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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Sep 08. 2023

뮤지컬이 던지는 ‘존재’에 관한 질문

-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한동안 공연장을 찾지 못했다. 눈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지금은 괜찮습니다!). 갑자기 벌어진 일어라 괜찮아지겠지, 괜찮아질 거야로 희망고문을 하다 끝내 수수료까지 물면서 잡아 놨던 몇 건의 예매를 취소했다. 공연은 배우와 제작진이 만들지만 관객인 나는 그 작품들을 통해 어떤 종류의 깨달음과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느낌들은 어떤 식으로든 내게 영향을 준다. 한 달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렇다면 ‘공연 한 편 보지 못한 나’와 ‘(현실과 다르지만) 예약했던 모든 공연을 관람한 나’, 이렇게 두 사람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면 과연 한 달 후의 그 ‘나’들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가 던지는 질문도 이와 비슷하다. 


극장에 들어서면 크기가 다른 화면들이 바둑판처럼 연결된 무대가 관객을 기다린다. 그 화면들 속으로 별들이 쏟아지다, 니스의 해변이 보이고, 샤갈의 그림들이 지나간다. 즉 등장인물들의 ‘지금’은 현실인 듯 환영인 듯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 무대 위로 두 사람이 등장한다. 우주 비행사를 꿈꾸는 여자 제이와 로봇 수리기사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 은기다. 둘은 웃고, 마주 보고, 입을 맞추고, 꼭 끌어안는다. “너와 매일 밤하늘을 보고 싶어, 그저 그런 보통의 하루를 나누고 싶어”라고 노래한다.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은 그냥 ‘보통의” 삶이다. 한참 사랑에 빠진 듯한 두 사람에게는 이루기 어렵지 않은 꿈처럼 보인다. 


노래를 끝낸 후 제이가 말한다. 


“나, 드디어 우주로 발령받았어. 기간은 1년.” 


이건 평범하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과 1년 동안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은기는 이런 중요한 문제에 대해 상의 한 번 없이 결정하고 통보한 제이에게 화를 내며 집을 나간다. 제이는 자신의 삶에 대한 문제이니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고 맞받아치며 은기를 잡지 않는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진다. 




예매 사이트에 소개된 시놉시스는 여기까지다. 제작진이 여기까지만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존중한다. 다만 이 정도의 정보만 가지고는 다음 이야기를 풀기가 무척 어렵다. 줄거리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조금 더 나가보겠다. 


이 뮤지컬에는 ‘복제인간’이 등장한다. 특정 인간의 ‘DNA’와 ‘만들어질 때까지의 모든 기억’을 고스란히 받은 복제품으로 원래의 인간과 구별되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마치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 같다. 영화 속 인간과 리플리컨트(인조인간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는 겉모습으로는 구별할 수 없다. 리플리컨트들은 누군가의 기억을 복제해 가지고 있고,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 당연히 자의식도 있다. 하지만 리플리컨트들은 식민지 행성의 노예로만 살아야 한다. 수명도 대단히 짧다. 리플리컨트들의 입장에서는 불공평한 일이다. 그들은 이런 현실에 반기를 들고 지구로 침입해 온다. 하지만 누가 인간이고 누가 리플리컨트일까? 혹은 더 ‘인간적인’ 모습을 지닌 것은 과연 진짜 인간들일까 리플리컨트일까? 




이런 SF적 상상에 거부감을 가진 분이라면 우리 고전 문학으로 돌아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무심코 버린 손톱을 먹은 쥐가 손톱의 주인과 똑같은 인간이 되었다거나 허수아비로 누군가의 복제품을 만들었다는 스토리는 꽤 흔한 서사에 속한다. 


판소리로도 유명한 <옹고집전>의 주인공은 사악하고 못된 부자다. 옹고집의 악행에 화가 난 선사가 지푸라기를 이용해 가짜를 만들어낸다. 가짜 옹고집은 진짜 옹고집과 똑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고 기억력은 출중하며 게다가 심성도 나쁘지 않다. 고을의 수령과 주민들은 앞다투어 가짜 옹고집을 ‘진짜’라고 선언한다. 


진짜는 마을에서 쫓겨나고 가짜는 옹고집이 되어 아이를 열 명이나 낳으며 행복하게 산다. 진짜는 모진 고통 속에서 어려움을 겪다 새 사람이 되어서야 가짜를 몰아내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런데 부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진짜 옹고집’은 누구일까? 아이를 열 명이나 낳는 시간 동안 함께 기억과 추억을 쌓은 가짜일까, 그 시간 동안 다른 삶을 산 진짜일까? 아무도 부인의 입장을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그 이야기에 대한 답을 이 뮤지컬에서 짐작할 수 있다. 


특별하게 사진 찍을 수 있는 날이었다. 

이 작품에는 단 두 명의 배우만 출연한다. 훅처럼 귀에 꽂히는 노래는 없지만 잔잔한 음악 사이로 두 사람의 애틋한 마음이 스미듯 관객석까지 전해진다. 끝날 때쯤엔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양자 역학이나 초끈 이론, 멀티 유니버스 같은 소재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고개를 저을 수도 있겠다. 게다가 뮤지컬 속 시간은 현재에서 과거 회상으로, 다시 현재에서 어떤 시점으로 뛰어다닌다. 복제 인간을 연기하는 것도 같은 배우이다 보니 누가 누구인지 헷갈릴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인지 초반부가 지나 자리를 뜨는 관객도 있었다. 호불호가 갈리는 이야기인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걷어내고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면 이 뮤지컬은 꽤 커다란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진짜’는 누구인가, 원본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우리는 흔히 ‘옛날의 나’ 혹은 ‘예전의 나’에 관해 이야기한다. ‘내가 변했어’라든지 ‘네가 변했어’라는 말도 흔하게 한다. 하지만 진정한 ‘나’는 내가 선택한 것들의 합이다. 내가 선택한 것들이 모두 모여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나’다. 


이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싶지 않다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것도 좋다. 두 사람의 노래는 아름답고 달콤하다. 소재를 받아들이겠다는 여유롭고 열린 마음으로 이 작품을 마주하시길 바란다. 11월 12일까지 예스 24 스테이지 3관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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