자)? 그 일에 관해서는 소크라테스 사후에 벌어진 일들을 떠올려봐야 한다.


플루타르코스는 소크라테스 사후인 기원전 4세기, 아테네의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당시에 나랏일을 하고 일하고 있던 사람들은 마치 제비를 뽑아서 땅을 나누어 갖듯이 정치와 군사에 관한 일을 제멋대로 나누어 맡아가졌다. 에우불로스, 아리스토폰, 데모스테네스, 리쿠르고스, 히페리데스는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에 바빴고, 디오피테스, 메네스테오스, 레오스테네서, 카레스 등은 전쟁이나 지휘권을 이용하여 출세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관해 월 듀란트는 이렇게 묘사한다.

돈에 대한 광적인 애착이 발생했으며, 돈을 더욱더 원하는 욕망을 표현하는 플레오넥시아(Pleonexia)와 부자의 그칠 줄 모르는 욕구를 표현하는 크레마티스티케(Chrematistike) 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상품과 서비스, 사람이 더욱더 돈과 재산으로 평가되었다.


아테네는 ‘부의 양극화’가 뚜렷한 사회가 되었다. 이래서는 단합할 수 없다. 세금을 회피하는 기상천외한 방법이 동원되기 시작했고, 이에 더해 군역을 회피하는 일도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이 시기를 살았던 아테네인 ‘포키온’에 얽힌 다음과 같은 일화도 전한다.


아리스토기톤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험담가였다. 그런데 시민들 앞에서는 늘 전쟁을 주장하던 그가 입대자 명부에 등록을 하러 나올 때는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지팡이를 짚으며 어정어정 나타났다. 이것을 본 포키온이 서기를 보고 말했다.

“그의 이름 밑에다가 다리병신, 그리고 마음 병신이라고 적어두게.”


좀처럼 낯설지 않다. 현대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이런 아테네의 상황과는 다르다’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지만, 할 수 없다. 양극화는 점점 심화되고 있고, 병역 기피의 이유는 언제나 상상을 넘어선다. 몹시 곤란하다. 가난한 그리스인들은 먹고살기 위해 페르시아나 마케도니아로 건너가

용병이 된다. 이후 지속된 전쟁들 속에서 아테네인은 자신을 공격하는, 또한 자신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부의 집중이 불러온 효과는 이처럼 참혹했다.

포키온의 장레, 니콜라이 푸생, 위키 펌 - 마케도니아가 아테네를 다스릴 당시 가장 정직했던 정치가로 알려졌던 포키온은 모함을 받아 동료들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는다.


아테네의 몰락 이후 스파르타가 그리스의 맹주로 떠올랐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절제와 군기, 기강의 스파르타는 동맹국들에게 거둬들인 돈으로 인해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플루타르코스는 이렇게 말한다.


스파르타 사람들의 생활이 타락하기 시작한 것은 아테네를 정복하여 금과 은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였다……

5명의 에포로스 중 하나였던 에피타테우스는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고집 센 사람이었는데, 아들과 다툰 후에 괴상한 법률을 제안했다. 그 법률은, 자기의 집과 토지를 살아 있을 때나 죽은 뒤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단지 아들에 대한 미움 때문에 이 법률을 제안했던 것이지만,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이 법률을 통과시킴으로써 리쿠르고스가 만들었던 예전의 훌륭한 제도는 무너지고 말했다.

이렇게 되자 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들은 정당한 상속권을 가진 사람들의 권리까지 빼앗아 토지를 무제한으로 소유하게 되었다. 나라의 재산은 단 몇몇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두 가난에 허덕이게 되었다.

즉 아테네도 스파르타도 각기 다른 이유로 망해가고 있었다. 이유는 다르지만 망한 모습은 비슷했다. 현대에도 망하는 이유는 수 백가지지만(전쟁이든, 지도자를 잘못 뽑았든, 둘 다이든) 망한 결과물은 비슷하다. 가슴 아프다.




곧이어 테베가 부상한다. 하지만 더 강한 자가 나타난다. 그리스의 북쪽, 시골이며 변방으로 취급받던 마케도니아에서 ‘필리포스’와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등장한 것이다. 이 시간 이후 아테네가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 주도권을 쥔 시기는 없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의 사망 이후, 그가 건설한 대제국은 알렉산드로스 휘하의 장수들인 ‘디아도코이’들에게 의해 몇 개로 분할되었다 합쳐지고, 재편된다. 그리고 이 나라들은 모두 로마의 지배를 받는 속주로 전락한다. 아테네 인들은 이제 ‘선정을 베푸는 지배자 총독’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존재들로 변해간다.



“이제 프닉스 언덕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끝나는 것을 떠올리는 것은 착잡하다. 차라리 가이드의 뒤를 따라 ‘전성기 아테네’의 민주주의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 좋을 듯했다. 기꺼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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