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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Sep 14. 2023

자신을 위해 살고 싶은 자, 이곳으로

-뮤지컬 벤허

오래전 극장에서 영화 [벤허]를 봤다. 영화임에도 중간에 휴식시간이 있을 정도로 길었고, 교회도 다니지 않는 입장에서는 낯선 이야기였으며, 무엇보다 내가 너무 어렸다. 당연히 영화 [벤허]는 내 최애 영화 목록에 없다. 다만 벤허의 전차경주 씬과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나병 환자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어제 본 것처럼 생생하다. 꽤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뮤지컬 [벤허]는 영화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영화도 동명의 소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굳이 따지자면 원작 소설과 뮤지컬이 관련이 있다고나 할까. 뮤지컬 [벤허]는 우리나라 제작진이 만들어 2017년에 처음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2019년 재연됐을 때도 별 감흥이 없었다. 영화 [벤허] 탓이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대인 귀족의 삶을 무대에 올렸을까? 굳이 그런 것까지 챙겨볼 필요가 있나?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극장을 찾은 이유는 아무래도 ‘전차경주’ 씬 때문이다. 영화 속 ‘메셀라’는 악당이다. 어렸을 때 자신을 거둬 준 은인은 향해 칼을 든 배은망덕한 자이고, 경주를 벌이는 상대를 해치기 위해 전차 바퀴에 살상 무기를 장착한 파렴치한이다. 자신의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 악당과 순수하지만 뚝심 있고 능력 있는 벤허는 거대한 원형 경기장 안에서 대결을 펼친다.


사람들의 응원 소리가 가득한 그곳에서 메셀라는 말에게나 써야 할 채찍을 벤허에게 휘두르고 바퀴의 칼날을 이용해 사악한 시도를 거듭한다.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지금이라면 ‘제법 흥미 있는 장면이군’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가겠지만 당시의 어린 나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긴장한 채 그 장면을 지켜봤다. 그 멋진 장면을 무대 위에서 보고 싶다, 그것이 극장을 찾은 주목적이었다.


뭔가 웅장한 느낌적 느낌이다

불이 켜지면 공놀이를 하는 어린아이가 무대 위로 달려 나온다. 동시에 아이 뒤로 공간이 열리며 진격하는 군인들이 아이를 위협한다. 뒤따라 나온 벤허가 아이를 구하고 군인들은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벤허가 살고 있는 예루살렘의 당시 상황을 요약한 장면이지만 내게는 무대 장면이 구현되는 방식의 설명으로 보였다. 무대는 세 개로 나뉘어 있고 필요에 따라 하나나 둘, 그러다 세 개 전부를 이용하기도 한다. 극이 진행되는 중에도 얼마나 많은 스텝들이 뒤에서 다른 장면을 분주하게 준비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뮤지컬의 배경은 제정 로마가 점령한 예루살렘이고 주인공 ‘유다 벤허’는 부유한 유대 귀족이다. 그의 아버지는 유대 민족의 독립을 염원했던 사람이지만 이미 사망했고 부와 명예를 물려받은 아들 유다 벤허가 원하는 것은 가족들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삶이다. 예전 그의 아버지는 로마 군인의 아들이지만 부모를 잃은 메셀라를 데려와 키웠고 그래서 유다와 메셀라는 친형제처럼 자랐다.


장성해서 집을 떠난 메셀라는 로마 장교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메셀라는 유대 폭도들에 관한 정보를 넘기라고 하지만 벤허는 거부한다. 다음날 벤허의 동생 티르자는 집 옥상에서 새로 부임하는 총독의 행군을 구경하다 실수로 기왓장을 떨어뜨린다. 메셀라는 총독을 죽이려 했다는 누명을 씌워 어머니와 여동생을 감옥에 가두고 벤허는 로마 군함의 노를 젓는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주인공 벤허가 살아 돌아와 복수를 하는 것이 이 뮤지컬의 주된 내용이다. 따로 해설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단순한 줄거리다. 악당 ‘메셀라’에게도 서사를 부여했다는 점이 영화와 다르고, 줄거리도 조금 차이가 있지만 결국 벤허가 승리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감탄한 것은 무대 자체다. 로마식 원주들이 늘어선 건축물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거대한 함선이 등장하고 풍랑을 만나 침몰한다. 별이 가득한 망망대해를 떠다니다 바위가 갈라진 산으로 바뀐다. 화려한 무대 장치는 흔하지만 이 뮤지컬은 그중 압권이다. 제작진들이 피땀이 느껴졌다. 다른 장면들이 대단해서 말과 전차가 등장하는 전차경주 씬은 오히려 소박해 보였다. 영화에서 느꼈던 그 스펙터클을 구현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스무 명이 넘는 앙상블들의 힘 역시 대단하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주연 배우들이지만 앙상블 없이 이 무대를 본다면 감동이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군무가 조금씩 틀어지기도 하고 줄이 어쩐지 삐뚤어지기도 하지만 몸짓과 음색만은 강렬했다. 박수를 보낸다.




벤허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기왓장을 떨어뜨렸다고 말한다. 반역자로 누명을 쓰고 쇠사슬을 찬 채 함선에 묶여 고난의 시간을 견딘다. 그가 타던 배가 부서져 마침내 함선 밖으로 나와 별을 보며 노래한다.

“단 한 번이라도, 단 한번 날 위해, 한번만 날 위해 살아봐도 괜찮을까. 한 번만 날 위해 살아보고 싶어. 난 살아 있으니까.”


글로 옮기고 보니 “자유로운 우리를 봐, 자유로워”같은 가사처럼 이상해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꽤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뾰족한 마음을 버리면 대충 무슨 말을 하려 하는 것인지 짐작은 된다. 고난의 시간을 지나 목숨을 건졌으니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이 시간 이후 3년 간 노잡이로 살면서, 또한 로마에 점령당한 유대인의 한 사람으로 벤허는 ‘자유’를 부르짖는다. ‘자유’ 좋은 말이다. 어쩐지 최근에는 그 의미가 조금은 이상해진 느낌도 들긴 하지만 아마 그건 내 기분 탓이겠지.




내가 벤허 역의 규현이나 메셀라 역의 서경수, 에스더 역의 윤공주의 노래를 좋다 나쁘다 말할 처지는 못 된다. 다들 대단하다. 출연진이 많으면 한 명쯤 아쉬운 배역이 있을 법도 한데 이 팀은 완벽했다. 감탄하며 바라보다 미리암 역의 류수화 배우가 부르는 노래에 코 끝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나병에 걸려 온몸이 망가져 사람들 앞에 나설 수도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아들을 안아주고 싶다는 희망을 노래하며 신에게 묻는다.


“이런 내게 희망은 욕심인가요”

‘자유’라는 단어가 덜컹거리며 귀에 들어오는 요즘 내게도 희망이라는 것이 있다. 그 희망이 욕심이 아니었으면, 그런 마음뿐이다. 이 뮤지컬은 11월 19일까지 엘지 아트센터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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