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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Nov 24. 2022

스카팽

-명동예술극장

이 작품은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배우인 몰리에르가 쓴 [스카팽의 간계]를 원작으로 한다. 올해는 몰리에르 탄생 400주년이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했다고 무대 위 배우들은 주장했지만,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2019년 초연 이후 세 번째 소개되는 국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2019년 초연 때는 티켓을 구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였는데, 2020년에는 몇 번 공연이 진행된 후 중단되었다. 명동예술극장에서 진짜 화재가 났기 때문이다. 아우, 깜짝이야.




몰리에르는 1622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장 바티스트 포클랭(Jean Baptiste Poquelin)이다. 1643년 ‘일뤼스트르 극단’을 만들어 지방으로 순회공연을 다니지만 이름을 얻지는 못한다. 1659년 [웃음거리 재녀들]이라는 작품으로 마침내 성공을 거두고 1665년 루이 14세의 후원을 받기에 이른다. 그의 극단은 ‘국왕 전속 극단’이 될 정도로 이름을 얻지만 몰리에르는 그 성공을 길게 누리지는 못하고 1673년 숨을 거둔다.


지금 프랑스에서는 ‘몰리에르 상’을 제정해 기념할 만큼 그를 기억하는 모양이지만(이 상은 1987년에 만들어졌고, 얼마 전 관람한 ‘온 더 비트’는 이 몰리에르 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했다), 그에 대해 내가 아는 지식은 거의 없다. 위에 쓴 몰리에르에 관한 이 정보들은 위키피디아에서 얻었다. 딱 저만큼 정도는 지식이 있어야 무대 위에 펼쳐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객석에 앉으면 무대에 걸린 거대한 붉은 휘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대 양 끝에는 17세기에 사용했을 법한 책상과 의자가 자리하고 있고, 그 맞은편에는 현대식 드럼과 신시사이저 같은 악기들이 놓여 있다. 카리스마 있어 보이지만 나와 동시대의 의상을 입은  한 남자가 조용히 걸어 나와 악기 앞에 앉는다. 임요찬 음악감독이다. 그는 연극에 사용되는 음악들을 직접 연주하기도 하고, 재생하기도 하고, 절묘한 포인트마다 효과음을 넣기도 한다.


음악 감독의 준비가 끝나면 17세기 시대극에서 튀어나온 듯 화려한 복장의 몰리에르가 등장한다. 무대 끝 책상은 그가 ‘집필’하는 장소였던 것이다. 잠시 글을 끄적이던 몰리에르가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온다. 자신에 관한 정보를 준 후, 작품과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면서 극이 시작된다.  


배우들이 서 있는 거대한 무대가 중앙에 자리를 잡는다. 등장 인물들은 제 역할을 마친 후 뒤쪽에서 걸어다니거나 옆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무대를 지켜본다. 즉 이 연극은 몰리에르의 극단이 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무대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몰리에르는 배우들의 연기를 지시하기도 하고, 자신이 배우가 되어 극 속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밖에서 소품을 던져주기도 하고, 감상평을 내뱉기도 한다. 즉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몰리에르의 극단이 [스카팽의 간계]라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감상한다.




하인인 ‘스카팽’과 ‘실베스트로’는 각각 ‘제롱뜨’와 ‘아르강뜨’라는 주인을 모시고 있다. 이 주인들은 사업차 여행을 떠났다 돌아왔는데, 아르강뜨의 아들 ‘옥따브’와 제롱뜨의 딸을 정략결혼시키기로 결정한 상태다. 그러나 옥따브는 이미 이아상뜨라는 아가씨와 사랑에 빠져 있다. 옥타브의 친구이자 제롱뜨의 아들인 ‘레앙드르’도 ‘제르비네뜨’라는 여인을 사랑하고 있고. 문제는 이 두 청년이 부모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사실이다. 능력도 돈도 머리도 없다. 할 수 없이 스카팽이 나선다. “우리가 곤란할 때 언제나 멋지게 도와줄 사나이”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스카팽은 교묘한 꾀를 생각해 이 모든 갈등을 해결한다. 말도 안 되는 우연과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며 헤피엔딩의 세계로 이끈다. 그러나 이 작품의 묘미는 줄거리에 있지 않다.


완벽하게 합을 맞춘 동작, 의자나 테이블을 이용한 마임, 반복되어 중독되게 만든 대사가 이 극의 매력이다. 유명 영화와 드라마에서 차용한 대사, 인기 있는 노래의 가사도 녹아 있다. 샐럽의 말도 안 되는 명언들과 성대모사는 덤이다. 17세기 대사들로 21세기의 관객을 웃기는 것은 무리다. 무려 400년 전에 만들어진 대본 속에 지금의 사건과 상황, 감성을 녹여 감독과 배우들은 무대를 완성했다. “도대체 군함을 왜 탔어”, "연결해" 같은 중독성 있는 대사는 귀갓길까지 따라온다.




스카팽 역의 이중현 배우나 실베스트르 역의 박경주 배우, 옥따브 역의 이호철 배우의 연기와 합은 대단하다. 같은 판에서 잡아 뺀 퍼즐처럼 모든 동작이 자연스럽게 뭉쳐졌다 펼쳐진다. 멋지다. 몰리에르 역의 성원 배우 역시 공연 내내 입을 벌리고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제 공연 시작인데 벌써 목이 잠긴 것 같아 걱정스럽다. 12월 공연이 마무리 되기 전 다시 찾을 예정인데 그때까지 잘 버텨주시기를…..




모든 연인들은 사랑을 찾고 이야기가 마무리된 후 극단의 책임자 몰리에르가 관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오늘 이 극장을 찾아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블라블라…..” 같은 이야기 말이다. 지금은 월드컵 기간이고, 연극이 끝난 후 시작되는 독일과 일본 전에서 ‘독일’을 응원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독일은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흠, 그렇다면…….


집으로 돌아와 야식을 먹으며 일본과 독일의 축구를 지켜봤다. 아, 독일 좀 힘을 내. 그렇게 무너지면 안 된다고! 경기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지만, 공연은 관객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며 쭉 진행될 것이다. 배우들의 건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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