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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Nov 30. 2022

오펀스

- 대학로 아트원씨어트 1관

세상에는 잘못된 선입견들이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 혼자 있을 때, 외로울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웃고 있는 사람은 즐겁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혼밥 하고 있는 그녀는 자신만의 여유를 즐기며 행복해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웃고 있던 그 남자는 상사의 재미없는 농담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짜증을 감추며 거짓 웃음을 터트리고 있던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타인의 사정을 모른 채 판단하고, 그런 선입견들은 가끔 위험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언제나 통하는 선입견도 있다. 예를 들면 “인간에게는 어른이 필요하다” 같은 것. 갓 태어난 아기는 어른이 먹이고 입혀주지 않으면 생물학적인 의미로 죽어버릴 것이다. 청소년기에도 어른은 필요하다. 사회는 복잡하고 배워야 할 것은 많기 때문이다. 책만으로 가능할까? 글쎄……


말로 표현하기 애매한 에티켓을 우리는 ‘가정교육’이라는 말로 부른다. 좋은 의미이던 그렇지 않던 ‘관행’이라는 말로 어떤 일들 아래 의미를 깔아 둔다. 나의 기분을 타인의 것과 연결시켜 생각하지 못하면 유, 무형의 불이익을 감수하게 된다. 그런 것들을 알려줄 사람이 어른이다. 상처를 입고 쪼그라들 때 ‘별 일 아니야’라며 등을 두드려줄 사람 역시 필요하다 꼭 부모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친절하고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돈이 많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이 연극의 제목을 우리말로 옮기면 ‘고아들’ 정도가 될 것이다. 여기에는 세 명의 고아가 출연한다. 트릿과 필립, 그리고 헤럴드다.


트릿과 필립은 고아 형제다. 필라델피아 북부의 낡은 집에 살고 있다. 아버지는 행방불명이고 어머니는 죽었다. 트릿은 좀도둑과 강도짓으로 동생 필립을 부양하고 있다. 그런데 동생을 돌보는 방식이 가스라이팅에 가깝다. 필립이 글을 읽지도,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트릿은 필립을 사랑하지만 어쨌든 그렇다.


어느 밤 트릿은 펍에서 만난, 술에 잔뜩 취한 늙은 남자 헤럴드를 집으로 데려온다. 의자에 앉히고 밧줄로 꽁꽁 묶고 입에 재갈을 물린다. 말하자면 납치다. 고가의 물건을 가방에 잔뜩 넣고 다니는  헤럴드의 몸값을 받아낼 요량이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는다. 헤럴드는 그렇게 쉬운 남자가 아닌 것이다. 여기까지가 연극을 소개하는 사이트에 적혀 있는 줄거리다.




라일 케슬러(Lyle Kessler)가 쓴 이 연극은 1983년에 미국 무대에 올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 처음 소개됐고 이번이 세 번째 무대다. 덕분에 낡은 필라델피아, 시카고, 갱 같은 우리에게는 낯선 이미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곳이 우리나라의 지방 소도시여도, 서울의 조폭이라고 생각해도 큰 무리는 없다. 가난하고 위험한 동네에 살고 있는 고아 소년들의 집에 어울리지 않게 돈 많고 위험하고 거친 남자가 함께 살게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마 그들이 함께 살게 된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을 만들어 넣지 않으면 이야기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 개연성’ 문제와 상관없이 연극을 보는 내내 떠올린 것은 ‘좋은 어른’이라는 단어였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좋은 어른이 필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충분히 늙은 나조차 내 곁에 의지하고 조언해 줄 수 있는 어른이 있기를 바라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란 사람은 어쩌면 ‘어른이 있기를 바라’는 것보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그런 어른이 되어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로, ‘과연 나는 잘하고 있는가?’라는 반성이 되었던 것이다. 잘하고 있을 리가 없지만………




이 연극 ‘오펀스’의 헤럴드는 '좋은 어른'이다. 트릿과 필립 각자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적확한 조언을 해준다.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걸 만큼 위험한 것이라고 해도. 헤럴드 역의 박지일 배우는 이 연극이 올라갈 때마다 출연하고 있는 ‘단골 헤럴드’이다. '나도 저렇게 돈 많고, 몸 잘 쓰고, 아는 것도 많고, 유머 감각도 있는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고 생각할 만큼 매력적이다.


거칠고 감정적이지만 또한 나약하고 상처 입은 트릿 역으로 최석진 배우는 최적의 캐스팅이었던 것 같다. 신주협 배우는 순수하고 상냥한 필립 그 자체였다. 번갈아 치는 대사의 호흡이 중요한 연극인 만큼 세 배우의 합도 중요했는데, 환상의 무대였다. 훌륭한 무대를 보여준 배우들에게 감사한다.


객석에 불이 켜지면 낡고 계단과 그 옆으로 찢어진 소파와 짝이라고는 하나도 맞지 않는 의자가 여기저기 놓인 지저분한 거실이 보인다. 헤롤드와 함께 살게 되면서 그 거실의 풍경도 바뀐다. 깨끗하고 질서 있고 아름답게. 인터미션 때 뛰쳐나와 뚝딱거리며 무대를 만들어 준 스테프들에게도 감사한다. 쉬는 시간에 볼 수 있는 소소한 재미다.




문제는, 형 말로는 나쁜 사람한테 다가가서 주소를 물었다간, 제 목을 싹 그어버릴지도 모른대요.


가난하고 고아인 두 형제에게 세상이 어떻게 보였을 지는 필립의 이 대사로 확실히 알 수 있다. 오펀스에는 이런 식으로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사가 가득하다. 멋지다. 그리고 동생에게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트릿의 입장을 나는 이해한다.


밤을 몰아낼 수는 없어. 밤은 문틈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지금 이 필라델피아 전체가 밤에 덮여 있지.

하지만 헤럴드의 말처럼 우리는 그 세상을 피할 수만은 없다. 그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한다. 헤럴드 같은 어른이 있다면 한결 쉬울 것이다. 누군가 손을 잡고 문 밖으로 첫 발을 함께 내디뎌 주는 것만 해도 그다음은 훨씬 편할 것이다. 나는 그런 어른이 되었을까? 아이고…. 그렇다면 언젠가는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못했지만, 여러분은 그런 어른이 되시길 바랍니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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