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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Sep 25. 2023

‘미안해’와 ‘고마워’ 사이의 솔직함

- 더 웨일

한 사람이 있다. 심하게 살이 쪘기 때문에 숨 쉬는 것조차 힘겹다. 혼자서는 걸을 수도, 몸을 구부릴 수도, 바닥에 떨어진 것을 주울 수도 없다. 화장실 가는 짧은 길도 기구에 의존해야 한다. 어쩌다 보니 이 상태가 된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외모가 타인들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고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는다. 생계를 위해 온라인으로 강의를 하지만 그의 얼굴을 비추는 카메라는 꺼져 있다. 유일한 친구가 그를 돌본다. 그는 입버릇처럼 ‘미안해’라고 말한다. 또 말한다. ‘고마워’ 친구가 화를 낸다.


“뭐가 그렇게 미안하다는 거야? 한 번만 더 그 소릴 하면 칼로 찔러 버릴 거야.”

“좋아. 하지만 그 칼이 내 지방을 뚫고 장기에 닿으려면 길이가  60센티는 넘어야 할 거야.”

어이없어진 친구가 웃는다. 남자가 말한다.


“미안해, 고마워.”




박스를 잘라 만든 단면 같은 무대. 객석과 가까운, 관객과 마주 볼 수 있는 곳에 2인용 소파와 작은 테이블이 있다. 주위로 책과 먹을 것, 한 때는 유용했을 것들의 잔해 즉 쓰레기들이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다. 무대 깊숙한 곳의 테이블에도 내용을 알 수 없는 것들이 절망적으로 쌓여 있고, 굴러다니고, 떨어져 있다. 그 옆으로 침대, 그 옆으로는 세면대, 무대 왼편에는 현관문이 보인다. 무대 위 공간들을 나눠주는 구조물은 없어서 관객에게는 상상의 벽이 필요하다. 이곳은 270KG의 거대한 몸을 가진 남자 ‘찰리’가 사는 아파트다.


불이 꺼지면 박스 바깥의 공간 위로 ‘월요일’이라는 글자가 찍히고 온라인으로 글쓰기 수업을 하는 찰리의 목소리가 들린다. 찰리는 고치면 고칠수록 좋은 글이 된다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그럴 지도 모른다. 잠시 후에는 화요일이라는 글자가 떠오른다. 그다음은 수요일, 목요일. 그러니까 이 연극은 찰리의 일주일을 보여준다. 일주일이 끝날 즈음 찰리의 강의 내용은 변한다.




불이 켜지면 2인용 소파가 비좁다고 느껴질 정도로 뚱뚱한 찰리의 모습이 보인다. 몸 어디에도 ‘건강함’의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그중 최악은 심장이다. 그는 울혈성 심부전증을 잃고 있다. 유일한 친구이자 간호사인 리즈가 그의 심장이 멎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글쎄. 건강식과 약이 필요할 것 같은 찰리는 치킨과 샌드위치를 거리낌 없이 입으로 가져가고 탄산음료를 쏟아붓는다.


월요일 저녁 호흡곤란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찰리의 집 문을 몰몬교 선교사 토마스가 두드린다. 구급차를 부르겠다는 토마스에게 찰리는 고래가 등장하는 소설을 주제로 한 에세이를 건네며 큰 소리로 읽어 달라고 부탁한다. 이렇게 연극은 시작된다.  




연극 <더 웨일>을 알기 전 영화 <더 웨일>을 먼저 알았다. 영화는 아카데미에서 상을 여러 개 받았고 주인공 ‘찰리’ 역을 맡은 배우는 특별히 찬사를 받았다.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2023년 최고의 영화 베스트 5’ 중에 든다. 당연히 나처럼 연극 이전에 영화로 이 작품을 접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영화와 연극은 완전히 동일할까? 내가 보기에 이야기의 큰 흐름은 동일하지만 영화와 연극의 세부 스토리에는 조금 차이가 있다.


영화 속 토마스는 ‘새 생명 선교회’라는 생소한 이름의 종교에 속해 있다. 연극 속 토마스는 현실에도 존재하는 몰몬교 신도다. 지금도 많은 신도를 보유하고 있는 종교를 언급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했을까? 영화는 종교의 이름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그 종교로 인해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마저 흐릿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영화 속에서 찰리에게 일어난 사건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연극을 보면 찰리에게 발생한 비극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다음은 제목. 영화를 감명 깊게 봤음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고래’인 이유가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찰리가 고래만큼 크다는 것일까? 혹은 소설 ‘백경’을 읽고 쓴 에세이에 등장하는 그 ‘고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연극을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찰리의 비극은 성경 속 고래 - 요나서와 관련이 있다. 이제야 이 연극의 제목이 고래, [더 웨일]이라는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러 대의 카메라를 이용해 다양한 표정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에 비해 연극이 보여줄 수 있는 시점은 단순하다. 이곳을 집중해 달라, 이쪽에 주의를 기울여 달라 강조하기도 어렵다. 배우들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관객들은 그들을 쫓는다. 딱 그만큼만 느낄 수 있다.


20Kg짜리 특수분장을 했다는 주인공 찰리 역의 백석광 배우의 표정은 당연하게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얼굴에도 몸에도 심지어 발에도 두툼한 분장을 붙였기 때문이다. 배우로서는 치명적인 무기 하나를 버리고 시작하는 셈이다. 게다가 무대 위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도 없다. 쓸만한 무기 하나를 더 던져버린 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분장을 뚫고 찰리의 진심은 절절하게 관객에게 전달된다. 묘하다.


진심을 다해 찰리를 돌보는 리즈 역의 전성민 배우와 이혼한 전부인  메리 역의 정수영 배우의 연기는 찰리 역의 백석광 배우의 연기와 섞인다기보다는 잘 짜인 직물처럼 쌓이고 포개진다. 슬프고 아련한 색깔의 직물처럼 극장 안을 휘감는다.


이 연극이 데뷔작이라는 엘리 역의 탁민지 배우와 토마스 역의 김민호 배우의 연기도 매력있다. 촘촘하게 내려앉는 직물을 솟구쳐 올려 극장 안에 떠다니게 하는 젊은 힘이다.




솔직한 이야기를 써 보세요.


고치면 고칠수록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학생들에게 말하던 찰리는 어느 순간 ‘솔직함’을 가르친다. 솔직한 글이란 무엇일까? 모른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가? 이 연극을 보며 한 번쯤 곱씹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연극은 9월 30일까지 대학로 극장 쿼드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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