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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Nov 16. 2022

추적

- 대학로  SH 아트홀

추적(Sleuth)은  영국의 극작가 앤소니 셰퍼(Anthony Joshua Shaffer)가 1970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50년의 시간 사이, 몇 번인가 장편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 영화들을 보지 못했다(스포 당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작품이 가진 매력이 있으니 영화화 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쉽게 할 수 있다.




불이 켜지면 글을 쓰는 사람이 보인다. 백발이 성성한 늙은 남자다. 자신이 쓴 글을 중얼거리며 문장을 맞추고 있다.


벨소리가 들리고  무대 안 쪽 현관문을 열면 그와는 대조적인, 떨떠름한 표정의 젊고 매력적인 남자가 서 있다. 문을 열어 준 남자 앤드류는 집 안으로 들어서는 마일로를 반갑게 맞이한다. 마일로는 앤드류의 초대를 받고 막 이 집에 도착한 것이다. 이들은 무슨 관계일까.




젊은 마일로는 늙은 앤드류의 부인과 사랑에 빠져 있다. 마일로와 앤드류의 부인은 결혼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 아주 조금의 난관이 있다. 마일로의 경제력이 겉보기보다 좋지 않고, 앤드류의 부인은 돈을 많이 쓴다는 것.


이런 두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줄 제안을 먼저 내미는 쪽은 앤드류이다. 앤드류가 가진 고가의 보석을 도난당한 것으로 위장하여 보험 회사에서 돈을 타내자는, 조금은 미심쩍은 작전이다. 의심하는 마일로에게 앤드류는 자신도 그 보험금이 필요하다고 고백한다. 앤드류에게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젊고 섹시한 애인이 있는 것이다. 마일로는 앤드류의 제안을 받아들일까?




이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는 둘이다. 앤드류의 현부인이자 마일로의 애인인 마가렛은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부분이 오히려 설득력 있다.




앤드류와 마일로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듣지 않고 본다면 그들 사이를 '부자관계'로 착각하기 쉽다. 그 정도의 나이 차가 난다. 그러니까 이 연극은 아버지의 부인과 사랑에 빠진 아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관계도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다. 오이디푸스는 (그것이 예언에 의한 것이든 뭐든 간에) 어머니와 사랑에 빠진다. 물론 그 사랑을 이루기 전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행동은 아버지를 없애는 것이다. 멀쩡히 존재하는  아버지를 두고 그의  부인과 동침할 수는 없다. 즉 이 이야기는 1970년대 영국 어느 지방에서 벌어진 오이디푸스 이야기라고 할 만하다. 자, 이제 남은 일은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는 것처럼 마일로가 앤드류를 죽이는 과정일 것이다.


그런 일이 진짜 벌어질까.




굳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끌어 오지 않더라도, 두 주인공의 갈등은 명확하다.


성공한 추리소설 작가인 앤드류는 마일로에게 자신이 경제적으로나 성적으로 '성공한 상태'임을 주장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꽤 설득력이 있지만, 속은.... 글쎄....


마일로는 젊고 잘생겼지만 경제적으로는 부족하다. 지금도 힘들지만 마가렛과 함께 할수록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물려받은 것은 없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이에게 화려한 세상을 이미 알고 있는 여자를 부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즉 두 사람의 대립은 명백한 세대 간의 대립이다.


앤드류는 영국의 상류층이거나 혹은 '상류층인 척'하는 부류의 남자다. 그에 비해 마일로는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이고, 한걸음 더 들어가 보면 '더러운 유대인'의 피도 섞여 있다. 즉 계층 간의 갈등이  그 위에 겹쳐진다.




술을 나누며 '화기애애한 척' 시작한 대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격렬해지고 솔직해진다.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 여성 혐오가 필터링 없이 튀어나온다. 거침없어서 더 구역질이 난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늙은 세대(나를 포함하여 모든 기성세대)란 이렇듯 편견에 찌들어 있고 파렴치하며 틈만 나면  힘과 술책으로 젊은 세대를 농락하려고 한다. 이 시대만의 특색도 아니다. 인간의 역사가 이어지는 한 언제나 있어온 일이다. 그런 일을 당할 때 젊은 세대가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늙은 세대를 처단하는 것 밖에 없다.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 방법은 과연 유효할까? 지금은 주먹으로 사람을 제압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보다 센 총이 있고, 그보다 세련된 권력의 그물이 있다. 그리스 시대, 전차를 타고 가다 만난 사람을 한 주먹에 죽일 정도의 간단한 세상이 아니다. 때문에 이 두 사람, 앤드류와 마일로에게 어떤 결과가 펼쳐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결론이 궁금할 수밖에........




이렇게 정교한 각본임에도 불구하고 연극에 몰입하기는 쉽지 않다. 연극의 무대는 앤드류의 집이다. 집사와 하녀를 거느릴 정도의 재력이 있는(대사에 나온다) 저택이라는데 정작 무대는 싸구려 여관보다 초라하다. 조명도 음향도 무대와 비슷한 수준이다.


첫 장면에서 앤드류는 애플 노트북에 글을 쓰고 있다. 관객석을 향한 흰 노트북의 우아한 자태는 낡은 전화기와 궤종 시계, 맥락없이 놓인 인형과 장난감, 과학 수사라고는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은 도플러 경위의 모습에 비하면 1970년대 SF 드라마 속 한 장면 같다.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들의 노력이 아까울 정도다.


이 연극을 보고자 하시는 분은 줄거리를 알려고 하지 말고 극장을 찾길 바란다. 그리고 객석에 앉아 "이곳이 영국의 대저택 거실이다"라고 최면을 거시기 바란다.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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