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키부츠

-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by 지안

2012년 미국 시카고에서 초연된 ‘킹키부츠’의 한국 라이선스 공연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한 해 걸러 한 번씩 꾸준히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그만큼 흥행에 자신 있다는 말이다.


영국 BBC 다큐멘터리 텔레비전 시리즈 중 한 에피소드에 영감을 받아 2005년 제프 딘(Geoff Deane)과 팀 퍼스(Tim Firth)가 각본을 쓴 영화 [킹키 부츠 Kinky Boots]가 이 뮤지컬의 원작이다. 영화는 각본가 하비 파이어스틴(Harvey Fierstein)와 작곡가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손을 거쳐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신디 로퍼’라면 연식이 좀 된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1980년대에는 마돈나와 함께 미국 팝 시장을 양분했던 가수다. 음악이라는 것이 퍽 취향을 타는 것이어서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마돈나보다 훨씬 훌륭한 가수라고 엄지 척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내가 그랬다.




극장에 들어서면 영국 노스핸튼 시골 마을에 자리 잡은 ‘프라이스 앤 선스’라는 신발 공장이 보인다. 막이 오르면 바쁘게 돌아가는 공장 내부가 보인다. 신사화를 만드는 이 공장은 3대째 유지되고 있고, 사장은 아들인 찰리가 구두 공장을 물려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찰리는 약혼자와 함께 런던으로 떠나버린다. 젊은이에게 작은 도시는 답답하고 매력 없는 곳이니까.


꿈에 그리던 런던에서의 생활이 막 시작될 즈음 아버지가 사망하고, 찰리는 얼떨결에 공장을 물려받는다. 막상 공장의 장부를 열어보니, 값싸고 질 낮은 외국산 신발 때문에 판로는 끊겼고, 재고는 엄청나게 쌓여 있다. 당장 사업을 접는 것이 정상적인 판단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공장은 지역 주민들이 대를 이어 근무하는 곳이다. 평생을 알고 지낸 아주머니와 아저씨, 3대째 대를 이어 공장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이 이 공장에서 생계를 해결한다. 무슨 수를 써야 한다. 공장 직원인 로렌은 ‘새로운 틈새시장’을 개척할 생각을 하라고 찰리에게 말한다.


우연히 드래그 퀸 ‘롤라’를 만나고 영감을 받은 찰리는 ‘남성이 신을 수 있는 여성용 부츠’를 제작하기로 결정한다. 롤라를 디자이너로 영입하고 부츠를 제작해 밀라노 패션쇼에 참가하기로 결정한다. 자, 찰리의 새로운 도전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이 뮤지컬은 비싼 돈을 내고 굳이 극장까지 찾아오는 관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무대는 화려하고, 노래는 아름다우며, 해피 앤딩에다가 주제까지 심금을 울린다. 마음껏 무대를 즐기고, 소리를 지른 후 극장을 나올 때는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브라보, 이쯤 되면 영리한 것을 지나 영악해 보인다.


정신없는 춤과 번쩍이는 의상에 눈을 뺏기다 보면 이 뮤지컬이 ‘찰리와 롤라의 성장담’이라는 사실을 깜박 잊게 된다. 구두 공장 사장인 찰리와 밤무대에서 공연하는 드래그 퀸이 런던 뒷골목에서 우연히 마주친 후 전개되는 이야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왠지 내 주변에서도 저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 같다. 마초 같은 남자인 돈이 여자들은 "거친 근육질과 굵은 허벅지"에 반한다고 너스레를 떨 때 드레그 퀸인 롤라는 "넌 언제나 그 생각뿐이냐, 발정 난 놈."이라고 코웃음을 친다. 주위에 있는 일부 남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다.


찰리와 롤라, 두 사람은 다른 듯 닮았다. 아버지의 기대와 그것에 부응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 하지만 노력하는 현재까지." 다른 듯 비슷하다. 그들은 고민하고, 좌절하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낙담하지만 다시 일어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일이다.


좌절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찾아온다. 문제는 ‘극복’이다. 혼자서는 어렵겠지만 둘이라면 좀 나을 수도 있다. 둘 보다는 마을 전체라면 더 쉬울 것도 같다. 자칫 따분할 수 있는 이야기를 눈 하나 깜빡일 수 없도록 환상적인 무대 위에서 풀어낸다. 드래그 퀸인 롤라가 오스카 와일드의 입을 빌려 이렇게 충고한다. “Be Yourself! 너 자신이 돼. 타인은 이미 차고 넘쳐.” 그리고 또 말한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고. 롤라의 이 대사는 극장 문을 나와서도 마음속에 남는다.




찰리 역의 김호영 배우나 롤라 역의 최재림 배우의 연기는 멋지다. 기대를 충족시키는 멋진 무대였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아서 더 눈을 사로잡는 사람들은 여섯 명의 엔젤들이다. 와우. 언니들 너무 멋있다.


구두가 소재이고, 마지막이 패션쇼 장면인지라 화려하고 멋진 구두들도 시선을 잡아챈다. 그 유니언 잭 무늬 부츠는 정말 마음에 들던데, 밖에서 그거 신고 돌아다니고 그러면 안 되겠지? 아, 그전에 내 허리가 감당을 못 하겠구나. 15센티 하이힐을 부르짖는 롤라의 의상 세계는 내게는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다.


이 뮤지컬에 부족한 것은 없다. 춤, 노래, 연기, 각본, 무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다. 신디 로퍼의 대중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흥얼거리다 보면 155분은 후딱 지나간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아직 결정 못하신 모든 분들" 같이 즐겨 주세요. 찰리와 롤라, 두 사람의 미래에 행운이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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